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국가당안국은 24일 일본 전범 미야케 히데야의 중국 침략 죄행 서면 자백서를 공개했다. 자백서에서 그는" 1936년 위만주국시기 러허성, 위만주국 진저우성에서 공산당원 및 반 만주국 및 항일사상을 가진 중국 애국자 무려 7066명을 체포했는데 그중 150명은 내부에서 "엄벌( 사형)했다.""이시이 부대는 눙안현성에서 위만주국 경찰이 포위속에 있는 백성들을 페스트 병균 연구 및 실험용으로 삼았다."고밝혔다.
이하는 미야케 히데야의 중국 침략 죄행 서면 자백서이다.
미야케 히데야, 1902년에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일찍 위만주국 러허성 경무처 경무과 과장, 위만주국 펑톈성 경무청 청장으로 있었다.
미야케 히데야가 1954년 8월-1955년 4월에 자백한데 의하면 그의 주요 죄행은 아래와 같다.
"1936년 위만주국 러허성, 위만주국 진저우성에서 공산당원 및 반 만주국, 항일사상을 가진 중국 애국인사 무려 7066명 체포했다. 그중 내부에서 150명을 "엄벌(사형)했다.
1938년 11월에 소집된 방역본부회의에서 "위만주국 신징의 페스트 방역에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위만주국 경찰 역량을 동원해 페스트병균 발원지를 포위하고 위만주국 눙안현성을 완전히 외계와 격리시키기로 결정했다." "관동군이 이시이 부대가 직접 페스트방역업무를담당하도록 한 것은 위만주국 신징에서 페스트가 발생한 기회를 빌어 페스트병균에 대해 여러가지 연구와 실험을 진행함으로써 금후에 있게 될 세균전에 대비하도록 하려는데 주요 목적이 있었다. 이시이 부대는 눙안현성에서 위만주국 경찰의 포위속에 있는 백성들을 페스트 병균 연구 및 실험용으로 삼았다."
1939년 9월-1941년 3월, 산하에 있는 각 위만주국 경찰기관을 협조해 항일연군 제1로군 "소멸" 작전을 지도해 항일연군 약 20명을 사살하고 (항일연군을 잡기 위한) "미끼" 1500명을 감금했는데 이가운데는 양징위, 천한장 등도 있었다.
1942년 8월 3일, 위만주국 칭안현 경찰대대에 명령해 이 현의 칭펑령에서 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허샹즈를 총살하게 했다.
1944년 7월-1945년 8월, 위만주국 펑톈성 경무청 청장으로 있을 때 형법을 반대하는 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려 " 한 개 시 6개 현에서만 중국인 1만 3천1백80명을 체포했으며그중 4565명을 위만주국 경찰청에 넘겼다. 위만주국 경찰청에 넘겨진 후 그중 14명은 사형에 언도되어 감옥에서 살해되었다."
출처: CCTV.com 한국어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