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 숨기려 비슷한 색인 간장 뿌리고 도망쳐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집에 도둑이 들은 것 같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방문을 열자 강렬한 짠 냄새가 먼저 코를 찔렀다.
바닥은 물론 벽까지 간장이 방 안 곳곳에 뿌려져 있었다. 베개에는 피해자의 부엌에 있던 흉기가 꽂혀 있었고, 이불도 갈가리 찢겨 있는 섬뜩한 광경이었다.
지난달 27일 저녁 8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촌의 한 세입자의 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단순한 절도가 아닌 원한에 의한 범죄가 의심됐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방 주인 김 모(32) 씨가 범행대상이 될 까닭을 찾기 어려웠다.
실마리를 찾지 못해 다음날 아침 다시 현장을 찾은 경찰의 눈에 드디어 단서가 나타났다.
간장색과 비슷한 검붉은 색으로 변했지만, 창틀 등에 점점이 묻은 자욱은 혈흔임이 틀림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혈흔 분석 결과는 동종 전과 11범의 고 모(54) 씨를 지목했다.
경찰 사이에서 일명 '자물쇠'로 통하는 고 씨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했지만, 혈흔의 DNA와 족적, 고 씨 팔의 상처 자국을 토대로 한 경찰의 심문 끝에 범행을 시인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빈 집에 들어가 금품을 훔친 혐의(절도)로 고 씨를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고 씨는 지난 7월부터 한달여 동안 종로·성북구 일대의 한옥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7차례에 걸쳐 1,800여만 원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고 씨는 집이 비었는지 확인한 뒤 담을 넘어 들어가거나 드라이버 등을 이용해 문을 열고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3번째 범행장소였던 가회동 한옥에서는 세입자의 방에서 물건을 훔친 뒤 주인집 안채로 건너가려다 실수로 유리창을 깨 팔을 다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 씨는 혈흔이 남으면 경찰에 덜미를 잡힐 것을 우려해 피를 수건으로 닦고, 세입자의 부엌에서 간장 1병을 가져와 뿌려 혈흔을 감추려했다.
또 이불과 베개를 부엌에서 가져온 흉기로 찢어 피해자가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하려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서 고 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주로 종로 일대에서 일하면서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며 "지난 3월 출소한 뒤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던 중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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