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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같은 인간승리-- 려나의 일기(1)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3.05.23일 11:05

아기때의 려나 모습.

  어릴때부터 배우고 도전하기를 즐기던 아이였습니다. 남들보다 뒤쳐지는걸 싫어했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아코디언, 피아노, 섹소폰 등 악기에 관심이 많았고 장래희망이 아나운서가 꿈이였습니다. 대대위원으로 활동했고 학교 행사때마다 사회자로서 바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어릴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속에 작은 아픔이 있었지만 활발한 성격으로 친구들도 많았고 학교생활은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앞으로 자신이 할 일과 해야 할 일 모두 똑똑히 알고 있었고 할수 있을거라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003년 7월30일 수요일

  오늘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학원에 다녀와보니 벌써 짐은 다 옮겨져있었다. 엄마가 데리러온다고 전화가 왔다. 저녁 엄마와 나는 슈퍼에 들러 몇가지 음식을 사고 새집으로 향했다. 들어서니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나는 이곳저곳 신나서 둘러보았다. 뭔가 허전해 보였지만 나름 마음에 들었다. 엄마는 이사한 날에는 두부전을 먹는다면서 채 정리되지 않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였다. 나도 짐 정리한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이제부터 이 집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내 방도 이쁘게 꾸미고싶은 마음에 너무 기뻤다. 식사준비가 끝나고 엄마와 난 조용한 집안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두부전, 정말 맛있었다.



  2003년 7월31일 목요일 아침 6시 30분경.

  어제밤 엄마방에서 같이 잤다. 낯선 새 집이다 보니 혼자 방에 들어가 자기는 싫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도 방금 일어나서 환기를 시키는 중이였다. 잠이 덜 깬 나는 좀 더 자려고 했지만 오늘도 학원가야해서 일어나기로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주방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그런 냄새였다. 난 엄마한테 다가가 이상한 냄새가 주방에서 난다고 알려주었다. 엄마는 아무 냄새도 안난다고 했지만 난 분명히 심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깜빡 잊고 있었던건데 사실 엄마는 얼마전부터 비염을 앓고 있는 중이셨다. 엄마는 이러는 내가 하도 이상해서 주방으로 다가갔다. 나도 조심스레 뒤따랐다.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냄새는 더 심해졌다. 엄마가 가스렌지 앞에 서고 나도 그 옆에 바짝 붙어섰다.

  스위치 하나를 돌려보았는데 고장났는지 땅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이상하다싶어 다른 하나를 돌렸다. 그 순간 "펑" 하는 굉장히 큰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그대로 그자리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이 무척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순간 너무 무서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급히 밖으로 뛰쳐나와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눈 앞에 보이는것은 엄마와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온것과 이웃들도 놀라서 나와있는 것이였다.

  이웃들은 옷으로 우리를 감싸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운전해서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아마도 병원인가보다. 그때 처음으로 '사고가 났나보다.'고 느꼈다. 정말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런 황당하고 이상한 기분은 처음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것은 공포였다.

  병원으로 이동중 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거울(룸미러)을 보게 되였다. 나도 엄마랑 똑같이 얼굴에 피부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여 엄마와 나는 각자 치료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엄마와 헤어졌다.

  치료실에 들어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급히 전화로 다른 의사들을 불러왔습니다. 이른 아침이여서 야간 의사 한두명 뿐이였습니다. 온 몸에 차가운 소독약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피부에 붙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흰가루를 몸 전체에 발랐습니다. 일어나서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싶었는데 의사선생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상한 눈사람이였을겁니다. 침대에 누운채로 치료실에서 나와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아마 엄마도 나와 똑같이 치료받고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펑" 하는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한아이의 인생이 뒤바뀌어버렸습니다.

  "오늘 아침 7시경 한 아파트에서 가스폭발사고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집안에는 모녀가 살고있었고.........."

  이날 아침도 친할머니 댁에서는 아침뉴스를 시청하고 계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죠. 그 뉴스속 사고가 바로 자신들의 손녀한테서 일어난 사고인것을.. 그리고 얼마후 울리는 전화벨소리. 손녀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형체를 알아볼수없을만큼 일그러진 얼굴과 전신에 붕대를 휘감고 침대에 누워있는 손녀를 보며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뛰여놀며 달려와 안기던 손녀가 아니였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이상황에서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뿐...

