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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노래》54. 시누이집 가난 뭐가 문제인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3.10일 08:40
로송령골안에서 아이 셋을 거느리고 쪼들리는 생활을 하는 큰시누이네도 내곁에 데려와 빨리 춰세웠으면 좋겠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시누이네는 시동생내외처럼 자기 힘으로 열심히 일하여 돈 벌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남한테 의거할 생각만 하니 정말 답답하다. 시누이는 둘째아들이 내가 사는 도문시의 기공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돈이 없다면서 찾아왔다.학비는 어떻게 하나 대겠으니 먹고 자는걸 책임지고 해결해달란다.


당시 우리는 남편의 인력거수입으로 근근득식하며 살아가는데다 몇천원되는 빚을 갚느라고 정말로 허리띠를 동여매고있는 형편인데 사람 하나 더 거둔다는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였다. 나는 한마디로 딱 잡아뗐다.시누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는 그렇게 곤난하면서도 나의 남편을 18년동안 거두었는데 자기가 곤난할 때 응당 도와줘야 되지 않는가 한다.


나는 은공을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하지만 내가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하였다.그리고 기공학교는 졸업후 일자리도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그 학교를 다녀도 쓸데 없다고 나의 견해를 밝혔다.래년에 시험을 다시 쳐서 국가에서 승인하는 중등전문학교 아니면 기공학교라도 호구와 일자리를 다 해결해주는 학교에 지망하라고 알려주었다.


좋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어도 시누이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시누이가 울고불고하니 남편과 시동생은 아무데나 붙었으면 다니게 해야 한다며 나한테 공격을 들이대는것이였다. 나는 몇천원 날려보내도 괜찮다면 그리고 학비 숙비를 모두 스스로 해결할수 있다면 마음대로 하라 나는 밥 한끼도 먹여주지 못하겠다고 딱 잘라 말하였다.


시누이는 하는수 없이 시동생한테서 돈을 꿔서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구하러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며칠동안 온동네를 참빗질하면서 꿔봤지만 일전도 구하지 못하였다.시누이는 아들을 도로 데려가는수밖에 없었다.


나는 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 조카더러 일년동안 꼭 복습을 잘하여 시험을 잘 치라고 고무격려하였다.그리고 여차여차 공부하라고 계획까지 세워주었다. 나는 시조카의 실력을 믿었다.그애는 정말로 총명하고 부지런하고 또 성실하였다.나는 그가 모든 정력을 공부에 몰두하면 꼭 성공할수 있다고 고무격려해주었다.그애도 내 말대로 노력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간 조카는 승학공부를 한것이 아니고 집생활이 너무 구차하니 어느 한 슈퍼에 가 아르바이트를 하였단다.그러니 시험을 치면 얼마나 잘 치겠는가?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도문에서 학교를 못다니게 하니 연길기공학교에 지망하였단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귀를 알아 못들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아까운 아이의 전도를 망쳐먹는것 같아 가슴을 조이였다.


나는 시누이남편더러 아들을 데리고 꼭 우리 집에 왔다가라고 기별을 하였다.하지만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성이 난 나는 이제 오지 않으면 다시는 상종 안하겠으니 그리 알라고 최후통접을 보냈다.

9월달 개학이 될 때에야 시누이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왔다.나는 좀 한소리를 해야 되겠다싶어 시장에 가 남새를 사서 몇가지 료리를 볶아놓았다.그리고 시동생네까지 불러 회의를 소집하였다.


밥 먹기전부터 내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하니 큰시누이 남편은 뻔뻔스럽게 빨리 하란다. 나는 아주 엄숙하게 잠자코 있다가 큰시누이 남편한테 물어보았다.


《남자 대장부로 생겨서 가정을 일구려면 어떤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데요?》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시누이남편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그럼 제가 알려드릴테니 잘 들어봐요.그리고 이 집안에 앉아있는 모든 남자들 결혼했건 안했건 다 잘 들어야 됩니다. 남자로서 가정을 이루려면 수선 먼저 책임감이 있어야 돼요.책임감이 없으면 아예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해요.책임도 못질거면서 마누라를 데려다 아이까지 낳아서 어떻게 하려구요. 누구더러 그대 따라 한평생 쪼들린 생활을 하라는거예요? 고모부는 우리 시어머니께서 곱게 20년 키워놓은 시누이를 데려다가 여직꼇 뭘하고 지냈어요? 생각이나 해봤어요? 아이를 낳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돈을 번답시고 모두 평개치고 밖에 나가 관리하지 않으면 애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예요? 시누이가 하도 마음씨 착하니 그대한테 불어있지.나같으면 언녕 리혼한지 옛날이겠어요.》


