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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노래》63.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형제사이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3.17일 09:55
이렇게 나는 시어머니를 시동생한테 계속 맡겨두었지만 어쩐지 신경은 옛날보다 더 쓰인다. 그래서 그쪽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시어머니한테 돈 아니면 옷 한벌, 그렇지 않으면 부식물이라도 꼭꼭 보내주군 하였다


큰동서는 내가 시어머니한테 신경쓰는것을 보더니 느끼는것이 있었던지 한번은 신을 사서 내가 물건을 보낼 때 함께 보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2009년음력설에 시어머니 80돐 생신을 쇨 때 자기가 시어머니를 모셔오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나를 보고 배가 큰만큼 도량도 넓어 옛날 자기의 어리석은 처사도 감수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고 하는것이였다. 아마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갈 때 700원을 내라는데 500원만 주겠다고 떼를 쓴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참 얼마나 기특해보였는지 모른다. 사람이란 잘못을 저질렀다가도 뉘우치면 되는것이다. 속은 좁지만 마음씨 착한 큰동서는 배운것이 없다보니 너그럽게 생각할줄 모르고 일처리도 후하게 할줄 모르지만 드문드문 자기 처사를 잘 검토하고 새롭게 느낀것을 나한테 솔직이 토로하여 나로 하여금 감동을 받게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는 시어머니 생신에 시집으로 가기도 전에 그해 5월경 병으로 45세 아까운 나이로 세상뜨고말았다. 미운정 고운정 17년이나 함께 나누어 온 우리 두동서는 서로 옛말도 많이 하며 여생을 보낼것인데 이렇게 일찍 떠나보내고나니 나의 마음은 허전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막내동서도 어린 나이에 툭 털면 먼지 밖에 없는 우리 시집에 와서 이날 이때까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왔다는것이 정말로 쉽지 않았을것이다. 로인을 한분 모시려면 얼마나 많은것을 감수해야 하는데.

어떤 때에는 그가 시어머니한테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말을 들으면 괘씸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그가 무지 고맙다. 잘 모시든 못 모시든 여직껏 그가 나한테 시어머니를 밀어맡기지 않고 계속 모시고있었으니 나도 이 불편한 몸으로 사업이라도 할수 있은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몇해동안 그들이 하루빨리 가난에서 해탈되게끔 있는 노력을 다하였다. 물론 성공을 하지 못하여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막내시동생네가 로인을 모시느라고 힘들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에 늘 리해해주고 너그럽게 대해주고 도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것 같지 않아 나도 저으기 섭섭할 때도 있었다.


나는 부모를 모시는데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힘을 내든 돈을 내든 서로가 효도를 하면서 각자 자기 의무를 다 하면되는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질 않았다.

막내시동생과 막내시누이네는 한마을에서 사는데 결혼해서 몇년은 사이좋게 지낸다싶더니 어찌된 일인지 몇해전부터는 전화올 때마다 서로 상대방을 욕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듣고보면 다 자질구레한 일들이여서 서로 욕하다가 말겠거니 하고 몇마디 충고를 하고는 지나쳐버렸는데 2년전부터는 아주 적이 되여 거래도 하지 않는단다.


서로 의지하고 재미있게 지내도 모자랄판에 상종도 안한다니 정말 말이 아니였다. 텔레비죤에서나 신문잡지에서 친형제끼리 죽기내기로 싸우는걸 보고 어떻게 저럴수 있겠는가 리해가 안갔는데 막내 시동생과 시누이네를 보니 그것이 절대로 가능한 일이라는것을 알게되였다.


친형제들이란 참 묘한 관계를 가진 존재들이다.어떤 큰 일앞에서는 서슴없이 도와주며 힘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간에 가장 쉽게 상처를 입는것도 친형제사이다. 때문에 평소에 말을 한마디 해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작은 일일지라도 신경을 써서 처리해야 하며 매사에 대방의 리익을 생각해줘야 한다.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또 쉽게 사이가 벌어지게 되는것이다.


막내 시동생과 시누이는 친형제라고 믿고 그러는지 아무 말이나 서슴없이 내뱉고 무슨 일이나 양보할줄 모른다. 특히 형제끼리 계산이 명백하지 못한것이 큰 문제이다.친형제일수록 문서는 명확해야 한다. 내가 전화할 때마다 그렇게 일렀건만 마음에 새겨듣지 않더니 끝내는 적이 되고만것이다.


이전에 나는 시집은 돈도 없고 문벌도 없지만 형제들이 모두 착하고 서로 사이가 좋아서 자랑을 느꼈었다. 헌데 인젠 화목하게 한자리에 앉아서 지낼수도 없으니 시집으로 갈 멋이 없게 되였다. 그래서 남편보고 추운데 고생스럽게 가지말고 어머니한테 돈을 부쳐보내면 어떻겠는가고 물어보았더니 남편은 그것이 좋겠다며 아주 통쾌하게 응하는것이였다.


