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뒷통수를 맞았는데 왜 웃음부터 나올까. 국민들이 '무한도전'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당했는데 씁쓸하지 않다. 즐겁고 유쾌할 뿐.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제작진이 또 한 번 시청자를 앞서갔다. 지난 주부터 여섯 멤버들이 태국 방콕으로 여름 휴가 떠났다고 홍보했지만, 방송 당일에서야 모든 게 장난스런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멤버들이 떠난 곳은 태국이 아니라 태국의 장식품들로 꾸며진 국내의 한 옥탑방이었다.
지난 26일 방송된 '무한도전'에서는 여섯 멤버들과 제작진이 굵직한 상반기 특집을 무사히 마친 의미로 태국(?) 방콕으로 휴가를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태호 PD의 제안에 멤버들은 기대에 부풀어 오르면서도 "거짓말 아니야?", "이거 몰래 카메라 같은데?"라며 의심을 떨치지 못해 웃음을 자아냈다. 멤버들은 짐을 챙겨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순간에도 계속 제작진을 의심했다. 박명수는 "지금 솔직히 말하면 다 용서해줄게"라며 거듭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은 수속까지 권하며 의심을 잠재우려 했지만 멤버들의 촉(?)은 무서웠다. 방콕은 태국의 방콕이 아니라 방에 콕 쳐박혀있는 방.콕이었던 것이다. 멤버들은 부친 짐을 다시 수거하며 제작진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온갖 몸고생들이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멤버들을 인도한 건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한 태국인이었다. 그는 멤버들을 태국의 관광품들로 꾸민 옥탑방 원룸으로 안내했다. 좁은 집에 머물게 된 멤버들은 멘붕에 빠졌다. 눈치 없는 정준하는 연신 방구를 뀌어대며 휴가인지 생지옥인지 모를 풍경을 연출했다. 멤버들의 표정은 모두 혼이 나가 있었다.
제작진은 코끼리쇼를 보여주겠다고 말한 뒤 멤버들에게 코끼리 코를 흉내내게 해 제자리 돌기를 시키는가 하면, 태국 마사지 전문가를 불러 고통의 강제 마사지를 시켰다. 멤버들은 아픔에 몸부림 치며 10초도 버티지 못했다.
먹거리도 직접 구해야 했다. 제작진은 멤버들 앞에 문어, 해삼, 멍게, 개불 등이 들어있는 수족관을 준 뒤, 잠수 기구를 줬다. 직접 입으로 물어 올려야만 먹을 수 있다는 지령을 내린 것. 멤버들은 사투 끝에 해삼과 멍게 등을 얻어냈다. 하지만 빨판이 있는 대형 문어를 들어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하와 정준하, 유재석이 힘을 합쳐 입으로 문어를 물어 뜯어서야 겨우 건져낼 수 있었다.
멤버들은 힘든 휴가에 시종일관 불만을 쏟아냈지만, 점점 마음이 편해지는 모습이었다. 특히 작은 수영장 안에서 서로를 밀어내는 '워터파크' 코스에서는 아이로 돌아간 듯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멤버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휴양지가 아니라 소박하고 작은 휴식이었던 것이다. 물놀이를 하며 시종일관 웃어대는 멤버들의 얼굴에서 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방송은 제작진의 말대로 저비용, 고효율 방송이었다. 무려 일주일여 동안 시청자를 속인 제작진의 꼼수는 진정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은 옥탑방에서 지지고 볶으며 몸싸움을 해대는 멤버들의 모습은 과거 '무모한 도전' 시절을 연상케 만들었다. 발칙하지만, 순수한 초심이 느껴지는 휴가였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MBC '무한도전'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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