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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허기를 달래주는 새벽시장 '시락국' 한 그릇

[기타] | 발행시간: 2013.03.18일 14:40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18> 서호시장과 '시락국'

[프레시안 강제윤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칠순의 얼음장사 노인

"얼음 있나 오빠야?"

"오빠야 얼음 없다. 요새는 늦게 신청하면 없다."

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에게 생선 좌판의 여자가 묻는다. 하지만 얼음장사 노인은 벌써 얼음 수레를 비우고 흥에 겨워 건들건들 개다리춤까지 추며 빈 수레를 끈다. 칠순이 넘은 노인은 서호시장에서만 30년째 얼음 장사를 하고 있다. 하루에 7~8번씩 작은 수레에 얼음을 가득 담고 시장을 누빈다. 선어 장사들은 얼음이 없으면 영업하기 어렵다. 얼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여름철에는 하루 10번씩 얼음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노인은 잘게 부서진 얼음을 근처 얼음공장에서 사온다. 얼음공장이 가깝다 보니 중앙시장보다 얼음 값도 싸다. 노인의 얼음은 한 양동이에 1000원, 중앙시장은 1500원씩이다. 한 손수레에 얼음 20양동이가 들어가지만, 덤으로 주는 것이 많기 때문에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열일곱 양동이쯤 된다. 한 수레 팔아봐야 남는 것은 4000원 남짓. 요즘 같은 봄철에는 일곱 수레쯤 파니 하루 얼음 장사로 버는 돈이라 해야 고작 3만 원쯤이다.

"이것만 갖고는 생활이 안 돼요."

그래서 노인은 얼음 장사 말고도 다른 부업을 한다.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장 부근 위판장에 나가 바다에서 갓 잡아온 생선들도 실어주고 얼음장사가 끝나는 점심 무렵부터는 오토바이로 배달하러 다닌다. 주로 생선이나 야채를 배달하는데 시장 사람들의 주문이 있으면 무엇이든 배달해 준다. '투잡'도 모자라 '쓰리잡'을 뛰고도 지칠 줄 모르는 혈기 왕성한 노인.

"시장 바닥 오래 뒹굴고 그러니까 사람 의욕도 생기고, 건강에도 좋고 그래요."

▲서호시장, 수산물 상인들에게 얼음은 수산물만큼이나 소중하다. ⓒ강제윤

노인은 힘든 내색도 없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젊은 시절 노인은 뱃일을 다녔다. 하지만 뱃멀미가 워낙 심해 계속 배를 타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얼음장사다. 당시에는 얼음 아주 값이 쌌다. 한 수레에 두 갑의 얼음이 들어가는데 30년 전 공장 가격이 한 수레당 2500원이었다. 지금은 한 갑에 6600원, 두 갑 한 수레에 1만3200원이다. 올랐다고 하지만 그래도 싼값이다. 차액도 30퍼센트가 채 안 된다. 중앙시장처럼 얼음 값을 좀 더 받으셔도 되지 않겠느냐 하니 노인은 손사래를 친다.

"뻔히 공장 가격 아니까 비싸게 못 받아요. 별 돈이 안 돼요. 그래도 배달도 있고 하니 살 만해요."

노인은 그래도 자기 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퇴직해라 이런 소리 없으니까 좋아요. 칠십 넘어서 어디서 돈 벌어요."

얼음장사와 배달 일, 새벽 어판장일까지 하니 노인은 한 달에 200만 원쯤 번다. 그 연세에 적지 않은 월급이다. 얼음 장사를 끝낸 노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나간다. 노인의 뒷모습에 신명이 묻어난다.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시장

▲ 새벽 서호시장에 나온 싱싱한 고등어. ⓒ강제윤

여행지에 가서 그 지역을 제대로 느끼려거든 무엇보다 먼저 재래시장을 가봐야 한다. 시장은 그 지역의 축소판이다. 나그네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보통 새벽 두세 시에 잠이 드니 아침에 일어날 일이라도 있으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볼일이 있는 날이면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편이 더 쉽다. 하물며 새벽에 볼일이 있다면 어쩌겠는가. 그냥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새벽 4시까지 글을 쓰다가 거리로 나섰다. 새벽 서호시장에 가기 위해서다. 서호시장 새벽 풍경을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었다.

