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새로운 악역 카리스마가 탄생했다. 박성웅이다. 스릴러 '살인의뢰'에서 연쇄 살인마로 분한 그의 연기는 오싹하고 서늘하다. 낮게 깔리는 비릿한 웃음소리와 입술을 이죽거리며 날리는 냉소는 객석을 겨울왕국 엘사의 마법처럼 싸늘하게 얼린다.
'살인의뢰' 박성웅을 보다가'신세계' 황정민을 떠올렸다. 국내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로 손꼽히는 이 둘은 액션 누아르 흥행작 '신세계'에서 한 번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 바 있다. 거대 조직의 회장 자리를 놓고 2인자 정청(황정민 분)과 넘버3 이중구(박성운 분)이 맞선 것이다. 영화 속 대결은 황정민의 판정승. 양 계파의 충돌로 보스들만 희생 당하고 왕관은 정청의 오른팔이자 파트너 이정재에게 돌아갔기 때문.
'신세계'를 통해 천의 얼굴 황정민은 자신만의 강렬한 개성과 타고난 연기력을 다시한번 인정받았다. 영화 속 정청은 심복이자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자성을 '어이! 브라더'하고 부른다.
한 쪽(황정민)은 느물거리고 한 쪽(이정재)은 까칠하며, 한 쪽(정청)은 파마 머리에 촌티 풀풀 패션으로 침 좀 뱉는 원조 조폭이고 한 쪽(자성)은 멋진 수트로 맵시 팍팍 살린 경찰 프락치다. 양 손바닥을 합쳐 공기 소리를 내며 "어이 브라더! 우리 X이나 치러가자"고 어깨동무를 하는 정청의 끈적끈적한 대사와 "형이나 가요"라고 이를 거절하며 짜증난 얼굴을 돌리는 자성의 우수에 찬 눈빛 대비는 일품이다.
'신세계'는 정청과 자성 콤비의 이야기다. 반짝반짝 빛나는 황정민 이정재 콤비의 활약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 게 바로 박성웅의 악하고 독한 연기다. 조폭 2인자로 사람 목 따고 배 쑤시기를 밥 먹듯 하는 정청조차 '좋은 놈'으로 보이게 만든 게 바로 이중구였으니까.
'신세계'는 여러 면에서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악역 황정민의 완성이고 악역 박성웅의 성장이지 않을까 싶다.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의 천인공노할 악질 폭력배와 '신세계' 속 잔혹한 범죄자임에 분명하지만 인간미를 풀풀 풍기는 화교 출신 조직 2인자를 비롯해 서슴없이 부하까지 죽이는 경찰 간부('부당거래') 등 스릴러 한 장르 안에서만 전혀 다른 성격의 창조물들을 쏟아냈다. 충무로 영화계가 황정민이라 쓰고 명품배우라 읽는 배경이다.
선두 황정민을 쫓는 후발주자 박성웅의 질주도 압권이다. '신세계' 속 입꼬리를 올리며 나즉하게 "살려는 드릴게~" 읊조리는 협박을 유행어로 남기더니 '황제를 위하여'(2014)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로 분해 "감당할 수 있겠나" "숟가락 쥐어주러 갑니다"라며 관객을 떨게 만들었다.
이어 '살인의뢰' 싸이코패스 강천으로 박성웅은 드디어 '달콤한 인생' 악의 화신 백사장(황정민 분)과 '추격자' 연쇄살인마(하정우 분)에 버금가는 악역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정작 본인은 '살인의뢰' 제작발표회에서 "늘 내가 가해자다. 이제 피해자 역할 좀 해봤으면.."이라고 웃으며 연기 변신의 욕심을 드러냈다.
지난 12일 개봉한 '살인의뢰'는 한달여 가까이 국내 극장가를 주름잡은 스파이물 수작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를 누르고 이틀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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