《나도 오래전부터 리혼하려고 하였는데 시누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무슨 방법이 있겠소?》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요? 사람이 어쩜 그렇게 뻔뻔할수 있을가요? 지금 보세요. 아이들이 학교로 가야 되겠는데 당신때문에 못가고 있잖아요? 큰아들은 학비를 내지 못하여 중학교 2학년에서 중퇴하지 않았나요? 둘째아들도 집생활이 어렵지 않다면 공부를 더 잘하여 전일제 중등전문학교에 갈수 있는데 가난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해 또 기공학교에 지망하지 않았나요? 이대로 계속 나가면 막내딸도 마찬가지 꼴이 되고말텐데 아버지로서 가슴이 아프지 않나요? 예? 어디 좀 말해보세요!》


《……》


《사람이 아무리 무능하다고 해도 자기 입 하나를 챙기는것은 너무 쉬워요.시누이는 무슨 자기 입살이를 하지 못해 그대한테 붙어있는줄 아세요? 아이 셋을 떼버릴수 없어 그런대로 살아가는것이지. 그것도 모르면 당신은 사람도 아니지요. 그리고 당신이 일하고있는 그 회사도 참 웃기는 회사군요.진정으로 당신의 재능이 필요하다면 우선 당신의 근심거리부터 해결해줘야 되지 않을가요? 아무리 〈경리〉 라고 당신을 높이 받든다 해도 집안꼴이 망가져 온집식구가 기본생활도 유지하기 바쁜판인데 그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요? 예?!》


옆에서 듣고있던 동서는 그만 들이대라고 나의 옆을 찔러댄다.성질이 사나운 시누이남편이 집에 돌아가서 시누이한테 어떻게 할가봐 두려웠던것이다.


나는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약 20분동안 듣기 거북한 욕까지 해가며 큰시누이 남편을 호되게 비판하였다.그리고 나는 꼭 둘째를 화룡시 복동에 있는 탄광학교에 보내라고 말하였다.이 학교에서는 약 2년을 공부한 다음 호구문제도 해결해주고 전민소유제단위에 일자리도 배치해준다고 말하였다.사실 전해에도 내가 그 학교에 보내라로 권고하였는데도 탄광일은 더럽고 위험하다며 가지 못하게 하였던것이다.


나는 사람이란 타고난 운명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한다.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위험한 일을 한다 해도 죽지 않고 그렇지 안다면 안전한 일을 한다 해도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다.큰시누이 남편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던지 아들을 탄광학교에 붙여놓고 돌아왔다.그리고는 돈 일전도 나오지 않는 원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데 취직하여 아들애의 뒤바라지를 하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참 잘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나도 한학기에 100원씩 도와주겠으니 꼭 끝까지 책임지라고 부탁하였다. 단돈 백원이 받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적은 액수일지 모르지만 그 돈을 모아내기가 당시 우리 집형편에서는 정말 쉽지 않았다.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고 약속을 지켜갔다.정 없으면 꿔서라도 말한대로 주군 하였다.


시누이네 집살림이 늘 빈곤한것은 수입이 적은것도 있겠지만 시누이가 아껴 먹고 아껴 쓰면서 돈을 모을줄 모르는데도 그 원인이 있는것 같았다.


돈이란 모으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나머지가 없고 까근하게 생활하면서 억척스레 모으면 아무리 적게 번다 해도 수중에 항상 돈이 있기 마련이다.


아들딸 셋을 뒀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긁어모아야 되겠는데 시누이는 그럴줄 모른다.농촌에서 돈이 될만한 물것도 적지 않지만 시누이는 훌훌 남을 쥐여주고는 늘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집에서 개라도 새끼를 낳으면 남한테 주지 말고 팔아서 아들의 학비로 쓰라고 귀띔하였다.


그랬더니 시누이는 개가 새끼를 낳으니 나한테로 보내는것이였다.장사라고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나는 보내온 강아지 세마리와 시조카를 번갈아보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울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조카를 혼자 개 팔러 시장에 내보낼수는 없고. 나는 추운 겨울이라 어린 딸애에게 옷을 두텁게 입혀 장애인차 뒤에 앉히고는 시조카와 함께 개시장으로 나갔다.시장에 개가 대여섯마리는 있었는데 모두 시조카가 가져온 개보다 훨씬 건실하였다.


