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도문시 석현제2중학교의 사생들은 7학년 박성룡학생을 돕기 위해 전교적인 창의활동을 펼쳤다.
박성룡학생은 지금 극심한 생활난에 시달리고있다. 7곱살때 아버지는 어딘가 출국을 한다고 떠난것이 그만 종무소식이 되여 지금껏 생사조차도 확인할수 없는 상황이다. 그속에서 어머니는 병약한 몸으로 자식을 거느리고 생계를 유지해나가며 버티다가 끝내 심한 심장병에 고혈압으로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워낙 외할아버지의 몇백원 되는 퇴직금에 의해 세식구가 살아왔으나 외할아버지마저 최근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15살나는 성룡이는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학교에 등교하여서는 열심히 공부에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따냈다. 그러나 심한 영양부족으로 다리뼈가 아파나고 쩍하면 온몸에 피멍이 생겨나군 하면서 기력이 떨어져갔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드문히 학교에 오지 못하게 되였다. 담임교원 황춘화는 성룡의 집을 찾아나섰다. 집문을 떼고 들어선 선생님은 눈앞의 광경에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성룡이가 이런 환경속에서 이를 악물고 학습을 견지해왔다고 생각하니 성룡이가 대견스럽기도 했고 또 성룡에게 미처 관심을 돌려주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기도 했다.
착잡한 심정을 안고 자리를 펴고 누운 두 환자의 주위를 치워주면서 채소도 볶아 두 환자에게 대접했다. 성룡이한테도 반찬을 집어주면서 밥이라도 많이 먹으라고 권하자 성룡이는 밥술은 뜰념도 않고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성룡이의 피멍으로 얼룩진 다리를 만져주면서 얼른 병원으로 가 치료를 하라고 《닥달》도 하였지만 필경 치료비도 없고 함께 병원으로 가줄 친척도 가까이에 없었다.
황춘화선생님은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지라 돌아오자 바람으로 학교지도부에 성룡학생의 상황을 반영했다. 학교에서는 즉시 전교적인 범위로 성룡학생을 돕기 위한 창의서를 내고 사생전체가 동원되였다. 어떤 학생은 소비돈으로 갖고있던 돈 5원을 내놓았고 어떤 교원들은 집세를 물려던 돈을 내놓았다. 사생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4020원이 모아졌다. 하지만 그 돈으로 성룡학생의 다리를 치료하고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학교에 다니게 하기에는 판부족이였다.
안달아난 황춘화교원은 《한곳에 곤난이 있을 때 사방에서 돕는것은 우리 중화민족의 전통이 아니겠는가》며 보도매체들에서 성룡이의 사정을 널리 알려 팔방에서 사랑의 손길을 보내준다면 어려운 환경에서 신음하고있는 이 나어린 시골학생이 다시 소생할수 있을것이라 확신하고있었다.
황선생님은 어린 성룡이가 제때에 병치료를 하고 씩씩하게 걸어 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여러분들께서 내 자식, 내 형제처럼 생각하고 힘을 보태주십사 애원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