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관 웅
김학철의 문학에 표현된 정신을 김학철은 자기의 마지막유언에서 가장 간단명료하게 귀납했다.
“편안하게 살려면 불의에 외면하고, 사람답게 살려면 불의에 저항하라.”
김학철의 문학은 단순히 문학을 위한 문학이 아니다. 문학을 무기로 삼아서 불의에 항거를 해온 저항문학이다. 공리공담의 문학이 아니라 투철한 실천적인 문학을 해온 분이다.
이런 까닭에 김학철정신은 우리에게 있어서 인식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일언이페지하면 김학철 정신은 우리들의 실천의 지침이다.
김학철정신은 인식적 존재로서는 누가나 읽을 수 있고 또 담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김학철정신을 실천의 지침으로 삼고 자신의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실천에 옮기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드물다.
지금 우리는 력사의 대 전환기와 혼돈기에 처해 있다. 진(眞)과 가(假), 선(善)과 악(惡), 미(美)와 추(醜), 시(是)와 비(非), 흑(黑)과 백(白)이 마구 뒤섞여 일대 혼란을 이루고 있다. 이런 시대의 탁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탁류에 휩싸여 같이 떠내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김학철정신은 단지 인식적인 존재로만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실천의 지침으로 되어야 한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중국철학중의 인식론에서의 최고의 명제이다. 알기 위함은 행동하기 위한데 있다. 김학철정신을 알고 그것을 담론하는 목적은 그것을 자신들의 실천에 옮기려고 하는데 있다.
그런데 우리문단에는 말로만 김학철정신을 외우고 칭송하고, 실제 행동에는 전혀 체현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진(眞)과 가(假), 선(善)과 악(惡), 미(美)와 추(醜), 시(是)와 비(非), 흑(黑)과 백(白)이 일대 혼전을 벌리고 있는데도 자기는 이와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란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이 상책이란다. 이처럼 입으로만 김학철을 외우고 칭송하면서 실천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들은 “구두김학철파(口頭金學鐵)”이다.
우리는 이제 김학철정신을 궁행(躬行)하는 “실천적 김학철파”를 필요로 하지 말로만 김학철을 기리고 칭송하는 “구두김학철파(口頭金學鐵)”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구두김학철파(口頭金學鐵派)”들이여,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