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유성 기자]한 미국인이 미국정부의 핍박을 피해 가상 적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했다. 왠지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요원 에드워드 스노든 얘기다.
‘망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우리의 뇌리속에는 독재국가 정부에 항거한 인물이 신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 등 자유국가로 도망가는 것으로 이미지화돼 있다. 이에 따라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을 뛰쳐나와 반미국가로 망명길에 오르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렵다.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개인 수집 프로그램 존재 사실을 폭로하고 홍콩에 은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비롯한 가상적국의 인터넷망을 해킹하고 그곳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밝혔다. 중국정부가 미국 기업과 정부 기관의 해킹을 주도했다고 비난해온 미국 정부로서는 국제적 망신살이 뻗쳤다.
이런 스노든에 대해 미국 정부 입장은 강경하다. 미국은 스노든을 불법행위로 기소하고 그의 송환을 홍콩에 요구했다. 상원과 하원, 민주당과 공화당 가릴 것없이 스노든의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 비판했다.
문제는 미국이 해킹을 저질러 다른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행위를 저질렀지만 이에 대한 반성이나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인권이나 주권 침해 등 무슨 일이든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심화된 미국 국가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고삐 풀린 국가주의는 소수 양심적인 의견까지 싸잡아 ‘적’으로 몰아 붙이고 사회를 경직되게 만든다. 미국은 지난 1950년대 이를 단적으로 경험했다. 당시 위스콘신주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는 1950년 “미국 국무부에서 일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있다”는 발언을 해 이른바 ‘매카시즘(反공산주의 선풍)’을 정치적 화두로 등장시켰다.
미국정부는 지난 10여년간 ‘테러’라는 공포를 적절히 이용해왔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계와 피로감이 최근 곳곳에서 발견됐다. 스노든의 폭로도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미국 정부는 스노든 폭로 스캔들을 통해 미국이 그동안 간과해온 가치를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김유성 (kys401@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