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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60년》50년대 전국에 소문난《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6.23일 20:56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맞이 특별기획 《기억속의 60년》

지난세기 1952년 12월 새 중국이 탄생된후 최고의 미술출판사였던 상해의 신미술출판사와 북경의 인민미술출판사에서는 길림성 연길현 동성용향 영성촌의 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김시룡호조조)를 주제로 하는 련환화(그림책)를 다투어 출판한적 있다. 그중 상해의 신미술출판사에서 출판한 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 련환화책은 1953년 3월에 인기리에 재판까지 되면서 도합 6만여부 발행되였는데 선진전형인물의 사적이 당시 인기구독물이였던 련환화로 소개되고 또 전국적으로까지 널리 보급되였던것은 김시룡호조조의 전국적인 전형사업성과와 갈라놓을수 없다.

1952년 12월 신미술출판사가 출판한 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 련환화표지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인 호조조, 그렇다면 조선족인 김시룡은 어떻게 호조조로 전국에까지 크게 소문날수있게 된것일가?

호조조는 중국공산당과 인민정부의 지도와 방조하에 로동농민들이 자원호혜의 기초우에서 조직한 합작경제조직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기전에 호조조는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부분적인 지역에만 개별적으로 존재했으며 진정으로 보급 되고 발전하기 시작한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후부터이다.

자료에 따르면 김시룡이 살고있는 연길현 동성용향 영성촌에서 《호조조》를 정식으로 꾸린것은 1947년 여름이라고 한다. 그때 이곳에서는 토지를 분여하면서 전 마을을 한데 합하여 한개 《호조조》를 무었다.

호조합작의 경험이 없는 형편에서 대번에 큰 조를 뭇고보니 모순이 련속부절하게 나타났는데 로력랑비가 많았고 로력공수평가가 합리하지 않고 과학적이 못되여 생산적극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생산력발전에 커다란 장애로 되였다. 그해 가을 중농이상 농호 일곱집이 먼저 《호조조》에서 물러나가자 억지로 참가하였던 농민들과 로력, 부림짐승이 넉넉한 집들도 슬금슬금 《호조조》에서 나갔다. 영성에서 처음 조직한 《호조조》는 이렇게 유야무야해지고 말았다.

1948년 봄, 《대형호조조》를 강제적으로 조직하여 실패한 경험교훈을 찾고 이번에는 자원호혜의 원칙을 관철하여 《소형호조조》를 조직하였다. 영성에서는 서로 뜻이 맞고 감정이 맞는 농민들이 네댓 혹은 대여섯씩 한개 조를 무어 전촌을 여섯개 《호조조》로 조직하였다.

여섯개 《호조조》가운데서 갑자기 김장룡호조조가 조원 한사람이 병사하는바람에 로력이 결핍하여 흩어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에 김시룡은 자원적으로 《김장룡호조조》로 넘어갔다. 김시룡은 조장을 도와 《호조조》를 잘 꾸려나갔다. 김시룡의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로력이 늘 딸린다던 이 《호조조》는 개체농호보다 1주일 앞당겨 타작을 끝마쳤다.

풍년든 세전벌에서 농업전문가와 함께 기쁨의 미소를 짓고있는 김시룡(오른쪽)

1949년 봄, 영성촌의 여섯개 소형호조조는 또 다시 대형호조조로 되였다. 마을사람들은 한결같이 감농군이고 살림군이며 진국인 김시룡을 조장으로 선거하였다. 큰 살림을 한몸에 떠멘 김시룡은 조원들의 앞장에 서서 밭일에 참가하였으며 제일 일찍 밭에 나갔다가 제일 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김시룡은 경영관리사업에 힘을 기울여 존재한 모순을 찾았다. 군중들은 시끄러운 밭머리평공, 비오기전후의 김매기, 후치질에서의 로동차이, 로동강도, 불합리한 등가교환 등 18가지 모순을 폭로하였다. 이에 김시룡은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책을 창조적으로 제기하였다.

우선 표준공을 정하였다. 토질이 좋은가 나쁜가, 어떤 곡식을 심는가, 마을에서 밭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 하는 등을 고려하여 조원들의 민주적인 평의를 거쳐 봄부터 가을까지 소요되는 총공수를 정하였는데 이것을 표준공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여러가지 모순과 불합리한 현상이 시정될수있었다.

다음 합작자금을 설치하였다. 담배농사, 양기르기 등 비교적 많은 로력과 자금이 소요되는 농업과 부업은 개인으로 경영하기 힘들었다. 《호조조》에는 로력은 남아있으나 자금이 없었다. 이런 실정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부업을 경영하기 위하여 조원들에게서 받아들인 자금을 합작자금이라고 하였다. 분배때에는 합작자금 역시 로력과 같은 역할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로력기준량을 정하였다. 조원들의 숙련정도, 신체상황, 같지 않은 로동에 따라 로력기준량을 정하였다.