서호시장은 꼭두새벽부터 문을 여는 새벽시장이다. 중앙시장 부근 항구 이용원도 벌써 문을 열었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 이발사는 대체 몇 시에 집을 나선 것일까. 아마도 새벽 세 시쯤에나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이발소까지 걸어왔으리라. 아, 그런데 문화마당에는 이 어둑새벽부터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낮과 밤을 바꿔 사는 나그네에게는 참으로 낯선 세상 풍경이다.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서호시장은 새터시장이라고도 한다. 매립으로 생긴 새 땅에 시장이 들어선 때문이다. 서호시장 일대의 땅은 일본 강점기인 1930년대 서호만 바다를 매립해서 생겼다. 일본 강점기 때는 신정(新町) 시장이라 했다. 새터에 생겼다 해서 새터시장이고 아침 일찍 여는 시장이라 해서 통영 말로 '아적 재자'라고도 했다. 저녁시장은 '저녁 재자'쯤 될 것이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아버지가 젊은 여자 '기봉이네'와 딴살림을 차렸던 차부(터미널)도 새터에 있었다.

시장 상인들은 벌써 문을 열고 물건을 진열 중이다. '시락국' 집도 문을 열었다. 마른 생선을 판매하기 위해 바구니에 담고 있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잠은 안 주무세요?"

"쪼끔 자고 일어나지."

밤 9시나 10시쯤 잠이 들어 한밤중인 2시쯤 눈을 뜬다. 겨우 너덧 시간 눈을 붙이고 나와 종일 시장에서 일한다.

"그러니까 사는 게 고생이지."

생선의 배를 따서 소금에 절이거나 홍합, 바지락 등 조개껍데기를 까느라 상인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활어를 파는 상인들은 활어 수송차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옮겨와 빈 수족관을 채운다. 반찬가게도 문을 열었다. 어묵 집에서는 반죽을 한 어묵을 가마솥 기름에 튀겨낸다. 야채 가게도 바쁘다. 배송되어 온 신선한 야채를 진열한다. 서호시장 안의 복국집들도 문을 열기 시작한다.

서호시장은 일찍 문을 여는 까닭에 폐장 시간도 빠르다. 점심 지나면 썰렁해지고 문을 닫는 집들도 더러 있다. 중앙시장보다 조금 덜 붐비는 편이라 장을 보기도 편하다. 그래도 물건은 싱싱하고 다양하다. 통영을 떠날 때 수산물을 사서 갈 요량이면 꼭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새벽 4시에 먹는 '시락국' 한 그릇

▲ 생의 허기를 달래주는 가마솥 '시락국' 집의 '시락국' 한 그릇 ⓒ이상희

새벽 4시에 밥을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웬걸! 벌써 '시락국'집은 이른 식사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통영 말이다. 식당 문밖 가마솥에서는 국이 끓고 식당 안은 구수한 냄새가 아른거린다. '시락국' 집은 독립적인 식탁이 따로 없다. 반찬을 놓은 긴 테이블 양쪽으로 긴 의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초면의 사람들끼리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메뉴는 단 하나. 그러니 음식을 고를 것도 없이 주문은 무조건 사람 숫자만 대면 끝이다. 밥과 시락국을 내주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반찬을 먹을 만큼 접시에 담는다. 일종의 뷔페인 셈. 통영 '시락국'에는 제피 가루와 김 가루, 부추무침을 넣어 먹는 것이 풍습이지만 음식에 정석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먹으면 된다.

서호시장의 '원조시락국집'은 가장 널리 알려진 시락국집이다. 손님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과거에는 주로 섬사람들이 아침 배를 타기 전에 많이들 찾았지만, 요새는 섬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더 많다 한다. 언론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고 손님이 미어터지도록 넘치는데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는 흔치 않은 식당이다. 맑은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겠지만 나그네처럼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집 시락국이 입맛에 맞다. 시락국만 끓인 지 50년이 다 된 집이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한 가지 음식만을 이어가는 것은 통영에서도 드문 일이다.
통영에는 예전부터 장어잡이 통발 배가 많았다. 장어를 손질하고 나면 머리와 뼈가 남았다. 머리와 뼈를 깨끗이 씻어 가마솥에 푹 끓였다. 그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다시 끓인 뒤 밥을 말아냈다. 싸고 영양가 많은 시락국이 탄생한 배경이다. 원조시락국집에서는 지금은 뼈는 쓰지 않고 장어 머리만을 쓴다. 하지만 장어 머리의 형태가 그대로 들어갔다면 기겁을 했을 젊은 여성들도 입맛을 다시며 시락국을 잘만 먹는다. 음식에서 시각적 이미지가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뼈를 넣고 끓였을 때는 잔가시가 남아 먹기에 불편하다는 손님들의 불만이 있었다. 뼈를 빼고 끓이자 불만이 사라졌다. 그날 잡은 싱싱한 장어 머리만을 15시간 정도 푹 고아낸 뒤 체에 거른다. 추어탕을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그렇게 걸러진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다시 다섯 시간쯤 진득하게 끓인다.

