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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타는 전기고문에도 北 민주화 포기할 수 없었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5.12.02일 11:48

▲ 신간 '다시 강철로 살아'를 펴낸 북한민주화운동가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1일 저녁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과거 중국에서의 활동을 밝히고 있다. / 사진=데일리NK

[데일리 엔케이 ㅣ 김가영 기자] 1980년대 주체사상파 학생운동권의 대부였지만 1990년대 말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을 깨닫고 전향해, 북한민주화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13년 간 살해의 위협에도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펼쳤던 중국에서의 비공개 활동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신간 ‘다시 강철로 살아’를 집필해 1일 저녁 (사)시대정신과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공동주최로 출판기념회를 가진 김 위원은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 주민들이 스스로 하는 것이 맞지만, 아르헨티나의 체게바라와 같이 외국인들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민주화운동을 할 수 있다”면서 “북한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나와 동지들은 북한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으니 중국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소회했다.

김 위원의 책에 따르면,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던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은 그들의 가족들을 포함해 20~30명 정도였으며, 이들은 항상 곳곳에 파견된 중국 안전부 정보원들의 체포와 북한 납치조의 살해 위협에 대비해야 했다.

김 위원은 “중국에서 13년 간 군인, 대학생, 교사, 공무원할 것 없이 각계각층의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외부 세계의 진실과 북한 사회의 모순을 알려줬고, 그 과정에서 북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 하겠다고 결의한 이들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투쟁했다”면서 “중국에서의 활동은 아무런 보호막 없이 중국 정보기관의 추적부터 북한에서 파견한 납치조의 위협까지 극복해야 하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위원은 “몇 명의 탈북자를 북한민주화 운동을 위해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는지 밝힐 수 없으나, 그들이 북한 내부에서 위협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면서 “북한으로 되돌아가 북한민주화 운동을 하던 분이 고문을 받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한동안 눈을 감는 것조차 힘들었다. 눈만 감았다 하면 그 분이 어떻게 고문을 받았고 어떤 고통을 느껴야 했는지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또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가족들과 친지들이 금전적으로 도와주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웠다”면서 “때문에 일부 활동가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식당이나 작은 무역회사 등을 꾸리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국으로 나온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나는 활동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2년 3월 28일 김 위원과 3명의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돼 114일 간 구금된 이후 강제추방당하면서 이들의 중국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중단됐다.

김 씨는 이와 관련 “북한의 납치조와 암살조가 중국에 파견됐는데, 중국 국가안전부가 파악한 우리의 인상착의와 가명 등을 북한에 알려준 것일 수 있고 혹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부탁으로 중국 안전부가 우리를 추적한 것일 수도 있다”면서 “공안에 체포돼 자행된 전기 고문과 각종 구타는 아무런 기운이 없을 만큼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이어 그는 “죽을 수도 있는 전기 고문에 살이 타는 냄새가 날 정도였다”면서 “특히 6박 7일 간의 잠 안재우기로 기력이 완전 상실되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고문이 계속됐지만 북한 민주화에 대한 나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 위원은 1980년대 대학가 운동권 사이에서 필명 ‘강철’로 불리며 만 23세에 주체사상을 확산시킨 ‘강철서신’을 집필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군사정권의 유신 등을 경험하며 사회주의로 가는 방향이 옳을 것이라 확신, 학생운동조직은 물론 당시 최대 지하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신념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위원은 “동유럽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모두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고민과 번뇌를 하는 데 썼다”면서 “국유제와 계획경제, 기존의 마르크스 계급이론 등을 모두 버리고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이념을 만들자는 생각도 거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에 그는 1991년 북한에서 보내온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과 두 차례 면담을 했으나, 그가 경험한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창시하지도 심지어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알지 못해 그가 신봉했던 주체사상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북한에 갈 때까지만 해도 김일성이나 학자들이 주체사상에 기초해 사회주의를 뛰어넘는 이념들을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북한은 연구는커녕 주체사상에 대해 자유로운 발언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관료주의 사회였다.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형식적으로 내건 지도이념이었을 뿐, 그것은 오로지 김일성의 수령유일독재체제를 치장하는 사기극의 일환이었던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던 김 위원이 전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대 후반 그가 목격한 북한의 대아사였다.

김 씨는 “1990년대 후반 탈북자들로부터 북한의 참혹한 인권유린 현실을 들었을 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2중, 3중, 4중으로 재확인해 봐도 그건 진실이더라”면서 “내가 10여 년간 스스로 운동가, 혁명가라고 자처하고 살았는데, 여기에 조금이나마 진정성이 있다면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북한 민중을 못 본 척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현재 김 위원은 현재 국내외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김 위원 이외에도 중국에서 함께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가는 고초를 겪은 활동가들도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유재길 前시대정신 사무총장과 강신삼 국민통일방송 공동대표를 비롯한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은 “더 이상 중국에서 북한민주화운동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북한민주화의 실패로 이어진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13년 간의 활동이 북한 주민들에게 연대와 희망의 족적이었길, 그리고 북한민주화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디딤돌이 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북한인권 관련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정치권 인사들, 일반 시민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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