나는 이들과 함께 서있다가는 한마리도 팔것 같지 않아 자리를 옮겨있다가 인가가 많은 아파트단지에 들어가 팔기 시작하였다. 한참 지나도 묻는 사람은 있어도 사려는 사람이 없자 나는 은근히 조급증이 났다.모여들어 구경하는 사람들한테 시조카가 생활이 곤난하여 학비를 내지 못해 그러니 한번 도와주는셈 치고 사달라고 사정하다싶이 말하였다.


그러자 한 한족아주머니가 세마리를 다 사겠으니 70원으로 하라는것이였다.


나는 좀 아깝다고 생각하고 거절하려는데 시조카는 그날 저녁차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팔아버리고말았다. 70원이면 적기는 하지만 그래도 학교로 가는 차비와 옷, 신발들을 살수 있기에 시조카는 너무 좋아하는것이였다.

반나절이나 바깥에서 헤매고나니 나와 딸애는 추워서 죽을지경이였지만 시조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은 한결 즐거웠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철 일찍 든다더니 시조카는 공부도 잘하고 부지런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애더러 꼭 공부를 잘해 전교 1등을 하라고 하였다.그러면 졸업할 때 학교에 남아서 교원도 할수 있을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수 있을것이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과연 학교 1등으로 공부를 잘하였다. 시조카가 졸업할 때 복동탄광학교가 해체되였는데 학교에서는 유일하게 그를 장춘시 양초구탄광에 배치해주었다. 양초구탄광은 오랜 탄광이지만 설비나 환경이 연변탄광보다 훨씬 나았고 규모도 더 크기때문에 발전전도도 더 있어보였다.

나는 시조카더러 취직했다고 만족해 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해서 더 좋은 전도를 찾으라고 했다. 그후 10년동안 그는 통신함수공부를 하여 대학본과 졸업증을 타고 컴퓨터도 배워서 탄광의 우수한 기술인원으로 되더니 재작년부터는 그가 소속되여있는 탕광부서의 당위서기와 부단장직까지 맡고 일터의 선줄군으로 활약하고있었던것이다.


당시 내가 조카를 우리 집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면서 기어이 탄광학교로 가게 했으니 망정이 그렇지 않았더면 시조카에게 이렇게 좋은 전도가 차려질수 있었겠는가?


시누이 남편도 내가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뒤로 열심히 일하여 아이들의 뒤바라지를 하였다. 처음 그는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의 료리특장을 발휘해 로송령에다 마을식당을 꾸렸다.남들보다 더 깨끗하게 맛있게 그리고 더 싸게 하면서 손님들을 잘 끌었던것이다. 지금은 생활도 많이 피여 좋은 며느리들도 들이고 잘살고있으니 내가 곁에서 보기에도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남편이 나와 결혼하기전에 근 18년동안 시누이집에 얹혀있은 관계로 나는 그들 부부를 시부모처럼 대하였다. 내가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돈 빌리러 오면 언제 한번 퇴자를 놓을 때 없었다.심지어 나한테 없으면 친구들한테서 꿔서라도 꼭꼭 해결해주군 하였다.그리고 시누이나 그의 남편이 우리 집에 올 때면 늘 옷을 한견지씩은 사입히군 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무슨 물건이 시누이한테 필요하겠다싶으면 서슴없이 보내주군 하였는데 보내준 물건이 새것이든 낡은것이든 합치면 아마 큰 트럭을 차고 넘을것이다.


그들 부부도 내가 부탁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학생들의 책상을 만들 때나 아파트를 사서 장식할 때나 목재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들은 집에 모아두었던 재료들을 서슴없이 내놓았고 온 마을을 샅샅이 뒤지면서 제일 좋은 재료를 제일 싼 값으로 사서 인편에 보내주군 하였다.


한번은 내가 솔나무대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큰 시조카가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산에 있는 자류림에서 곧게 자란 나무를 골라 톱으로 케여다가 싹 다듬어서 인편에 보내주었다. 친형제들이란 바로 이렇게 곤난할 때 서로 도우며 정을 주고 받고 하면서 지내는것이다.


나는 비록 그들과 민족도 다르고 또 살아가는 환경도 다르지만 너무나 잘 어울리고 사이좋게 지낼수 있어 얼마나 행운스럽게 생각되는지 모른다.


최원 (다음기에 계속)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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