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주년 특별기획(3)


큰가마 밥을 먹던 집체화시절, 생산대마다 탈곡장에 여러가지 종을 달아맸다. 보습날, 레루장, 차바퀴테와 구리종을 달아매고 쉴새없이 두드렸다. 새벽이면 일하러 나오라고 두드리고 저녁이면 회의에 참가하라고 두드리고 먹을알 없는 나눔새마저 몽땅 종을 두드려서 알리였다. 북데기를 나누어도 종을 두드렸고 자류지를 나누어도 종을 두드렸고 대채평공을 하여도 레루장을 두드렸다. 메마른 백양나무에 매달려서 눈비를 맞으며 휘청거리던 레루장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내고향 화룡현 와룡향 시골농촌에는 해방초기에는 마을중간에 만경탑을 세우고 싸이렌을 장치해놓았는데 밤중이면 싸이렌 소리가 귀청을 찢는다. 밤중에 싸이렌소리가 울리면 미국비행기가 온다고 집집마다 불을 끄고 숨막히는 공포속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새도록 신경을 긁어내던 싸이렌이 울린 이튿날에 산에 가면 모주석, 주은래, 류소기 머리에다 흉측스러운 뱀의 몸뚱이를 이어놓고 도끼로 전선대를 찍고 폭파약으로 큰길을 파괴하며 곡괭이로 량식창고를 구멍뚫는 그림이 그려진 반동삐라가 산판에 널리였다. 반동삐라가 널리면 모두들 초롱불 켜들고 시위행진을 했다. 《미제는 남조선에서 물러가라! 미제는 대만에서 물러가라! 공산당 만세!! 모주석 만세!!! 》 우렁차게 울리는 구호소리와 개짖는 소리가 더불어 마을은 항상 시끌벅적했다.

항미원조전쟁이 끝나자 공포를 몰아오던 싸이렌소리는 더는 울리지 않았다. 대신 레루장종이 평화건설에로 부르는 돌격나팔소리로 변했다. 이른새벽 찬바람을 헤치며 종소리앞에 나서는 사람은 공산당원이 아니면 생산대 골간이다. 종소리는 명령이였고 최고지시였다. 뼈를 에이는듯한 동지섣달 설한풍도 아랑곳하지 않고 벼짚가마니로 만든 짐통을 메고서 대채전을 만드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눈보라 헤치며 초탄을 져 나르는 사원들은 저마다 총탄이 비발치는 가렬처절한 전선으로 탄약을 나르는 결사대를 방불케 했다.


종소리는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그려냈다. 성급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벽을 문이라고 차고나가는 한대장의 거친 숨소리다. 종이 울려도 개미새끼마저 얼씬하지 않으면 산골짜기에 범이 나타났는가? 고함소리에 산천이 떨었다. 종이 울려도 일하러 나오지 않으면 큰 보복을 당한다. 시골에서는 대장의 말이면 최고지시요 하소연할곳도 없었다.


종소리가 김빠진 둥글황소 영각소리처럼 띠염띠염 울리면 십중팔구 업무대장 김대장이 두드리는 종소리이다. 종소리만 들어도 버릇처럼 건 가래를 떼며 바지춤을 춰올리는 우습강스러운 동작을 눈앞에 보는것만 같다. 사람이 덩치는 작아도 밭갈이나 써레질, 후치질, 기음에는 맞붙을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정치는 개뿔도 몰라서 응집력이 없었다. 김대장이 야간작업을 나오라고 죽어라고 종을 두드리지만 모두들 죽었는지 얼른 나서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급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틀림없이 일욕심이 강한 부녀대장의 서투른 종소리였다. 로선투쟁이 비발치는 세월에 기어코 입당하겠노라고 목숨 걸고 일했다. 아직 처녀인데 손마디가 터져서 반창고로 땜질한게 보기 민망했다. 사람이 너무 고지식한게 흠이였던가? 해마다 고험기를 넘긴다고 하는데 그녀의 입당은 장인어른 제사날 미루듯 마냥 미뤄지는 일이 이상했다.

력사는 발전하기 마련이다. 언제부터인지 유선방송이 전파되면서 종소리가 뚝 그쳤다. 그런데 방송연설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란다. 무산계급 마이크를 누구에게 맡기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정치문제로서 당원이나 공청단원 적어도 민명패장이 아니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단다. 외지 사람은 촌이나 공사파출소 소개신이 있어야 싸구려 통지도 할수 있었다. 오직 마을에서 사람이 잃어졌거나 소가 잃어져야만이 성분에 상관없이 방송을 리용할수 있었다.


반세기를 주름잡아 울려온 산촌의 종소리는 나의 동년을 키워준 배움의 종소리였다. 《땡- 땡 땡 -땡 …》정다운 산촌의 종소리는 오늘도 내 가슴에 아득한 추억의 강을 건너서 메아리로 울려오는것만 같다.


/리태근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