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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60인]공화국이 키워낸 저명한 조선족의학박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09.10.26일 10:47
[공화국창립60돐 기념 특별기획 60주년에 만나본 60인] - 기획보도(35)

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윤종주교수 만나본다

● 로기순박사의 제자 국내외 생화학분야의 유명한 학자

●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한 회장

● 장백산자원 개발로 민족의약업 이끄는 사람


윤종주프로필:

1935년 1월 25일 연길현 조양천 출생

1957년 연변대학 의학부 졸업

1982년 일본 히로사끼대학 의학박사학위 취득

1983―1999년 연변의학원 생화학교연실 주임 겸 종양생물화학 연구실 주임

1984―1986년 연변의학원 기초의학부 주임(겸)

1995―1998년 연변대학 의학원 기초의학연구소 소장

1997―2001년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리사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제8, 9기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

1983년 전국소수민족지구, 변경지구 우수과학기술일군

1984년 길림성 첫패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전문기술인재

1992년 국무원 정부특별수당금 획득자

1994년 전국변경지구우수의학과학기술일군

창문으로 가을해살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포근한 거실에서 윤종주교수와 마주앉았다.

농민아들이 유명한 의학박사가 되다

11세에 아버지를 여읜 종주네는 어머니가 4남매를 힘들게 키웠다. 윤종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20리 산길을 걸어 꼭꼭 학교로 다녔다.고중시절부터 종주는 조학금을 받기 시작했다. 나라에서 돈까지 대주면서 공부시키는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나라에 보답하는 길이 공부를 잘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던 연변대학 의학부의 로기순(基舜)박사가 당시 연변에서 가장 학문이 있는 학자로 정평이 나있었다. 《로박사의 학생으로 되여 앞으로 나도 출중한 의학자가 되자.》며 연변대학 의학부에 입학, 졸업한 후 그는 모교에 남아 생화학강좌 교원으로 되였다.

1958년 북경의과대학 생화학강좌로 연수에서 그는 중국생화학분야의 창시자의 한사람인 중국과학원 원사 류사직(劉思職)교수와 영양생화학자 장창영(張昌潁)교수 및 효소학전문가 정연개교수 등 명망있는 학자들의 지도밑에 생화학리론, 과학연구방법과 교학법을 계통적으로 배웠다.



연변대학 의학부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3명의 박사(왼쪽부터 윤종주, 오국룡, 리재류).

60년대에 윤종주는 지방병연구소조의 성원들과 함께 선후하여 《연변지구극산병류행병학조사보고》 등 7편의 론문을 써냄으로써 연변지구 극산병예방치료사업에 기초를 닦아놓았다.

70년대에는 《젖산탈수소효소 아이소자임의 림상의의에 관한 연구》에 착수, 마침내 한천전기영동법으로 혈청젖산탈수소효소 아이소자임을 분리해냈고 유르꼬프씨의 방법을 개량하여 직접 비색정량법으로 우리 나라 정상인과 여러 가지 질병환자의 혈청젖산탈수소효소 아이소자임을 측정해냈다. 그후 그는 선후로 우리 나라 건강한 성인의 혈청젖산탈수소 아이소자임그라프 및 그 정상치에 대한 탐구와 TNT중독, 간장질환, 극산병, 류행성출혈열 환자의 혈청젖산탈수소효소 아이소자임그라프 및 그 림상의의에 관한 연구에서 성과를 따내였다.

그는 선후로 중국생리과학회 제15기 전국학술회의와 제3차 중국생화학회의에서 상술한 연구 론문을 발표하여 국내생화학계의 중시와 호평을 받았다. 이 두차례 회의에서 윤종주는 그 성과가 중국생화학계의 인정을 받아 제15기 중국생리과학회 리사, 중국생화학회, 제1기리사회 리사로 당선되였으며 《국외의학분자생물학분책》의 편집으로 특별초청받았다. 그의 《젖산탈수소효소 아이소자임의 림상의의에 관한 연구》는 길림성 1979년과학기술성과상을 안아왔다.

1980년 일본 히로사끼대학 의학부의 첫 중국인 류학생으로 가서 《큰쥐간암발생과정에서 유도되는 UDP―그루크로닐트란스페라제의 정제와 그 성질에 대하여》란 박사학위론문에서 간암발생과정에서 해독계통효소의 일종인 UDP―그루크로닐트란스페라제가 배태형변이를 발생하고있다는것을 천명했고 이 효소를 분리해내고 정제했으며 그 성질을 규명하고 림상적의의에 대하여 새로운 견해를 제출했다. 종양효소학분야에서 한가지 공백을 메운것으로 하여 의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귀국한 이듬해에 윤종주는 교수로 파격승진하였다.

당시 귀국하기 전까지 의학부력사상 박사학위를 가졌던 사람은 건국전 박사학위를 딴 로기순박사 한분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류학생제도가 회복된 후 윤종주를 포함하여 처음으로 3명의 박사가 탄생했던것이다.

