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거꾸로 비치는 타개죽 내동댕이치고
언제고 한번 올챙이배 되고 싶던
올망졸망 자식들 까만 눈들이
잘 여문 벼알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아버지의 허리를 아프게 짓눌렀는가
활이 되셨다, 돌덩이 같은 지게질 등짐질에도
휘이지 않던 아버지의 단단한 허리
자식들은 모두가 그 활에서 튕겨난 화살들
배속이 빈 것보다 머리가 빈 것이
더 안타깝고 답답했던 아버지
결코 진창에 소말뚝처럼 쑤셔넣고 싶지 않아
휘이면 휘일수록 더더욱 탄력 있는 활줄은
불어치는 회오리바람 쪼개며
하나 또 하나 소망의 푸른 화살들
무지개 비낀 천공으로 날려보냈다
이제 시위 떠난 화살들 별이 되여 돌아오지 않으니
그만 구부린 등 쭉 펴셔도 좋으련만
그 무슨 소망이 아직도 남아
그냥 활등이 되시는가
그리움 가득한 마당에서
구름 넘어 열린 하늘 향해 귀를 세우고
오늘도 반갑게 날아드는 금빛소식 목이 메는
아, 휘일지언정 꺾이지 않는 활이여
엄마의 〈밥시〉
밥상이란 단 한마디의 시를 짓기 위해
살과 뼈를 우려넣고 희생을 끓인 어머니는
다홍치마 첫날색시적부터 가마목에서
앞치마 두르고 솥뚜껑 돌린 주방운전수
정지간에 첫발을 들여논 그날부터 부지깽이란 까만 붓이
몇십 몇백개 닳아 문질러 질 때까지
보글보글 끓는 밥물의 선률에 칼도마 장단을 맞춰
우리 식솔 즐겨 읽는 밥이란 그 한줄의 시를
쓰시고 또 쓰셨다
아침 저녁 노을을 열심히 지펴
바깥일 부엌일에 손톱이 닳아빠진 어머니지만
로동의 힘듬보다 가난이 더 힘들어
때로 설익은 시를 쓰거나 쌀알보다 맹물을 더한
싱거운 시를 써야 할 때면 마치 자신의 잘못인 듯
허기진 가난의 몫 혼자 껴안고
달그락달그락 빈 밥그릇 긁는
철 없는 어린 것들 모지랑숟갈질에
속이 타다 못해 재가 되였다는 어머니
살점이라도 베여 보태고 싶은
그래서 쌀독은 긁어도 바가지만은 긁지 않았다
식솔들에겐 술목이 휘도록 감투밥 올려놓고
자신은 몰래 찬물에 누룽지 말아 굼때우시며
예고없이 들이닥친 무서운 흉년에도
〈밥시〉 짓는 엄마 솜씨 일품이여서
그 몇번 무사히 넘겼던가 그 험난한 보리고개를
솥뚜껑 밀어올리며 부글부글 끓던 밥물은
시를 쓰는 엄마의 벅찬 정열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은
시를 엮는 엄마의 뛰여난 재주
가마뚜껑 열 때 확 풍기며 코끝을 짜릿하게 하는
군침 도는 이밥냄새와 오글거리는 찌개의 그 맛은
정성과 재주를 함께 버물려 엮은 엄마의 〈밥시〉
조미료 없어도 산해진미처럼 입맛 돋구는
우리 집안 가족사랑의 명시였다
엄마의 시맛에 우리 모두 폭 취해서
딩당동당 숟가락질 신나는 음악
밥이란 시를 읽고 밥이란 시를 읊으며
못난 새끼오리들 하늘 나는 기러기로 자랐으니
아, 아침 첫 해살 눈섭 뜰 때부터
저녁 등잔불 눈 감을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좁은 부엌에서 지구를 돌리며
물에 부풀은 손마디 툭툭 거북등처럼 갈라터져도
오로지 밥이란 단 한줄의 시만 고집하신
당신이 진짜 우리 좋아하는 시인이였구려
주름 가득 모성의 푸른 강물 흐르는…
/강효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