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으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는 사이 북한과 일본도 무서운 속도로 밀착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도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황이고, 일본과는 최악의 국면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동북아는 기존의 우방이냐 아니냐 하는 '이분법적 외교'에서 탈피해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외교적 스탠스를 수시로 바꾸는 '카멜레온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중 정상회담과 북·일 밀월을 계기로 동북아의 이러한 외교적 흐름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북·중·일·러 실리외교 더 치열해진다=최근 외교부 수뇌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 당국자는 4일 "몇 차례 내부 토론을 가졌는데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본과 관계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과, 잃는 게 있어도 정치·역사적 문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 회복론'이 급부상한 이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까워지고 있는 북·일 때문이다. 일본은 이날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했다. 우리 정부가 예상했던 시간표보다 훨씬 빠르다. 북한도 발 빠르게 납치 피해자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북한이 적극적인 이상, 북·일 관계가 지금보다 더 나아가 과거사 정리 및 국교정상화까지도 속도감 있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1차 조사 결과가 여름이나 가을쯤 나올 예정이어서 이때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방북할 수도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경제 협력도 더 긴밀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유럽 쪽과 사이가 틀어진 러시아가 일본 및 북한과 교류·협력을 강화하는 등 동진(東進)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어서다.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정부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가 앞으로 북한과 상당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우리한테 직접 설명했다"고 전했다.
미국 역시 방위력 분담 등을 노리고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 등과 관련해 대놓고 일본 편을 들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일본과는 '실리 주고받기'를, 우리한테는 '립 서비스 달래기'로 나설 수 있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간의 균열을 유도할 수 있고, 일본을 압박하는 것으로 일본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아울러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이상 북한 다독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북한도 중국 의존도가 커 마냥 소원한 관계로만 지낼 수 없다.
◇우리도 실리 챙기기 강화해야=다들 실리 때문에 합종연횡하고 있는데 자칫 우리 혼자 북한, 일본과 등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때문에 주변국과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요즘 동북아 정세가 특정한 호오(好惡·좋음과 싫음) 관계가 지배적이기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형국"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도 자신의 이익과 외교적 입지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외교를 펼쳐나가야 하고 북한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