귀국해서부터 윤종주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UDP―GT, 7-GT와 GST-7 등 종양표식(標志)효소가 소화계통종양 및 그 암전병리변화조직중에서의 발현 및 그 림상의의에 대한 계렬연구를 벌여나갔다. 그중 《새로운 간암표식효소 및 그 성질에 대한 연구》가 1987년도 국가교육위원회 과학기술진보 2등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윤종주교수는 국내외학술지와 국내외학술회의에서 론문 200여편을 발표했으며 전문저서와 번역서 5권을 출판하였다. 그의 뛰여난 연구성과는 국내외 생화학학계와 국가 해당 부문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생사존망 시각에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리사장으로 재임기간 국가민족사무위원회전임 주임 리덕수와 함께(1999년).

윤종주교수는 그동안 연변과학기술협회 부주석,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부회장, 회장 등 직무를 력임했었다.

《올해는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 창립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여 우리는 8월에 성대한 경축모임을 가졌고 저 또한 전직 회장의 신분으로 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는 책에 축사를 썼습니다. 20년래 우리 협회는 없던데로부터 창립되고 창립되여서부터 오늘날까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개혁개방과 더불어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제가 회장을 담임하는 기간에 우리 협회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처해있었습니다. 어찌보면 협회의 생사존망을 결정하는 관건적시기라고 할수 있었습니다.》

1998년 그가 협회 리사장을 맡은 이듬해에 국무원에서는 새로운 사회단체조례를 공포했는데 모든 협회는 반드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재등록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단일민족협회인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는 재심사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였다. 윤종주는 수차 중국과학기술협회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및 국가민정부의 주요 책임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교류하였다.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발달하지 못한 변경소수민족지구로서 민족의 경제진흥과 문화과학기술의 번영을 위해서는 전국 각지에 있는 우수한 조선족과학기술인재들의 재능을 발휘해 민족지구의 경제를 춰세워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의 주요역할이 바로 이것이라고 피력했다. 그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는 중국과학기술협회 관장으로부터 국가민족사무위원회 관장으로 넘어갔으며 2000년 12월 국가민정부에서는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에 법인사회단체 등록증명서를 발급했다. 이로써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는 국가급협회로 정정당당하게 활동을 할수 있는 법적기초를 다지게 되였던것이다.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는 설립초기 명칭이 중국조선족과학가협회였으며 부교수급 이상의 학자만이 회원자격을 가질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협회는 결국 60세 이상의 회원이 다반수를 차지하여 로화현상이 엄중하였다. 그리하여 협회에서는 다시 상급부문에 신청하여 명칭을 중국조선족과학기술자협회로 고치고 회원자격을 강사이상으로 수정하였다. 이렇게 되여 협회에 많은 젊은피가 흘러들게 되였다. 이 토대우에서 협회에서는 젊은 인재를 뽑아 단기연수를 보냈고 또한 국외의 합작연구항목에도 참여시켰다.

조선족 후배과학자들에 간절한 부탁

《20주년 경축대회에서 보니까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참말로 많았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젊은 인재들이였습니다. 경축대회에서 우리 민족의 유일한 원사인 강경산교수가 우주공간개발에 관한 학술강연을 하였고 또 많은 젊은 학자들이 자신들의 첨단과학 연구업적을 발표했습니다. 이로부터 우리 협회가 이미 상당한 수준을 갖춘 국가급 사회단체로 부상했다는것을 심심히 느꼈습니다.》

《알다싶이 우리 민족은 전국 56개 민족가운데서 과계민족(跨界民族)에 속합니다. 우리 민족은 한국과 조선과 함께 발전하면서 서로 적극적인 영향을 주고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소수민족가운데서 문화보급면에서 앞선 민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대학생의 비례, 문맹퇴치 등 면에서 우리 민족은 우수한 전통을 갖고있지만 첨단기술분야에서 우리 민족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있는 실정입니다. 선배학자로서 저는 우리 젊은 학자들이 황금시절을 아끼고 아껴서 학문에 정진하여 하루 속히 혁신형인재로 성장하여 민족과 조국을 위해 더 큰 기여를 하고 영예를 떨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은 일생을 의학연구사업에 바쳐온 참된 학자의 젊은 세대에 대한 절절한 부탁인것이다.

1995년 연변대학 의학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공동연구과제인 《초종용의 화학성분 분리와 동정 및 그의 약리활성에 관한 연구》는 《불로초》라고 불리는 초종용에서 네가지 화합물을 분리, 정제해내고 그 구조를 밝혀냈는데 그중 3가지는 새로 발견한것이다. 그는 또 동물실험을 통해 초종용의 항암, 항염증, 항산화, 항피로, 항로쇠 작용을 확인함으로써 초종용을 항암약, 항염증제와 건강식품으로 개발할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초종용의 생물활성물질의 화학구조와 항암,항염증 작용에 관한 연구》는 2002년 길림성과학기술진보상을 수상했다.

