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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봉상이 바라본 연길 “천지개벽이지요”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12.21일 14:54

1965년 길림성축구팀의 전국1등 공신 당봉상.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이지요!” 60년대 최우수진영에 뽑혀 “연변축구60년 최우수인물” 시상식 참가차로 40년만에 연길을 찾은 당봉상(唐凤祥, 75세)이 백산호텔 창밖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다.

“그땐 층집이라야 주은래총리가 묵으셨던 주정부초대소, 랭면부가 있던 복무대로, 연변병원, 극장 이 정도였지요. 그때 우리가 공원으로 훈련하러 갈때면 영구표자전거를 타고 먼지를 보얗게 일구며 다녔는데 참으로 가관이였지요.” 당년을 회억하는 당봉상의 얼굴에는 청춘의 랑만과 즐거움이 살그머니 피여올랐다.

1980년부터 국가체육운동위원회(1998년부터 국가체육총국으로 개칭) 야구관리부에서 20여년간 부비서장, 비서장으로 있으면서 비올림픽항목들인 야구, 골프, 당구, 볼링 등 20여개 항목의 훈련과 경기를 총괄했던 당봉상은 연변사람들에게는 그냥 아득히 흘러간 옛날, 길림성팀의 한족선수로 남아있을지는 몰라도 중국스포츠계에서는 누구나 알아주는 당당한 전문가이고 자격있는 로간부(정처급)이다.

1940년 7월 장춘시 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태여난 당봉상은 어려서부터 축구에 매료되였는데 동북사범대학 체육학부에 입학한 1958년에는 길림성청년팀 주장으로 장춘 남녕체육장에서 길림성팀과 함께 훈련을 하고 평가전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의 뛰여난 속도와 신체소질, 출중한 대인방어는 당시 길림성팀 감독의 눈에 들었는데 이듬해 조선방문경기에 그를 성팀에 합류시키기도 하였다. 당해 그는 길림2팀을 따라 중경에서 2선팀경기에 참가하였는데 국가청년팀에 선발되여 북경에 남을 기회가 생겼지만 홀로 북경에 남기가 싫어 길림성팀을 따라 연길로 왔다.

1960년부터 그는 길림성팀의 수비선수로 갑급련맹전과 방문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유일한 한족선수였지만 인차 팀의 주력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1965년의 전국우승에 대해 1964년 을급련맹전 2등(남경부대팀 1등)으로 다시 갑급에 복귀한 뒤 연변팀은 동계훈련에서 3종1대의 대운동량훈련을 거쳐 다른 팀들보다 한뼘 우인 체력과 한사람처럼 움직이는 전술배합을 구사했기에 전국우승을 따낼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광동성팀의 대표적인 공격수인 광휘방의 별명은 “갈대”였고 길림성팀 공격수인 리광수의 별명은 “땅크”였다고 하면서 땅크와 갈대라는 말에 두 팀의 체력분배정도를 가늠할수 있다고 말하였다.

당시 길림성팀은 우수한 신체소질과 충족한 체력을 바탕으로 다른 팀들에서 구사할수 없었던 “전공전수”(전면공격, 전면방어)의 전술을 사용하였는데 연변팀에 2꼴이상 넣은 팀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년 연변팀의 풍격에 대해 당봉상은 “단순히 용맹, 완강 등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한사람같이 움직이는 집체, 북방의 호방한 성격, 간결하고 실용적인 공격, 전면수비와 쾌속반격 등을 꼽았다.



1965년 전국 우승후 장춘시 춘의호텔앞에서 남긴 기념사진.(뒷줄 가운데가 당봉상)

1965년 전국갑급련맹전 1위, 전국운동회 4위라는 성적을 따낸후 정종섭, 허경수 등과 함께 국가팀에 입선된 당봉상은 그때로부터 북경에 남았고 1970년대에 연길공원경기장에서 진행된 국가팀 친선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잠깐 들린후 4 0여년만에 처음으로 연길에 온다고 하였다.

국가팀에서 문화대혁명을 맞아 훈련과 경기외에는 혁명을 열심히 하였단다. 1974년에 퇴역한 당봉상은 약 2년간 국가체육운동위원회가 소집한 전국적인 청년운동원집중훈련반에 교련원신분으로 참가한다. 그는 축구, 배구, 농구 등 구류항목 훈련에 참가한 청년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는 한편 조사연구를 진행하여 훈련이 결속되자 국가체육위원회에 방대하고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연구보고를 제출한다…



그는 먹으로 그린듯한 짙은 눈섭을 치켜 올리면서 연길 내지 전 연변주의 거족적인 발전은 매우 기쁜 일이 아닐수 없으며 이는 연변축구의 발전에 건설적인 작용을 놀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리고 올해 연변장백산축구팀이 리그 우승으로 슈퍼리그에 진출했는데 거물급구단과 거물급선수들이 운집한 슈퍼리그에서 자격보존은 쉽지 않을것이라고 하면서 제한된 투자로 팀에 알맞는 전술과 그에 합당한 선수들을 리용하여 슈퍼리그 자격을 보존하는것을 전제로 좋은 성적을 따낼것을 기원하였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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