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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상습 쿠데타’는 정당·의회의 민간정치 취약한 탓

[기타] | 발행시간: 2014.05.25일 04:10
태국 군부가 지난 22일 19번째 쿠데타를 선언했지만 정작 시민들은 크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약간은 자조 섞인 냉소도 보였다. 정국혼란 사태 때마다 쉽게 예상이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보다는 너무 일찍 찾아왔다는 반응이다. 그만큼 쿠데타가 일상화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태국에서 처음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1932년이다. 그 결과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됐다. 그 후 82년 동안 18번이 더 있었으니 대략 4~5년마다 한 번꼴로 발생한 셈이다. 이 중 7번만 실패했다. 이쯤 되면 4년마다 치러지는 총선과 비슷하게 쿠데타가 정권교체의 주요 수단이 돼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쿠데타는 쁘라윳 짠오차(60) 육군참모총장이 주도했다. 탁신 친나왓 당시 총리를 축출한 2006년 9월 19일 쿠데타 이후 7년8개월 만이다. 지난 7일 탁신의 동생인 잉락 친나왓 총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임 판결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던 정국대치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헌재는 잉락 총리가 2011년 타윈 플리안스리 전 국가안보위원회(NSC) 위원장을 경질한 것은 권력남용에 해당된다고 결정했다. 잉락 총리는 당시 경찰청장을 NSC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경찰청장에는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처남을 앉혔다. 헌재 판결에 따라 잉락 총리는 즉각 총리직을 상실하게 됐다.

잉락이 물러난 뒤 일명 ‘레드셔츠’로 불리는 친정부 진영은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를 벌여온 반탁신 ‘옐로셔츠’도 잉락 정부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며 맞섰다. 양측 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이 높아지자 군은 이를 빌미로 지난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은 “쿠데타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본심을 드러내버렸다. 쿠데타가 태국식 정치위기 해결방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태국 군부는 “방콕과 수도권 지역에서 정치 갈등으로 폭력 상황이 심각해져 많은 생명과 재산상 피해가 발생했다”며 “국가안보 위협 및 테러를 방지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를 선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를 되돌려놓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개혁을 하기 위해 이 조치를 시행한다”고 강조했다.

군부는 23일 소환된 잉락 총리를 구금하고 있다. 잉락의 언니 야오와파 왕사왓 전 의원과 남편 솜차이 왕사왓 전 총리,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임시 총리 등 탁신 전 총리 일가와 측근들도 구금됐다. 집권 프어타이당 지도부와 전 부총리, 전 노동부 장관 등의 각료, 반정부 시위대 지도자와 친정부 시위대 지도자들도 구금 대상에 포함됐다. 군부 측은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혼란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태국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지 사흘째인 24일 방콕의 한 쇼핑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군부는 24일 상원을 해산하고 상원에 있던 입법권을 군부로 이양했다. 하원도 지난해 12월 해산돼 태국엔 의회가 없는 상태다.

태국에서 쿠데타가 이처럼 자주 발생하는 것은 정치적·사회적 구조와 관련이 있다. 김홍구(부산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는 “정당과 의회 등의 민간 정치조직이 취약한 데 비해 군 조직은 상대적으로 막강해 현실정치에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태국군은 민간 정치조직이 자리를 잡기 훨씬 이전부터 든든한 기반을 유지해 왔다. 그래서 1932년 쿠데타 당시에도 군은 민간 관료와 함께 태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반면 민간 정치조직은 잦은 쿠데타로 발전이 더뎠으며 군의 정치개입을 막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가 어려웠다. 태국에서는 1932년 쿠데타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됐지만 정당은 14년이 지난 1946년에야 선보였다. 의회체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1980년대 이후였다.

민간 정부가 들어섰다 하더라도 취약한 정치조직 때문에 번번이 정국혼란 수습에 실패했다. 정부의 정통성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고리다. 군은 반대로 이 틈을 타 정치에 개입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들은 특히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집단이익이 걸려 있거나 훼손됐을 경우엔 거의 예외 없이 총을 들고 나왔다.

쿠데타에 그다지 부정적이지는 않았던 시민사회 풍토도 일조했다. 2006년 쿠데타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80% 이상이 지지했다. 정치적 위기가 초래될 때 군이 개입하는 해결방법을 기꺼이 수용하는 정치현실은 태국의 오랜 정치문화로 뿌리내리고 있다.

태국 쿠데타의 성공은 국민의 존경심을 받고 있는 국왕의 추인 여부에 좌우돼 왔다. 1980년대엔 국왕의 반대로 두 차례(81, 85년)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태국 국왕은 초정치적인 위치에 있어야 하는 입헌군주다. 하지만 고유의 카리스마로 현실 정치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6년에는 쿠데타 발발 이튿날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승인했다. 당시 태국 사회에서 불가침의 영역에 있는 국왕과 불편한 관계였던 탁신을 제거하기 위해 왕실이 쿠데타를 배후 조종했다거나 묵인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탁신은 국왕에 대한 존경심을 의심받는 언행을 자주 일삼아 정적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반탁신 세력을 대표하는 국민민주주의연대(PAD)는 탁신을 왕실모독죄로 수차례 제소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쿠데타는 추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쿠데타를 주도한 쁘라윳 총장이 왕비 근위병 부대 출신의 대표적 왕당파 인사이기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은 2010년 친탁신 진영의 시위를 진압한 공로를 인정해 그를 참모총장에 임명했다. 쁘라윳 총장과 왕실 사이에 교감이 있었을 거라는 소문도 나돈다. 외신들은 쁘라윳 총장이 23일 왕궁을 찾아가 푸미폰 국왕에게 군부의 결정에 대해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민정이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태국 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군부는 쿠데타 후 국가평화질서유지회의(NPOMC)를 구성해 과도정부로부터 국가행정 권한을 인수했다. 쁘라윳 총장이 NPOMC 의장으로 사실상 과도총리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군부에 구체적인 민정 이양 일정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미 국무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태국에 35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추가로 700만 달러 규모의 원조 프로그램 유보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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