《우리 장백산에는 천연식물, 미생물, 곤충 자원이 매우 풍부합니다. 이런 자원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고있는 항암물질이 많이 들어있지요. 우리는 이런 자원개발을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진전이 매우 굼떴습니다. 초종용연구를 계기로 항암활성물질개발에 진력하고 또 이면의 성과로 의약품, 건강식품을 개발해내여 연변의 경제건설과 진흥을 위해 한몫 하고싶었던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윤종주교수는 젊은 조선족의학자들이 계속 이 면의 연구를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하였다.

로기순박사의 귀중한 유산을 찾아낸 제자

로기순교수님은 지난 세기 20년대말부터 생화학연구사업에 종사하여온 우리 나라 로일대의 저명한 생화학자입니다. 그는 학식이 연박하고 학문을 엄격히 하는 학자이며 학생들에 대한 요구가 엄격한 의학교육자였습니다. 또한 의술이 고명하고 의덕이 고상하여 연변인민의 애대를 받아온 의학자였습니다. 그는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고 필생의 정력을 의학교육사업과 의료위생사업에 이바지하여온 우리 민족 고등의학교육의 창시자이며 선구자입니다.

10년 동란은 로기순교수님의 박사학위론문은 물론 그외의 그 어떤 가치있는 학술자료가 실려있는 종이쪼각 한장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로기순교수님은 우리 연변대학 의학부의 초대 학부장 겸 제1대 생화학 교수님으로서 일본류학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오셨으며 그후 연변의학원 기초의학부 학부장 겸 생화학강좌의 제2대 주임교수직을 맡았습니다. 저는 로기순교수님의 제자로서 그리고 그의 생화학사업의 계승자로서 잃어버린 스승님의 박사학위론문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우리 학교와 생화학강좌의 력사적유산임을 깊이 느꼈습니다.

저는 1920년대 후반기로부터 1930년대 상반기 사이에 출판된 미국 《화학문적》(CA), 일본 《의학중앙잡지》 및 《일본생화학회회보》 등 국제문헌들을 계통적으로 찾아 열독하는 가운데서 로기순교수님이 1929년 7월부터 1932년 1월 일본 규슈대학 의학부 의화학강좌에 류학하는 기간 완성한 박사학위론문과 연구업적을 찾아냈습니다.

로기순교수님은 1932년1월 일본 규슈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는데 박사학위론문은 《뇨산 및 알란토인 분해효소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서 주론문 3편 과 참고론문 1편, 도합 4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로기순박사는 당시 림상의학상에서 종종 볼수 있는 통풍(痛風, 즉 체내에서 푸린대사산물인 뇨산의 축적 혹은 푸린대사장애로 하여 일어나는 질병)을 해결할 목적으로 뇨산의 분해대사, 특히는 뇨산분해효소에 대하여 창조적탐구를 하여 비교생화학연구분야에서 귀중한 과학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후세에 보귀한 과학유산을 남겨주시였습니다. 그의 연구성과는 뇨산분해대사의 연구와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학발전에 대한 모교의 기여

윤종주교수는 연변대학 의학학부의 자랑찬 60년을 이렇게 회고한다. 1948년10월에 창건된 연변의과전문학교는 1949년 3월 연변대학 의학부로 되였고 1958년 8월에는 쏘련의 교육체제를 모방하여 중공길림성위의 결정에 의해 단과대학인 연변의학원으로 독립하였습니다. 근 반세기의 우여곡절을 거쳐 1996년 6월 국가교육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다시 연변대학 의학부로 되였습니다.

우리 대학은 로기순, 정규창 등 원로교수님들과 전교 교원, 학생과 직원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매우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우리 민족 간부와 의무일군들의 양성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은 지금 북경을 포함한 전국 여러 대학과 중국과학원 및 중국의학과학원 산하의 여러 연구소들에서 교수, 부교수, 연구원, 부연구원으로 사업하면서 《863계획》등 국가의 중대한 연구과제를 맡고 활약하고있으며 많은 졸업생들은 전국 각지의 의료 위생부문에서 중견일군으로 활약하고있습니다.

오늘에 와서 의학부에는 박사가 도합 87명이 있고 정, 부 교수 99명. 연변대학 부속병원에는 박사68명, 정, 부 교수급 주임의사, 부주임의사 등 297명이 있습니다. 국무원 정부특별수당금획득자 8명, 중국의약위생성과감정평심위원 8명, 국가자연과학기금위원회 생명과학부 평심위원 9명이 있고 길림성 돌출한 공헌이 있는 중청년 전문과학기술인재 4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 의학부 교수들과 전국 각지에 분포되여있는 의무일군들 가운데는 적지 않은 성급 및 국가급 로력모범, 선진과학기술일군, 《3.8붉은기수》 등 선진일군들이 용솟음쳐나와 자기들을 양성한 국가와 모교를 위해 영예를 빛내고있습니다.

편집/기자: [ 인민넷 박정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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