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이스메이커'와 '파파'에 출연한 배우 고아라.
저평가됐던 여우(女優)들의 반격이 매섭다. 재평가의 해다.
시작은 고아라가 알렸다. 고아라는 지난 2003년 13세의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드라마 '누구세요?', '맨땅에 헤딩'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아역 연기자로선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성인 연기자로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인형 같은 외모와 상큼한 이미지로 CF계에서 주목을 받을 뿐이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보일락 말락"이란 CF송이 인상적이었던 음료수 광고가 고아라의 대표작이었다.
배우 이나영은 영화 '하울링'에서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올 들어 그 벽을 깼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와 '파파' 등 두 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무엇보다 연기력을 입증했다는 점이 소득이다. 장대높이뛰기, 댄스, 노래 뿐만 아니라 감정 연기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고아라는 '파파'의 개봉을 앞두고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 이름이 '보일락 말락'으로 불려지는 순간이 있었다"며 "'내가 광고를 통해 만들어진 인형이 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랑도 좋지만, '작품으로서도 사랑을 받아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데뷔 14년차 배우 이나영도 마찬가지. '배우'란 말보다 'CF 스타'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연기자였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도망자 플랜B', 영화 '아는 여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비몽' 등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CF에서 얼굴을 비춘데다가 'CF만 하는 배우'란 선입견이 강했다.
영화 '화차'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 김민희.
이나영은 송강호와 함께 출연한 '하울링'을 통해 이런 선입견을 없앴다. '하울링'은 남성 캐릭터 위주의 장르 영화가 아니라 여성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중요시되는 영화다. 이나영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영화에서 제 몫을 해냈다. 신참 여형사의 감정 변화와 극 중 늑대개와의 교감을 섬세한 연기를 통해 표현해냈다.
이나영은 "(저평가된다는 것에 대해) 크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대평가도 아니겠지만, 지금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 면에서 관객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희 역시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배우로 꼽힌다. 1999년 청소년 드라마 '학교2'로 데뷔했지만, 모델 출신이란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데뷔 13년째지만, 출연 작품도 많지 않았다. 내세울 만한 흥행작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중에게 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항상 따라붙는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도 배우로서 인정받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중의 관심은 김민희의 작품이나 연기보다는 패션과 외모에 쏠렸다.
하지만 지난 8일 개봉한 '화차'에서 경쟁력 있는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관계자들과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름, 나이, 가족 등 모든 것이 가짜인 미스터리한 여인 선영 역을 맡았다. 김민희가 출연을 결정하기 전,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을 만큼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다. 김민희 특유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한층 성숙한 연기가 돋보였다는 평가다.
김민희는 "관객들이 나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작품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화차'가 잘 되면 그런 '막힘'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