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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얼른 들어가라 손짓…내가 죄인이에요”

[기타] | 발행시간: 2014.04.23일 13:15

세월호 침몰 사고로 실종된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정아무개씨가 22일 오후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멍하니 서 있다. 이들 부부는 제주도로 결혼 30주년 여행을 가다 참변을 당했다. 뜻하지 않게 홀로 구조된 정씨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 결혼 30돌 동반 여행 나섰던 남편

죄책감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내가 무슨 자격으로 밥을 먹겠나…”

남편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남편은 구명조끼를 입고 3층 라운지로 나오려는 아내에게 얼른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배는 옆으로 50도 이상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말라.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는 안내방송을 믿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다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부부는 결혼 30돌을 맞아 제주도로 3박4일 기념여행을 떠나던 길이었다.

21일 오후 4시 진도실내체육관에 누워있던 정아무개(56)씨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아내를 두고 혼자 빠져나왔다는 죄책감 탓에 그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했다. 벌써 1주일이 흘렀지만, 정씨의 기억은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었다. “3층 식당 앞 소파에 앉아 커피를 두 모금 정도 마셨는데 갑자기 배가 왼쪽으로 기우는 거예요. 소파는 그대로 벽으로 가서 꽂혔고, 아이들도 우르르 밀려 내려와 벽에 부딪혔어요.”

죄책감으로 하루하루가 ‘지옥’

“무슨 자격으로 밥을 먹겠나…”

주검 계속 느는데 아내는 없어

멍하니 체육관 천장만 바라보며

살이 보일때까지 손톱 물어뜯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먼저 객실로 돌아갔다. 객실에 휴대전화를 두고 온 정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저 멀리 아내가 보였다. 다급히 손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냈다. 곧 괜찮아질테니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물은 순식간에 차올랐다.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정씨는 정신없이 헤엄쳤다. 그리고, 뭍에서 만날 줄 알았던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없이 찾았죠. 목포에도 구조자를 태운 버스를 보냈다고 해서 한가닥 희망을 걸었었는데….”

이날 밤 8시30분께 체육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형 텔레비전 속 뉴스에서 선체 3~4층에서 주검을 여럿 인양하고 있다는 속보가 나왔다. 정씨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 밑 살이 보였다. 손톱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던 그가 고개를 떨꿨다. “아들이 따라한다고 아내가 손톱 물어뜯는 버릇 좀 고치라고 계속 잔소리를 했었어요. 그때는 잔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22구의 주검이 수습됐다고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살을 맞댔던 이들이 번호가 매겨진 주검이 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체육관 3번 출입구 앞의 화이트 보드에 붙은 사망자 인적사항을 한참 바라보던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없네요. 옷이 아니에요. 아내는 진분홍색 점퍼를 입고 있고, 검은색 등산복 바지를 입고 있어요.” 정씨 뒤로 다른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격하게 늘어나던 사망자 숫자는 이날 밤 87명에서 멈췄다.

지친 가족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 눕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체육관 나무 바닥에 합성고무로 된 매트를 깔고 하늘색 담요를 덮었다. 새벽 내내 그칠 줄 몰랐던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사고 1주일째로 넘어가는 22일 새벽 2시30분께 한 차례만 들렸을 뿐이다.

22일 아침 가족들을 깨운 건 ‘뉴스속보’였다. 오전 6시50분께 주검 3구가 추가로 인양됐다. 정씨도 여느 실종자 가족들처럼 텔레비전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아내는 아니었다. 정씨는 어제처럼 다시 몸을 돌려 누웠다. 87명에 멈춰있던 사망자 수는 오전 9시께 야속하게도 100명을 채워버렸다. 30분 뒤에는 104명으로, 오후에는 108명으로 불어났다.

정씨는 체육관을 빠져나와 입구 쪽에 마련된 조계종 천막을 찾았다. “텔레비전을 안 봐야죠. 매일 같은 얘기만 나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스님과 얘기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거죠.”

스님과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정씨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추가 사망자를 알리는 소식과 수색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는 하루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 사이 사망자만 늘었을 뿐이었다.

‘식사는 잘 챙기느냐’는 질문에 정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어떻게 밥을 먹어요. 저는 죄인이에요. 아내 두고 혼자 살아남은 제가 무슨 자격으로 밥을 먹겠어요?” 시계는 오후 4시를 가리켰다. 실낱같은 희망과 무거운 절망을 번갈아 짊어지는 실종자 가족들의 24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진도/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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