푸른 무청 시래기의 식이섬유는 장 노폐물을 제거한다. 변비나 당뇨에도 효과가 있다. 무청으로 만드는 시래기도 공력이 많이 들어간 음식재료다. 그냥 데처서 말렸다 쓰는 것이 아니다. 무청을 3년 정도 소금에 저려 보관한 뒤 그것을 다시 삶아서 말린다. 그렇게 말린 시래기를 국물에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다. 된장도 직접 담아서 쓴다. 마늘과 생강, 청양고추 등을 넣는 것이 양념의 전부다. 아니 다른 비법이 있지만 그건 영업 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단순해 보이는 한 그릇의 시락국이지만 그 맛이 깊은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밥상에 오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니 어찌 깊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날 잡은 싱싱한 장어만을 고집하는 것이 맛의 비법일지도 모르겠다. 음식에 싱싱한 재료만 한 비법이 어디 또 있겠는가! 구이용 장어는 죽은 것을 써도 문제가 없지만 끓이는 것은 산 것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린 맛이 나고 국도 고소하지 않다. 시락국에서 비린 맛이 없이 구수한 국물 맛이 나는 이유다. 생선이나 해산물은 신선도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지친 속을 달래주는 명약

▲가마솥에서 시락국이 팔팔 끓어가면 허기진 생에 온기가 스며든다. ⓒ강제윤

원조시락국집뿐만 아니라 서호시장 안에는 시락국 집이 여러 곳 있다. 장어 시락국의 진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서호시장 중간 만성복집 부근의 '가마솥 시락국'집을 찾는다. 이 집도 오랜 세월 시락국 한 가지만을 고집해왔다. 원조시락국집 자리에 있다가 이 자리로 옮긴 지만 21년째니 두 집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 집은 장어가 아니라 그날 잡아온 싱싱한 흰살생선들을 쓴다. 역시 생선은 푹 끓여서 체로 걸러낸다. 국물이 시원하고 맑은 맛이다. 원조시락국집이 매운탕 맛이라면 이 집은 지리(맑은탕)라고 할까!

시래기는 무청 시래기만이 아니라 배추 시래기도 함께 쓴다. 이 집 또한 배추와 무청은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데쳐서 사용한다. 나는 이 집의 된장을 풀고 배추 시래기를 넣어 끓인 시락국의 시원한 맛이 좋다. 배추의 단맛이 국물을 더욱 부드럽게 한다. 진한 국물을 속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면 나는 이 집의 맑은 시락국으로 아픈 속을 달래곤 한다. 간이 세지 않아 약간 심심한 듯한 이 집 시락국도 중독성이 강해 단골이 많다. 이 집이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위생이다. 반찬을 개방해 놓는 다른 시락국집들과 달리 뚜껑으로 닫아놓아 두고 필요할 때만 덜어 먹게 한다.

새벽에 먹는 시락국은 밤새 시달린 술꾼들이나 어부들의 지친 속을 다스려 준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밤샘 조업을 하고 돌아온 어부들은 새벽 시락국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인다. 새벽 술맛은 세상 모든 고통과 설움을 잊게 해주는 명약이다. 낮의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인생이라 자학을 하던 사람들도 새벽시장의 술 한잔이면 다시 거뜬하게 생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 얼마나 고마운 시장이고 밥이며 술인가!

□ <섬학교> 4월 답사 안내

강제윤 시인이 이끄는 인문학습원 <섬학교>가 4월 답사를 떠납니다.

4월 답사지는 <자산어보>와 홍어의 고장 흑산도입니다.

관심 있는 분은 여기로 ☞ "흑산도, 그 깊고 푸른 물빛 기행"


강제윤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 (hycho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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