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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선술집 ‘육미집’ 화재 이후

[기타] | 발행시간: 2013.03.16일 03:06

지친 삶 달래며 한잔, 추억을 잃고 또 한잔

[동아일보]

“17일 오후 8시 26분경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3층짜리 목조건물에서 불이 나 1시간 30여 분 만에 꺼졌다. 그러나 불길이 인근 건물로 번지면서 음식점 등 건물 6개동, 점포 23개(종로소방서 추산)가 불에 탔다.”(본보 2월 18일자 기사 중)

한 누리꾼은 육미집 화재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자리에 앉으면 뜨끈한 어묵 국물부터 내어주던 그곳. 30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인근 직장인과 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술집 ‘육미집’이 불탔다. 꼬치를 굽는 매콤한 연기 속에서도 직장 상사를 안주 삼아 밤늦도록 동료와 술잔을 기울이며 고단한 하루를 달래던 곳, 밤새 통음을 한 뒤 다음 날 점심 쓰린 속을 붙잡고 해장을 하러 가던 그곳은 이제 없다.’

인사동 화재 사건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던 종로 피맛골이 빌딩 숲으로 바뀐 것에 이어 화재로 인사동의 추억마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숭례문이 불탔을 때도 이런 마음은 아니었는데…”

8일 다시 찾은 인사동 화재 현장은 을씨년스러웠다. 화재 현장에서 만난 김진태 육미집 사장(58)은 “금고에서 토요일 일해서 번 돈도 못 가지고 나왔다. 진짜 총 맞은 거 같았다”고 화재 당시를 회상했다. “꼬치를 굽고 있었는데 손님들이 냄새가 난다고 해 2층으로 올라가 봤지. 2층은 주말에 장사를 안 하는 곳이거든. 그런데 불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어. 급한 마음에 수건에 물을 적셔 코를 막고 주방에 들어가 액화석유가스(LPG) 통을 잠그고 내려오자마자 바로 빵 하면서 가스통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 조금만 늦었더라도….”

삶의 터전을 잃은 그는 “불이 나서 오히려 홍보는 더 됐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는 “가게 근처에 성지산업이라고 학생들 참고서인 ‘수학의 정석’ 만드는 회사 창고가 있는데 그쪽으로 불길이 갔으면 정말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김 사장이 추억하는 육미집은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는 곳이었다. “우리 집에 술 마시러 왔다가 옆 테이블 사람과 합석해 사고 치고 애기 낳은 사람도 종종 있었어. 요즘 말로 ‘부킹’이지. 그렇게 해서 낳은 애를 데리고 부부가 놀러 오기도 하고. 2, 3일에 한 번씩 오던 단골들이 가장 아쉬워하지….”

600년간 서민의 골목이었던 피맛골

육미집 화재는 옛 영화를 뒤로한 채 서서히 퇴색되고 있는 피맛골과 인사동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다.

피맛골은 세종로 사거리에서 종묘까지 종로 대로의 북쪽 건물 뒤편을 따라 이어진 폭 2m 남짓한 비좁은 골목길이었다. 조선 초기부터 600년간 이어 내려온 역사와 전통의 거리다. 문헌에 따르면 피맛길은 조선시대 초기 종로를 따라 만들어진 시전의 뒷길이다. 남겨진 기록은 없지만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로 다니는 고관들의 행차를 피해 다니던 길이라고 해서 ‘피마(避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피맛골은 조선시대부터 서민을 대상으로 한 술집, 목롯집, 색주가 등이 집중돼 있었으며 산적, 돼지고기, 생선 같은 안주를 내오던 곳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종로 지역의 상가가 급속히 개발되면서 갈 곳 없는 영세상인들과 서민들은 피맛골로 몰렸다. 1970년대 들어 재수생을 위한 입시학원과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외국어학원이 종로에 속속 들어서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거듭났다.

개발 광풍에 이제는 옛 추억만

하지만 피맛골은 2000년대 들어 청진·공평구역 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2007년 르메이에르빌딩이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광화문 교보문고 동쪽에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건물까지 종로 대로 변에는 대림산업과 GS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고층 빌딩을 짓고 있다. 개발의 여파로 피맛골은 이제 그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6·25전쟁 직후 문을 열었다는 ‘열차집’, 건너편의 ‘아바이순대’, 매운 낚지볶음이 유명했던 ‘서린낙지’와 ‘실비집’, 시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시인통신’ 등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거나 사라졌다. 메밀국숫집인 ‘미진’과 ‘실비집’ ‘청진옥’ 등이 옮겨간 르메이에르빌딩 1층에 ‘피맛골’이라는 간판이 다시 붙기는 했으나 허름하지만 정다웠던 옛 모습을 찾긴 힘들다.

