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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칼럼; 한진해운 책임은 누가

[온바오] | 발행시간: 2016.09.20일 01:32
[정규재 칼럼] 한진해운, 낯선 조류 (2) 책임은 어디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3일 국무회의 발언은 기록해 둘 만하다. “무책임” “도덕적 해이” “경제 피해” 등 서슬 퍼런 단어들이 줄을 이었다. 한진해운 대주주를 직접 겨냥한 것이었다. “결코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준엄한 비판, 질타, 책임추궁이었다. 보통은 중의적인 대통령 문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언어들이었다. 그러나 ‘어!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도 동시에 갖게 된다.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잘못 보고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회사가 망한 것은 당연히 경영의 실패다. 망하는 기업의 소유경영자들은 비슷하게 어리석게도, 소위 외부 금융전문가 혹은 경영컨설턴트를 스카우트해 CEO나 CFO 자리에 앉힌다. 톨스토이는 불행의 원인은 제각각이라고 썼지만 한국 기업 파산의 원인은 대개 이런 비슷한 이유를 갖고 있다. 이는 정치공학자를 곁에 두면 정치에 실패하는 것과 정확하게 같다. 현대그룹도 그렇고 한진해운도 대한전선도 웅진도 동양도 그랬다. 미국 유학과정 등에서 배운 설익은 금융지식은 기업을 생산의 주체가 아닌 금융의 주체로 착각하게 만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겨난 풍조이기도 했다. 이는 특히 2세, 3세 경영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유행병이다. 화려한 금융기법이 경영의 묘미로 다가오면서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 모두 비슷한 파국을 향해 항해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책임은 다른 문제다. 법정관리 후폭풍은 채권단과 금융위원회의 결정이며 책임이다. ‘배에 실린 화물에 대한 책임만큼은 끝까지 다해야 할 것’이라 말할 때의 책임은 한진해운에 속한 것이지 경영권을 상실한 조양호나 대한항공에 있지 않다. 아니 화주가 됐건, 채권자가 됐건, 대주주가 됐건, 수많은 크고 작은 이해관계자들의 개별적 청구권을 전면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이 바로 법정관리다. 법정관리에서는 대주주래 봤자 건질 것도 없는, 잔여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가질 뿐이다.

더구나 대한항공은 이미 너무 많은 돈을 기업회생과 자구노력에 퍼부어 해운 부실이 항공 부실로 전이되는 단계로까지 경영이 악화됐다. 대한항공이 유상증자 영구채 인수로 8259억원, (주)한진이 2351억원 등 그룹에서 1조2467억원, 한진해운 자체적으로 9963억원을 조달한 것은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노력이었다. 법정관리가 결정되자 대한항공 주가가 오히려 급등한 사실은 부실의 전이과정이 이미 위험단계였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더한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대한항공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중대한 배임이다.

대통령은 채권단 지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일상적인 상업대출 외에 구조조정용 자금을 지원한 것이 없다. 아니 별로 지원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법정관리에 집어넣고 서둘러 손을 떼자고 나섰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구조조정 시장의 결정적 약점이다. 여기에 산업은행은 채권단의 도덕적 해이를 구조화한다. 자구노력에 따라 돈을 집어넣는 순간마다 채권단은 철저하게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빨아들이는 흡혈박쥐 노릇을 서로 경쟁하게 된다. 부실은 모두 산업은행에 떠넘기고 개별 은행들은 유유히 손을 털고 빠져나간다. 당국은 개별 채권은행들의 손익 관계를 한 번쯤 계산해보시라.


재계에서는 벌써 새로운 금언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순진하게 돈을 먼저 넣지 마라. 돈을 넣을수록 채권단이 먼저 챙겨 도망간다. 마지막까지 버텨야 채권단이 도망가지 않고 구조조정에도 성공한다”는 금언 말이다. 바다업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법정관리의 후폭풍일 뿐 누구를 탓할 수 없다. 법정관리를 결행한 인사들 중 누구라도 부산 남항에서 미국 롱비치까지 컨테이너선으로 며칠이나 걸리는지, 또 그 과정을 유지시키는 두툼한 계약서 묶음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적이 있기나 한지, 그게 궁금할 따름이다. 지금 기항지를 잃어 태평양을 배회하는 선박만도 54척이라고 한다. “너!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서성이는 존재여!”라고 장송곡이라도 불러야 하나.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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