  할머니는 내게 다가와서 "려나야, 할머니가 보이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등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사고가 났어도 정신만은 또렷했던 난 도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은건데 당시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서 본 나의 얼굴은 눈도 코도 입도 분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타버린 몸이 부어올랐기때문입니다. 저는 그상황을 전혀 모른채요. 그렇게 죽음과의 싸움은 예고없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꿈인줄 알았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일이.. 그저 잠깐 꾼 이상한 꿈인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였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것이 변해버렸습니다. 거긴 내가 있어야할곳인 학교가 아니라 병원이였고 공부하고 있어야 할 나대신 고통속에서 치료받고 있는 내가 있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지금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이상하다?' 정도로 그냥 의아해했습니다. 가족들은 무서움에 떨고 있을 어린 나에게 그냥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끝나지 않을것만 같은 이 죽음의 사선에서 싸우는 나를 누군가가 꺼내줬으면 하는 답답함과 왜인지 모를 공포감이 들었습니다. 누가 나 좀 안아줬으면 좋겠는데, 그저 내일이면 퇴원할수 있다고, 치료 받으면 금방 괜찮아질거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럴수 없었습니다. 이미 나의 온몸은 상처로 뒤덮였고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습니다.

  이건 결코 작은 사고가 아니였습니다. 그러다 누가 잠깐 스쳐지나가기라도 하면 온몸이 떨릴만큼의 아픔이 찾아왔습니다. 상처 소독하고 다시 붕대 감고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렇게 고통과 신음속에서 이틀이 흘렀습니다.

 2003년 8월6일

  그리고 첫수술.

  아빠한테서 수술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려나야, 상처가 조금 깊어서 수술실에 들어가서 치료 받는거야."

  "아파요?"

  "아니, 그냥 잠만 자다 나오는거야."

  "잠자는게... 아파요?"

  두려웠습니다. TV에서만 봐오던 수술실에 나 혼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수술 한번 받고 나오면 상처가 깨끗이 치료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첫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들은건데 그 수술은 다리의 타버린 피부를 긁어내는 아주 기초적인 수술이였습니다.

  죽은 조직을 떼어내야만 새살이 올라올수 있었습니다. 상태가 너무 엄중하다보니 북경에 있는 화상전문 교수님이 인조피부를 가지고 그날 밤 오셔서 수술에 참여하셨습니다. 수술실에서 잠자는건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술후 치료과정은 감히 상상할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였습니다. 감겨져있던 붕대를 풀고 상처 소독하고 약 바르고 다시 붕대 감고.. 너무 쉬운 일이지만 나한테는 죽을것만 같은 고통이 따르는 시간이였습니다.

  상처부위가 워낙 넓고 깊다보니 1시간은 기본이고 살을 파고드는 고통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뿐, 아니 차라리 내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기를 바랬습니다. 수술실에서 잠자던 것처럼 수술하는지도 모른채 잠만 자던것처럼 지금 이순간 정신을 잃기를 바랬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진통제를 맞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온 몸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눈물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 흘렀습니다. 아니 엉엉 울었습니다.

  수술 받은 다리의 상처는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양쪽팔의 살들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으며 며칠 지나자 온몸에 고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정말 생지옥이였습니다. 12살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2003년 8월24일 두번째 수술

  점점 심해지고 있는 양쪽 팔 부분도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정상피부가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그중에 제일 괜찮았던 머리 피부랑 말린 돼지껍질을 물에 담궜다가 상처에 이식했습니다. 당시 첫번째 수술에서 북경의 교수님이 가져오신 인조피부가 연변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이도 머리가 길었던 제가 머리피부를 다치지 않은것입니다. 하지만 상처에 붙어야되는 피부가 잘 붙지 못했습니다. 별 효과가 없었던겁니다. 현실은 너무 잔혹했습니다. 아픔은 좀처럼 멎지 않았습니다.

  9월15일 세번째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이식한 피부는 잘 붙지 않았습니다. 상처위에 덮어놓은 피부는 푸른색으로 녹아버리군 했고 상처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기로 몸을 말리는것은 소홀히 할수 없었기에 2시간에 한번씩 돌아눕는건 열심히 했습니다. 2시간동안 땅만 쳐다봐야 하는것은 너무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책을 펴고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굴에서 자꾸만 고름이 떨어지고 머리를 지탱하고 있던 이마는 계속 찢어졌습니다. 치료 빼고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서 누우면 하늘이 초록색으로 보였습니다. 알고보니 고름이 눈에 가득차있었던 것이였습니다. 한번씩 돌아누울때마다 눈에 차는 고름은 어떡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럴때마다 할머니는 닦아내주었습니다.



