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1일, 왕지차이(王繼才) 부부가 카이산(開山) 섬 순찰을 돌고 있다.
왕지차이(王繼才) 부부와 자녀들이 카이산(開山) 섬에 모였다. (2015년 2월 13일 촬영)
왕즈궈(王誌國, 앞)가 카이산(開山) 섬에서 부모를 도와 그림을 붙이고 있다. (2015년 2월 13일 촬영)
2017년 2월 21일, 왕지차이(王繼才) 부부가 카이산(開山) 섬의 간이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다.
2017년 2월 21일, 왕스화(王仕花)가 수년간의 해안 방위 일지를 정리하고 있다.
2017년 2월 21일, 왕지차이(王繼才) 부부가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있다.
2017년 2월 21일 촬영한 카이산(開山) 섬의 모습이다.
[인민망 한국어판 5월 5일] 2017년 1월 1일 왕지차이(王繼才) 부부가 카이산(開山) 섬 최동단에서 개최된 국기게양식에 참가했다.
카이산 섬은 중국 황하이(黃海) 해 최전선으로 일본, 한국의 공해와 인접해 있다. 면적은 0.013㎢에 달하며 가장 가까운 육지는 장쑤(江蘇, 강소)성 롄윈강(連雲港, 연운항) 관윈(灌雲)현 옌웨이강(燕尾港)으로 12해리 정도 떨어져 있다. 섬에는 야생 초목이 무성하고 해풍이 강해 인적이 매우 드물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30년 동안 살아온 왕지차이 부부는 ‘외로운 섬의 초소 부부’라고 불리고 있다.
1986년 장쑤성 군구(軍區)에서 카이산 섬에 민병초소를 설립했고 현지 인민무장부(人民武裝部)는 관윈현 민병인 왕지차이에게 카이산 섬 민병초소에서 보초 임무를 서라는 임무를 내렸다. 왕지차이는 이를 수락했고 최초 가족들을 속이고 카이산 섬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후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내 왕스화(王仕花)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초소원이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남편과 함께 30년 동안 섬 호위 임무를 수행해왔다. 이 부부는 매일 섬에서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계양하며 해양 경계, 항공 경계, 해상 구조 임무, 경계 일지 작성 등을 실시하고 있다. 큰 바람으로 파도가 거세어 섬을 나갈 수 없을 때 왕지차이는 직접 자신의 아들을 받기도 했으며 섬 호위 임무를 위해 30년간 단 5번, 가족들과 함께 춘제(春節, 춘절: 중국 음력 설)를 보냈다고 한다.
2014년 카이산 섬에는 애국주의 교육기지가 설립됐고 총 5,0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번역: 은진호)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