1960년대부터 피맛골을 드나들었던 문학평론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계 유명 문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데려가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자랑했던 곳인데 이제 서울에선 자랑할 곳이 없게 됐다. 그것도 무식할 때가 아니라 문화의 가치를 알게 된 최근에 부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젊은 시절, 밤에 잠자는 시간과 낮에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의 진정한 삶은 이 피맛골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 종로와 나란히 달리다 청진동 해장국 거리와 마주치는 뒷골목, 두 팔을 벌리면 양쪽 건물의 벽에 가 닿을 듯한 그 조붓한 피맛골에는 항상 생선 굽는 냄새가 났고 저녁 거리의 어스름 속에 나직한 목소리의 유혹이 떠돌았다. 피맛골이나 청일집은 산업자본주의에 깔려 풍요 속의 빈곤으로 질식하기 전 마지막 남은 우리 문화의 요람이었다.”(본보 2010년 2월 5일자 김화영 칼럼 ‘정신없는 유목민 만드는 세상’ 중)

YMCA회관에서 금강제화빌딩까지 이어지는 종로2가 뒷골목인 ‘서피맛골’은 학사주점 골목으로 유명했다.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동쪽 길이 동피맛골, 서쪽이 서피맛골이다. 골목을 따라 20곳이 넘는 주점들에는 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8일 밤 돌아본 서피맛골은 이미 ‘잊혀진 공간’이 돼 있었다. 한때 젊은 대학생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그 골목길에 아직까지 문을 열고 손님을 받는 집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2003년 화재 사건 이후 사람들이 골목을 찾지 않는다. 재개발에 묶여 업자들도 사람을 쫓아내고…. 이제는 문 여는 곳보다 닫은 곳이 더 많다”고 말했다. 탑골공원부터 옛 피카디리극장(현 롯데시네마)까지 이어진 동피맛골 역시 서피맛골과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화랑과 표구사 골동품 상점이 몰려 있어 예술인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던 인사동은 스타벅스 같은 체인형 커피숍과 화장품점이 상점의 주류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음식점들만이 겨우 옛 인사동의 마지막 추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인사동은 2002년 4월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고미술품점, 표구사, 필방, 지업사, 공예품점 등을 권장업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음식점 노래방 편의점 의류점 등의 영업을 금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육성책과 강제력 없는 규제로 오히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인사동은 급격하게 옛 모습을 잃어가게 됐다. 2000년대 들어 생기기 시작한 화장품점은 벌써 11곳이나 된다. 1946년 창업해 2대째 같은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수도약국 임준석 약사(57)는 “인사동은 예술가들의 거리이자 신민당사, 민정당사가 있어 정치의 중심지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개발도 제한되고 또 너무 상업화돼 이것저것이 뒤섞인 이상한 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볼거리가 없어진 인사동 거리에서 만난 금발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붕어빵 노점에서 사라진 서울의 옛 정취를 찾고 있었다.

“불이 나기 전에 이미 끝났어, 여기는…”

육미집 화재 현장과 피맛골을 취재한 다음 날인 9일 육미집 화재가 사고가 아닌 방화였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 천막에도 불을 질렀다는 50대 안모 씨는 육미집 1층에서 술을 마시다가 건물 2층 종업원 탈의실에 올라가 폐지와 옷가지에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육미집 화재 현장 앞에 놓인 철제 펜스에는 ‘이 지역을 사랑해 주시고 애용해 주신 손님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모습으로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쓴 상인 일동 명의의 플래카드가 쓸쓸하게 걸려있다. 하지만 피맛골과 인사동이 세월의 거센 물결을 이겨낼 수 있을까. 김진태 사장은 다시 예전의 육미집을 만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시 장사를 해야 하는데 이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으면 가겟세도 예전 같지는 않을 거고. 그럼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손님들이 다시 우리 집을 찾을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골목의 한 주점 주인은 기자에게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다시 육미집을 지어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모일까? 불나기 전에 이미 끝났어, 이 동네는….”

동아일보 박진우·김성모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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