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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女, 성폭행男 음료수 줬는데 입술이…

[기타] | 발행시간: 2012.12.09일 00:03
[채널 15 JTBC 스페셜] 진화하는 경찰 과학수사

지문·얼굴 감춘 성폭행범 '입술 지문'으로 잡아

#1. 전주에 사는 A씨(47·여)는 지난 8월 끔찍한 일을 당할 뻔했다. 혼자 사는 집에 30대 남성이 베란다를 통해 몰래 들어와 A씨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것. A씨는 남성에게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 좀 하자”며 남성을 진정시켰다. 흥분을 가라앉힌 남성이 방심한 틈을 타 A씨는 집 밖으로 도망쳤다. 이후 남성은 도주했지만 음료수를 마신 유리컵에서 그의 유전자(DNA)가 검출돼 결국 경찰에 검거됐다.

 #2. 2008년 부산에 사는 B씨(45·여) 집에 복면을 쓰고 장갑을 낀 김모(30)씨가 침입했다. B씨를 성추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김씨는 피해자가 저항을 포기하자 긴장이 풀렸다. 목이 말랐던 김씨는 B씨 집 냉장고를 열고 음료수병을 꺼냈지만 뚜껑이 잘 열리지 않아 한쪽 장갑을 벗었다. 결국 이 순간적인 행동 때문에 김씨는 검거됐다. 음료수병에 작은 조각 지문이 남았던 것. 당시 기술로는 감식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경찰은 최근 새로 개발된 지문 분석 기술로 4년 만에 김씨를 찾아냈다.

서울경찰청 정성국 검시관 연구팀은 입술 지문(순문)을 A~J까지 10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순문은 지문의 융선과 달리 입술의 붉은 부분인 입술 점막과 입술의 가장자리 사이에 있는 땀샘과 피지선, 피부 균열에 의해 생긴 홈의 독특한 생물학적인 특징 등으로 개인을 식별하는 방법이다. [사진 JTBC]

 두 사건의 범인들은 범행 현장에 남긴 유전자(DNA)와 조각 지문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잡힌 건 다행이지만, 과학수사가 한 단계 진보했다면 한결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두 현장에 공통적으로 남은 범죄 흔적은 바로 ‘입술 지문’이다. 두 남자가 물을 마실 때 생긴 입술 지문이 성범죄 현장의 유리컵과 음료수병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던 것이다.

 순문(脣紋), 이른바 입술 지문. 선진국에서 범인을 잡아내는 데 적극 활용하는 개인 식별 자료다. 이를 수사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이 최근 국내 법과학회에 발표됐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팀 정성국 검시관은 최근 출간된 한국법과학회지에 실린 ‘한국인 입술 지문의 형태학적 분류’ 논문에서 순문도 지문이나 DNA처럼 개인 식별이 가능해 유용한 법정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검시관 연구팀은 국내에 거주하는 40~70대 남녀 212명을 대상으로 입술 문양을 채취했다. 입술의 구역을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나눈 뒤 각각 중앙·좌측·우측의 6곳으로 구분했다. 10개의 손가락 지문이 각각 다르듯이 입술도 구역에 따라 문양이 모두 달랐다. 입술 점막과 땀샘·피지선으로 이뤄진 순문이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구팀은 각기 다른 입술 지문의 공통 문양을 묶어 수직, 나뭇가지, X자, 수평, 그물 형태 등 A에서 J까지 총 10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정 검시관은 “전통적으로 지문과 유전자를 통해 신원 확인이 이뤄지고 있지만 날로 지능화하는 범죄 수법으로 범인들이 이러한 증거들을 현장에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입술 자국과 발바닥 지문, 미세 증거물 등 다양한 흔적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 부모의 입술 문양 일부가 자녀에게 유전되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형제 간에 일치하는 입술 지문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DNA로 구분이 어려운 쌍둥이도 순문으로는 확연히 구별된다. 입술 지문은 부모에게서 일정한 문양을 물려받는다. 또 지문처럼 세월에 따라 변하지도 않는다는 게 연구 결과다. DNA로 구분이 어려운 쌍둥이도 입술 지문으로는 구별된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연구 결과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취재진은 실제로 40대 쌍둥이 김모씨 형제를 대상으로 순문을 비교해 봤다. 육안으로도 입술 문양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 형은 끊김이 없는 수직 문양의 ‘A형’인 데 비해 동생은 영문 X자 문양의 ‘H형’이었다.

 강도 사건이나 성폭행 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하며 현장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면 냉장고에서 물이나 음료를 꺼내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긴장을 푸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자와 마스크·장갑을 착용해 지문과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며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이러한 사소한 행동에서 범인의 실체를 확인하는 새로운 증거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입술 지문은 음료수 캔, 유리컵과 거울뿐 아니라 음식 포장지, 옷, 휴지, 수저, 담배꽁초 등 다양한 증거물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현재 증거물 수집 과정과 감정 시스템에서는 별도로 채취되지 않는 게 국내 수사기관의 현실이다. 순문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선 다르다. 범죄 과학수사를 위해 입술 지문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1999년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살인 용의자 재판에서 입술 지문을 증거로 제출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 남성이 한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총알의 출처가 어딘지, 누가 쐈는지 아무런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현장을 감식하던 경찰관이 피해자 주변에 버려져 있던 청색 테이프 조각을 발견했다. 감식반이 분석해 보니 입술 자국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이 테이프에 묻어 있는 입술 자국이 용의자 중 한 명의 순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조사 결과 용의자가 소리지르는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공범에게 테이프를 건네며 시범을 보였고, 이때 용의자의 입술이 테이프에 닿았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1969년부터 순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도쿄치과대 스즈키 가즈오 교수가 입술 문양을 여섯 종류로 분류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자 일본 경시청은 실용화를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립스틱 자국 외에는 입술 지문을 채증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 한계가 있었다. 현재는 피지선 분비 형태를 형광 염료를 이용해 추출할 수 있다. 계측 촬영을 이용한 분석도 가능해 별도의 분석 비용이 거의 필요 없다는 이점도 있다.

 입술 지문 수사 기법은 지문과 유전자 감식을 통한 수사 기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으로 기대된다. DNA는 전과자 위주로 데이터가 구축돼 있고 채취를 위해서는 개인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손가락 지문도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많다. 외국인이나 18세 미만 청소년 등 지문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은 용의자의 경우 지문이 남아도 사람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입술 지문은 ‘체일로스코피(cheiloscopy)’라고도 불린다. ‘입술을 보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순문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1902년 피셔(Fisher)로 알려져 있다. 정 검시관은 “한국인의 입술 지문을 형태학적으로 분류한 이번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입술 지문을 사건 수사에 적극 활용하면 법정 증거물로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문 분석 기법이 개발되면서 요즘 미해결 사건의 범인들도 줄줄이 잡히고 있다. 순문이 본격적으로 과학수사 영역에 들어온다면 범인의 입술이 스쳐간 모든 사물이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울 결정적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앙일보 강신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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