시어머니의 생일날이 다가오자 나는 큰시동생이 새 안해와 함께 떠나기에 미리 사놓은 시어머니 옷들과 생활비 그리고 현금 1000원을 보내면서 이 1000원 돈은 꼭 시어머니 손에 쥐여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시어머니는 80성상 살아오면서 누구한테서 1000원이라는 거금을 받아본적이 없다.나도 해마다 생활비외에 소비돈은 고작 200원이나 300원밖에 드리지 못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해마다 넉넉히 보냈으면 좋겠는데 마음뿐이지 그렇게 되지 않는다.이번에 어쩌다가 1000원을 보내면서 시어머니께서 기뻐하는 모습을 그려보니 내 마음도 흐뭇하였다.


그런데 괘씸한 막내시동생이 그 돈을 가로 챌줄이야.요런 불효한놈을 보았나.나는 너무 분해서 한달음에 달려가 막내시동생을 죽도록 패주지 못하는것이 한스러웠다.


어머니한테 자기가 돈을 드리지는 못할망정 남이 효도하는 마음까지 가로채다니.내 이놈을 어떻게 하면 좋을가? 온 밤 고민하다가 이튿날 아침 나는 막내시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너 일처리를 마음대로 하더구나. 너 내가 보낸 돈을 왜 어머니한테 드리지 않는거야?》


《어머니손에 돈이 있는걸요.다 쓰면 제가 드릴게요.》


《어머니한테 돈이 있건 없건 그것은 내가 어머니에게 드리는것이니 먼저 어머니 손에 쥐여준 다음에 어머니께서 건사해달라면 건사해주고 쓰겠다면 쓰게 해줘야지. 손에 쥐여도 주지도 않고 네가 그렇게 가로채면 어떻게 되는데? 너 간통이 커져도 너무 커졌구나.다른 사람의 효심마저 떼여먹는걸 보니.그 돈 내가 번것이지 너의 형님이 번것이 아니거든.내가 번 돈으로 시어머니한테 효도하는것인데 네까지가 뭐길래 감이 가로채? 가로채기를.》


나는 대방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탕 놓아버렸다.

막내시동생은 그후 내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한테 여직껏 그 돈을 돌려드리지도 않고.

(괘씸한놈 같으니라구.내가 아무때건 혼을 좀 내주련다.)


사람은 계속 오냐오냐 하면 머리우에 올라앉이 똥을 싼다더니 시어머니를 모시느라고 수고한다고 늘 저들편을 들어주었더니 막내시동생네는 아마 제멋대로 해도 되는가싶었던 모양이다.아무리 친형제라 해도 지킬건 지켜야 하는거 아닌가?!


막내시동생은 우리 여기 동북에 있는 형제들의 생활이 날로 향상하는데 저들의 생활은 그냥 그 본새이니 좀 시샘이 나 하는것 같았다.옛날에 우리들이 거북하게 살 때는 우리한테 아주 인정스럽게 굴던것이 지금은 온통 불만투성이다. 그것이 어디 우리 탓인가?


그들의 생활이 계속 펴이지 못하는 원인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내 볼바에는 주요하게 그들 자신이 생활을 경영할줄 모르는데 있다. 특히 막내동서는 안주인으로서 살림을 알심들여 해나가지 않고 되는대로 산다. 따지고 보면 막내네는 수입이 적지 않는데도 항상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가정생활을 윤기나게 하는가 못한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안주인한테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그들이 하루빨리 생활방식을 바꾸어 좀더 나은 생활을 해나갔으면 나도 시름이 놓이겠다.나는 이젠 나이도 들고 능력이 모자라 더는 그들을 도울것 같지는 못하다.형제들의 도움도 한도가 있는것이다.뜻하지 않은 천재를 입었거나 바쁜 고비에 서로 돌봐야지 무작정 바라기만 해서는 절대 안된다.


나는 몸은 비록 불구지만 웬만해서는 형제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애를 써왔다.결혼생활을 시작해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입이 많을 때건 적을 때건 돈을 언제 한번 함부로 써본적이 없었다.누군들 향수하고싶지 않겠는가? 나도 녀자이니까 돈이 있으면 비싼 옷을 사입고싶고 비싼 화장품도 사서 쓰고싶다.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때문에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항상 준비해야 한다.


자기 힘으로, 제한된 수입으로 이 목표에 도달하자면 웬만한 욕구는 버리고 열심히 가정을 운영해나가야 한다. 나는 바로 이런 개념으로 살림살이를 했기때문에 글방을 꾸려서 일년 반만에 만여원되는 묵은 빚을 다 물어버렸고 또 고생고생해서 단충집, 아파트까지 사놓을수 있었다.

아파트를 살 때도 5만원이라는 빚을 졌지만 각골한 노력으로 이악스럽게 돈을 모아 그 집값을 드디여 물어내고만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까지 자아냈것이다.


최원(다음기에 계속)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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