《김시룡호조조》를 소개한 련환화의 한 페지

《김시룡호조조》는 가난한 조선족농민 23세대로 조직되였는데 총인구 117명 가운데서 남자로력 20명, 녀성로동력 26명이였다. 가축으로는 소 16마리에 소수레 12대였으며 그 외에 말 한마리와 노새 한마리는 호조조의 연자방아간에 두어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토지는 한전 26헥타르 6무 5푼, 수전 13헥타르 9무 6푼인데 합치면 40헥타르 6무 1푼이였다. 그러니 인당 3무 3푼 돌아가는셈이였다. 김시룡은 춘경때 남아돌아가는 로동력을 조직하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한전 1쌍과 수전 8무를 확대하였다. 하지만 농토는 적고 로력과 축력이 남아돌아가는 모순은 의연히 해결되지 않았다.

한해 농사를 지으면 인당 알곡 465킬로그람밖에 안돌아간다. 이것으로 공량을 20%로 바치고 식량, 종자, 사료를 남겨놓는다면 의복을 지어입을 돈이 생길 구멍이 없다. 그러니 알곡생산만으로는 살림이 펴일수 없었다.

이에 김시룡은 우선 땅을 잘 가꾸었다. 농토의 시비면적을 80%로 증가하고 40%의 밭을 네벌 김매고 네 번 후치였으며 그 외 밭은 세벌 김매고 세번 후치였다. 하여 헥타르당 수확고를 2612.5킬로그람으로 올려 전해보다 64%로 증산하였으며 개체호보다 헥타르당 105킬로그람 증산하였다. 1헥타르 8무의 개간지에서도 적지 않은 수확고를 높이였으며 1헥타르 1무의 한전을 수전으로 개답하여 수확고를 높이기도 했다. 그밖에 담배농사를 하여 수입을 올렸다. 김시룡은 또 조원들에게서 자금을 모아 여유로력을 조직하여 닭, 오리, 돼지, 양 등을 사양하였으며 녀자들을 조직하여 약재를 캐게 하였는데 부업으로 업은 수입은 5만여킬로그람의 식량가치에 해당되였다. 농업과 부업으로 얻은 수입으로 의식의 해결이 문제없이 되였으며 생활을 일정한 정도로 개선할수있었다.

개체로 경작할 때보다 수입이 증가되니 《호조조》내부에서 동요하던 조원들은 장기타산을 갖게 되었으며 《호조합작》이라면 외면하던 개체호들은 호조조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김시룡호조조》의 경험은 연길현의 계선을 넘어 전 연변에 소개되였다. 경영관리사업이 따라가지 못하여 해산될 위험이 있던 적지 않은 《호조조》들은 《김시룡호조조》의 경험을 학습하고 새로운 기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김시룡이 호조조를 본때있게 내밀고 나가고있을때였던 1950년까지만해도 우리 나라에는 19개 농업생산합작사밖에 없었으며 1951년말에 이르러서야 130개로 발전했다. 전국적으로 농업생산합작사가 서서히 널리 보급, 발전하기 시작하던때라 김시룡의 선진전형성을 띤 농업생산합작사 경험은 전국적인 전형과 경험으로 주목받게 되였다.

1949년, 《김시룡호조조》는 연길현로력모범대회에서 1등《모범호조조》로 당선되였다. 1950년, 김시룡은 길림성특등로력모범, 전국로력모범의 영예를 지니고 북경에 가 국경 첫돐기념모임에 참가하게 되였으며 모주석의 접견도 여러차 받았다. 또 모스크바를 방문, 쓰딸린의 접견까지 받았다. 김시룡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제1기로부터 제3기에 이르는 기간 줄곧 대표로 당선되였고 또한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당선되였다.

김시룡이 설립했던 새벽농민대학

김시룡은 1951년에 연변농학원과 손잡고 새벽농업대학을 창설하여 농업로동에 참가하고있는 농민들로 하여금 농업과학기술을 습득하게 하는데서도 큰 공헌을 하였다.

김시룡은 1992년 7월 17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비록 김시룡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겨놓은 지난세기 50년대 연변조선족자치주와 길림성, 나아가 중국농촌의 농업생산합작사 보급과 발전가운데서의 선진전형적인 형상은 60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오래된 련환화속의 살아있는 모습으로 수많은 조선족군중들의 마음속에 자랑과 긍지로 남아있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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