  10월3일 네번째 수술

  11월 초 다섯번째 수술

  두차례에 걸쳐 허벅지랑 팔, 등부위에 다시 수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허벅지에 이식한 피부가 다시 녹아버려서 치료 받으면서 뒷부분에 살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떼어내는 줄 알았는데 뼈가 보일정도로 깊이 떼어냈습니다. 그것을 본 할머니는 거의 쓰러질듯 했습니다. 아마도 한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움푹 파인 부위에 빠른 속도로 살이 차올랐습니다. 의사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린 나이라 어느정도 차이가 있을거라 했지만 이렇게 빨리 새살이 돋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12월20일

  내가 하루하루 치료받는동안 가족들은 치료비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전신 95%의 화상의 고통 역시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재정적으로도 아주 많은 치료비가 필요했습니다. 빌릴만한 곳은 다 찾아갔고 집을 팔면서까지 치료비를 마련했습니다. 정부에서 일부치료비는 지원해주던 것이 사고가 엄마의 잘못임이 드러난 그 순간부터 일체 치료비는 끊어졌습니다. 연변병원에서 총 5차례의 수술, 6개월동안 하루에 3000원씩 들어가는 치료비는 그렇게 마련된것입니다. 그러다 치료비가 다 떨어지고 병원에 10만원의 빚을 진채 그해 11월, 우리는 퇴원을 해야 했습니다.



  거울보기

  한번은 원장님께서 눈썹문신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화상이 너무 심하다 보니 오른쪽 눈썹 몇오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터버린 상태였지요. 아직 한번도 거울을 제대로 못 본 저는 눈썹이 없는지도 모르고 지내왔던겁니다. 화상흉터로 뒤덮힌 얼굴에 눈썹이 생기면 뭐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하면 조금은 예뻐지지 않겠냐는 어처구니없는 저의 깜찍한? 기대감으로 하게 되였습니다.

  맨날 살려고 하는 수술을 하다가 성형을 하는듯한 눈썹문신을 하는 기분은 그야말로 너무 즐거웠습니다. 시술이 끝나고 선생님이 이쁘게 되었나 거울 한번 보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사고후 한번도 보지못한 얼굴을 보는것은 저한테는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을때 할머니가 눈위로 눈썹만 보여줄테니 한번만 확인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침대에 누운상태에서 질끈 감고 있던 두눈을 겨우 떠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까맣게 변한 눈썹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붉은 색깔의 얇은 피부인 이마도 보게되었구요. 다리처럼 딱딱하고 검은색인줄 알았는데 붉고 하얀 얇은 피부였습니다.

  난 할머니한테 거울을 조금만 더 내려달라고 하였습니다. 눈썹이 잘 안보인다고.. 사실은 거짓말이였죠. 눈썹은 정말 잘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어서 내리라고 한거였습니다. 그렇게 눈,코,입,귀, 얼굴 전체를 다 보고야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왜 그런말은 했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한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합니다. "생각보다 괜찮네.^^" 정말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거울 보고나서 든 첫 느낌이였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거울 본거냐고, 괜찮냐고 걱정했습니다. 사실 거울보기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혹시 내가 거울 보다가 나한테 무서워서 울어버리면 어떡하지? 절망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괜한 걱정이였던것 같습니다. 곳곳에 상처가 있었지만 의외의 깨끗한 피부에 나는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후로 나는 할머니한테 병실 거울에 부친 종이들을 모두 떼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병이 하나 생겼지요. 바로 거울공주병. 틈만 나면 거울을 쳐다보군했습니다. 아무 표정 짖지 않아도 보고 방긋 웃어도 보고 아직 많이 낯선 거울속 나의 모습이지만 이젠 나도 알아야했습니다. 이 모습이 진정 나 려나라는걸. 그리고 거울속 려나의 모습과 친해지기로 했습니다.

  수술 후, 상처가 거의 아물때쯤이면 공부도 할수 있었습니다. (서석)(광주)교회의 봉사자 언니오빠들이 자주 놀러와서 놀아주기도 하고 공부도 배워주었습니다. 언제나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미홍언니, 공부도 배워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는 혜란언니, 수술 받는거 아프다며 투정부리면 이뻐지는게 쉬운줄 알았냐며. 멋진의사선생님이 치료해주시는데 그런다면서 나름 위로라고 해주는 지현언니를 비롯하여 많은 언니 오빠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걷는 연습도 하고 있어서 가끔씩 병원근처에 산책도 나갔습니다.

....

/한민족네트워크 제공 (려나의 일기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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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의견 2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저번주부터 매일 기다리고 있어요 ㅠ.ㅠ
답글 (0)
너무 감동입니다, 다음 기사는 언제 나오나요??
답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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