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4일 공동으로 강력한 대일(對日) 비판에 나섰다. 한국과 중국 정상이 함께 일본 문제에 보조를 맞추면서 강력 경고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행보가 이제 용인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유례없는 한·중 대일(對日) 공동 스탠스=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일본을 직접, 그리고 함께 비판한 것은 더 이상 한 나라의 경고만으로는 아베 정권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우리 정부는 물론 중국의 잇따른 경고에도 퇴행적인 과거사 왜곡 행보를 거듭해 왔다.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반성이 선행돼야 한·일, 중·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전제를 계속 무시해온 것이다. 일본은 오히려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는 등 역사 문제에 관한한 뒷걸음질만 쳐왔다.
한·중 정상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일본에 일치된 목소리를 냄으로써 일본의 극우행보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일 경고의 수위 역시 최고 수준이다. 두 정상은 일본에 대해 ‘유감’ ‘우려’란 표현을 사용했다. 직접 밝힌 것은 아니지만 양자 회동에서 제삼자를 향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사실 역사문제에 한·중 양국이 일본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중국을 국빈방문했을 당시 광복군 기념표지석 건립 등을 요청하고 시 주석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공식 자리에서 일본 논의 및 공개=그러나 한·중 정상은 일본에 대한 경고를 공동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에는 담지 않았다.
양자 간에 이뤄지는 회담과 그 내용을 담은 성명에 제삼자 관련 언급을 넣는 것은 외교관례에 어긋난다. 또한 공식문서나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을 직접 강력히 비판하는 데 대한 부담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일본에 대해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되, 비공식 석상인 ‘특별오찬’을 통해 이뤄지는 형식을 택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공동성명에는 반영이 안 됐지만, (일본과 관련한) 많은 토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 등에서 일본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졌다. 중국 외교부 고위 관리와 우리 정부 관계자들도 ‘일본 문제’는 한·중 정상회담의 주요 이슈라고 설명해왔다. 다만 두 나라는 이런 논의 결과를 비공개로 할 것인지, 공개할 것인지에 대한 협의를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 결과 4일 특별오찬 이후 청와대가 발표하는 식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우리 측이 일본에 대한 스탠스를 중국에 맞춰주고, 중국은 대북기조에서 우리 측 손을 들어준 모양새라는 시각도 나온다. 일본에 보다 강경하게 나왔던 중국의 입장에 우리가 동조하면서 이를 함께 발표하고,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이 우리 입장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는 성의 표시를 해줬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적극 환영하는 점으로 볼 때 한·중 양국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에는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