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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도 의미 찾으면 노벨상”

[기타] | 발행시간: 2014.11.16일 06:01

매년 10월이 되면 세계 과학계는 그 해 각 분야 노벨상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특히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세 명의 일본인(또는 일본 출신) 과학자에게 돌아가 큰 화제가 되었다.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 아마노 히로시(天野浩),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가 그들이다. 노벨위원회가 밝힌 그들의 업적은 “밝고 에너지를 절약해 주는 백색 광원을 가능하게 한 효율적인 청색 발광(發光) 다이오드(LED)의 발명”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초 갈륨 나이트라드(GaN)라는 화합물 반도체 물질에 미세한 양의 알루미늄, 인듐 등을 섞어 반도체 특성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물질들을 이용해 복잡한 이질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백열등, 형광등과 같은 전통적인 조명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명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렇듯 노벨물리학상이 연구가 아닌 ‘발명’에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알프레드 노벨 유언장의 수상 기준이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혹은 발명(discovery or invention)을 이룬 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벨과학상도 분야에 따라 수상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화학상은 “가장 중요한 화학적 발견 혹은 개선(improvement)을 이룬 자”로 되어 있고, 생리·의학상은 “생리학 혹은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자”로 되어 있다. 노벨 자신이 발명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을까? 올해의 경우와 같이 ‘발명’에 대한 결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과학자들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획기적 실험도구 발명에 상 수여

‘발명’에 대해 노벨물리학상이 주어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해 준 실험 도구를 발명한 경우이다. 전자를 자기장 속에서 가속시킨 후 목표물에 충돌하게 하여 인위적으로 방사성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을 개발한 공적으로 1939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O. Lawrence)와 소립자의 이동 경로를 관측할 수 있게 해 준 ‘버블 체임버(bubble chamber)’를 발명해 1960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도널드 아서 글레이저(Donald Arthur Glaser)가 그 예다. 이들은 새로운 물리 현상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에는 관찰할 수 없었던 물리 현상을 분석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물리학자들의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혀 준 공헌을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대개 기업체 소속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소속 회사의 제품 개발 또는 제조 공정의 개량 등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 혹은 발명을 이루는 경우이다. 이에 해당하는 연구자들은 대개 과학자-엔지니어(scientist-engineer)라는 혼종 정체성을 갖고 있다. 즉 제품화라는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과학적 이해의 첨단이 어디에 있으며, 자신의 발명이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의 역사에서 이러한 사례는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195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틴(Walter Brattain),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의 경우이다. 이들은 벨 전화 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장거리 전화 교환기에 사용되는 진공관을 대체할 만한 고체전자 소자를 고안하는 과정에서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 이들에게는 단지 새로운 소자의 발명뿐 아니라 트랜지스터 현상이 갖는 고체물리학적 의미에 대해 해명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업적이었다.

1973년 수상자인 레오 에사키(Leo Esaki, 江崎玲於奈)는 일본 소니 주식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트랜지스터 제조 과정에서 불량률이 높아지는 원인을 추적하던 중 인(P)의 함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관련된 실험을 수행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전자 터널링 효과를 발견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터널 다이오드를 발명하게 되었다. 이는 기존에 이론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전자 터널링 현상을 실험적으로 확증한 경우인데, 새로운 현상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능을 가진 새로운 소자의 개발로 이어졌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물리학 원리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바딘, 윌리엄 쇼클리, 월터 브래튼.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수상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업적인 청색 LED 역시 이러한 계보 속에 놓여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나카무라 슈지는 니치아 화학공업이라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청색 LED에 천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청색 LED를 처음으로 개발한 것은 1971년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 업체였던 RCA 연구소였다.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위치한 이 연구소에서 허버트 마루스카(Herbert Maruska)는 이미 1960년대 후반에 갈륨 나이트라이드 합성에 성공한 후 불순물 함량을 조절해 나가는 방식으로 청색 LED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 RCA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졌고,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 과제들 대부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마루스카의 연구 역시 초기 단계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RCA의 연구를 이어나간 것은 당시 마쓰시타 기술연구소 소속의 아카사키 연구원이었다. 그는 RCA의 프린스턴 연구자들과 긴밀한 교류를 맺으면서 LED 기술의 난점들을 파악해 나갔다. 1981년 나고야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아카사키는 자신의 대학원생이었던 아마노와 함께 갈륨 나이트라이드를 이용한 PN 접합 LED를 개발하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1989년의 일이었다. 이어서 니치아 화학공업 사의 나카무라가 청색 LED의 대량생산에 필요한 제조 기법을 개발하여 1993년부터 이 기술의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한국의 과학기술계에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기업에서의 연구 활동이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업적으로 인정받는 ‘발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 발전에 단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온다면 아마도 기초적인 이론 분야에서의 ‘발견’보다는 대학과 기업의 연구자들 사이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이루는 ‘발명’이라는 부문에 더 큰 기대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현재 국내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점하고 있는 기업의 연구 활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만 하는 것은 RCA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한 연구 활동의 지원은 중요한 결과를 지나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RCA가 마루스카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 대해 참을성을 갖고 지원을 계속했다면 일본 연구자들보다 앞서 청색 LED의 상용화를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과학기술계에서 이와 같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유연성을 가지고 참을성을 길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올해부터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통해 장기 연구 주제에 투자가 시작된 일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산업과 연구 현장에서는 단기간 내에 제품화가 어려운 연구 주제에 대한 지원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나카무라가 노벨상 수상 직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를 이끈 원동력은 ‘분노’라고 밝힌 것은 한국의 기업가들과 정책결정자들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글 최형섭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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