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내용이 훤히 보이는데 지루하지 않고, 결말이 쉽게 추측되는데 식상하지 않다. 이 드라마, 물건이다. 막장으로 치부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재밌다. 오락 자체에 충실하니 시청자가 몰려든다.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극본 김순옥, 연출 백호민) 얘기다.
드라마의 기세는 무서울 정도다. MBC 주말극이 오랜 만에 경쟁사인 KBS를 제쳤다. 지난 10일 방송된 36회는 30.5%(TNms, 수도권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영 내내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하던 KBS2 ‘참 좋은 시절’은 하필 종영 당일 ‘왔다 장보리’에 왕좌를 내줘야 했다. MBC 주말극이 KBS를 제친 건 ‘넝쿨째 굴러온 당신’, ‘내 딸 서영이’, '최고다 이순신', ‘왕가네 식구들’ 이후 처음이다.
‘왔다 장보리’는 전형성이 짙은 작품이다. 어디선가 본 듯 뻔하고 상투적이다.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캔디, 권선징악 등 한국 드라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코드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체 인기의 비결이 뭘까. 숨은 1mm를 찾아봤다.
1 단순함 - 뻔해도 궁금한 걸 어쩌랴
오연서와 이유리가 설전을 벌이는 순간, 카메라는 두 여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왜 하필 지금이야?’ 순간 궁금증이 폭발한다. 엔딩의 순간은 언제나 절묘하다. 이어진 예고편을 통해 다음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도 다음 회를 기다린다. 예고편과 본방 사수의 재미를 비교할 수 없다.
‘왔다 장보리’는 선악이 분명히 나뉘어 있는 드라마다. 장보리(오연서)는 비현실적으로 착하고 순진한 여자다. 반면 여민정(이유리)는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나쁘고 영악하다. 선과 악이 대립하니 시청자가 편을 들 사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 동안 드라마는 보리가 민정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하지만 시청자는 안다. 언젠가 보리가 고생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받을 거란 사실을.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건, 보리의 응징이 곧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 것이다. 권선징악은 시청자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다. ‘왔다 장보리’는 이 법칙에 순응하며, 언젠가 보리가 완벽한 신데렐라가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악의 축' 민정은 철저히 벌을 받을 것이다.
2. 캐스팅 - 평균 싱크로율 90%
‘왔다 장보리’를 이끄는 힘은 단연 배우들이다. 뻔한 스토리가 주목을 받은 데는 배우들의 호연도 컸다. 주조연을 비롯해 중견부터 아역까지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전반적으로 최적화되어 있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방송 초반 다소 어색한 사투리로 지적을 받았던 오연서는 어느새 전라도 사투리에 적응한 모습이다. 그는 시골 처녀처럼 착하고 순박한 보리를 통해 기존의 새침하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마치면 보다 넓은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훈도 오랜 만에 날개를 달았다. 날라리 검사지만 한 여자 밖에 모르는 순정파 이재화 역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발산하고 있다. 특히 오연서와의 케미스트리가 뛰어나다. 티격태격, 알콩달콩 시작하는 연인을 그리고 있는 두 사람의 호흡은 심상치 않을 정도로 궁합이 잘 맞다.
이유리는 가장 돋보이는 배우다. 이번 작품을 통해 악녀 연기에 방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 발악하는 그녀의 몸부림과 표정은 표독스럽기 그지 없다. 자신의 거짓과 가면이 들통날까 불안에 떠는 심리적 연기또한 탁월하다. ‘세상에 둘 도 없는 악녀’ 이유리가 있어 드라마는 빛난다.
3. 사투리 - 찰떡이야? 말이야?
중견 황영희는 ‘왔다 장보리’가 발굴한 최고의 배우다. 전라도 사투리를 그녀 보다 잘할 수 있는 배우가 또 있을까. 사투리가 찰떡처럼 입에 달라 붙어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실제로 전라도 출신이라고 하니, 네이티브의 전라도 사투리를 생생하게 듣고 있는 셈이다. 친딸 민정 때문에 늘 보리를 구박하고 훼방을 놓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중적 모성애 연기도 뛰어나다.
황영희 못지 않은 사투리 연기의 달인은 아역 김지영(김비단). 불과 9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전라도 사투리를 어떻게 배운 것일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소화력을 보이고 있다. 극중 할머니와 손녀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황영희, 김지영의 사투리 연기는 장관이다. 연령을 초월한 '주거니 받거니' 찰떡 궁합이다.
드라마 관계자에 따르면 황영희, 김지영은 현쟁에서 실제 대본에 있는 것 이상의 사투리 연기로 늘 주변을 깜짝 놀라게 만든다고 한다. '왔다 장보리'의 대박 비결에는 주조연부터 아역, 중견까지 모든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다.
김지현 기자 mooa@tvreport.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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