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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넘어진 땅에서 홀로서기로 거듭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07.19일 22:43
(재한조선족 성공사례 15)


(주)순천무역회사 조인희사장의 창업이야기

음식점 앞에서



(주)순천무역회사 조인희사장을 만난것은 경상남도 김해시 부원동에 위치해있는 그녀의 중국음식점 《숯불꼬치집》에서였다.서울지역에는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하도 많아 별로 개의치않는 느낌이였지만 서울과 멀리 떨어진,중국정착인들도 얼마 안되는 이곳에 중국음식점이 있다는게 무언가 신기함과 생신함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하루 일과가 아무리 바빠도 매일 한번씩은 반드시 음식점에 들러 본다고 하면서 기자를 기어코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부원동에 자리잡은 첫 중국 《숯불꼬치집》

음식점에 들어서니 90평은 됨직한 면적에 벽장에는 중국술과 식품들이 가득 진렬되여있었다. 테블우에는 중국제 차그릇과 해바라기씨를 가득 담은 접시가 놓여있었는데 마치 중국의 어느 음식점에 들어서지나 않았나 하는 착각을 준다.


《2004년에 오픈한 음식점입니다.무역회사를 설립하기 썩 전이였지요.당시 이 거리에서는 처음으로 되는 중국음식점이였습니다. 현재 이 음식점에 찾아오는 손님 80%가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며 당지인들은 20% 정도 됩니다.중국식 서비스를 한다고 차그릇과 해바라기씨를 올려놓았지요. 》


그녀는 음식점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소개했다.초기에 주방일은 전부 이모한테 맡기고 물건을 구입한다든가 써빙하는 일은 모두 자신이 전담했으며 하루에 거의 15시간은 일하면서 고달픈 나날을 보냈다고 회억했다.영업이 끝난 후에도 바닥을 쓸고 밥상을 닦고 지어 그릇을 씻는 일까지 하고나면 새벽 1시가 넘어 되는데 꼬박 2년 동안이나 그렇게 하지않으면 안되였다는 사연이였다.초기에는 손님들로부터 외면당해 하루에 찾아드는 사람 몇 명 안되는 상황에서 괜한 노릇을 한거나 아닌가고 후회하면서도 결국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했다.그후 시장조사를 통해 이곳에 파키스탄,비르마,베트남 등 나라 사람들이 많다는것을 알게되면서 본격 손님유치에 나서게 되었는데 이런 나라 사람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주문한 료리외에도 두어가지를 더 시켜 대접했다.말이 통하지않기에 통역을 청해다가 료리맛을 점검하면서 조금이라도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으면 즉시 개진하고 료리도 거듭 제조하여 올리군 했다.그녀의 노력은 헛되지않아 원래 중국인들만 드나들던 음식점에 여러 나라 사람들도 자주 찾게 되면서 점점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했다.


《부동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 이들의 입맛을 맞추기가 쉽지않았어요.이를테면 중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짜게 먹지만 미국이나 타이의 사람들은 그렇지않았지요.또 당지인들은 좀 맵고 단맛에 치우치지만 중국인들은 별로 좋아하지않습니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 간을 맞추고 맛을 조절하다보니 신경을 많이 써야했지요.》


음식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조인희는 한국KBS에서 조직하는 외국인 료리대회에 참가하기도했다.동남아 8개 나라 료리사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에 그녀는 중국인의 대표로 선발되였던것이다.대회에서 그녀는 각종 중국볶음채 제조기술을 선보여 관람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전통 중국료리는 그 제조방법이 특이하고 맛도 독특하여 평심위원들의 하나같은 찬탄을 자아냈으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그번 료리대회를 통해 그녀는 중화료리를 홍보하고 중국의 음식문화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한국의 중심채널인 KBS1에 조인희라는 중국료리사가 등장하면서 그녀는 한때 중국인뉴스인물로 각광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음식점을 찾게 되었다.부원동의 첫 중국《숯불꼬치집》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KBS외국인 료리대회에서


새로운 사업을 개척 뼈아픈 좌절도 면치못해

《음식점의 경기가 좋아지면서 저는 더욱 큰 신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몇년간 고생한 보람이 있게된거지요. 장사가 잘 되여 자금도 푼푼이 장만하게 되었습니다.그러던중 하나의 뜻하지않던 인연으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게 되었는데 바로 지금 하고있는 페금속무역이였습니다.》


사연은 이러했다.어느날 음식점에 식사하러 온 한 중국인 손님이 조사장한테 페금속무역에 관심이 없는가고 물었다.그의 말에 의하면 현재 중국에서 유색금속무역을 제창하고있으며 자신은 이번에 시장조사차로 한국의 왔다고 했다.그는 이어 중국의 페금속시장상황을 설명하고나서 중국은 현재 페금속가공기술이 세계적으로 으뜸이기에 전망있는 사업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알고보니 이 중국인 손님은 천진의 어느 한 페금속 가공공장의 기술원으로 동항업에 비교적 명망이 있는 사람이였다.


《저는 그때부터 이 항업에 호기심을 가지고 되었지요.허나 필경 생소한 분야이기에 1년 동안이란 시간을 들여 자료를 들춰보면서 학습하는 한편 부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창원,대구 등 지역을 순회하며 시장조사에 나섰습니다.그때는 자가용도 없는 형편에서 하루에 수십리길을 걸으면서 이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물품현장을 찾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한국뿐만아니라 중국에 와서도 천진,대련,광주 등 지를 답사하며 시장조사를 벌렸다고 회고했다.조사를 통해 중국에는 페금속 수용량이 많아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그중 특별하게 동(銅)의 수요량이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기도 했다.허나 금속무역은 원래 투자가 엄청난데다 통관,운수 등 방면의 절차도 까다로와 누구든 쉽게 손을 못대는 분야였다.특히 한국측의 영업허가는 더욱 까다로왔다.허나 물속에 잠복해있는 큰 고기를 보고 누군들 탐내지않겠는가.그녀는 한국에 돌아온후 음식점에서 만났던 그 중국인 기술자와 동업을 시작했다.한편 유관부문에 찾아가 문의하고 거의 반년이란 시간을 들여 정식 영업허가를 냈다.


그녀는 10여곳이나 되는 현장을 분주히 찾아다니며 페금속을 회수하였으며 일정한 수량이 찬 후에는 곧 콘테나에 담아 포장했다.그런데 고생스럽게 수백톤이나 되는 물품을 구입하기는 했으나 페금속가격이 갑자기 폭락하는 바람에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국에 보낸 물품마저도 동함량이 낮다는 리유로 당지 바이오들이 접수하지않아 헐값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손실이 더욱 막대했다. 혹시 어느 못난 바이어들의 작간이나 아닐까? 의심되여 현지를 찾아가 바이어들과 면담했다.기술적인 수치를 보니 아닌게 아니라 모든게 사실이였다. 그녀는 뼈아픈 좌절을 면치못했고 또 한번 고달픈 시련을 겪어야했다.


《국제적인 페금속 가격이 떨어진건 어쩔수없는 일이였지만 돌이켜보니 저는 물품선택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너무 홀시하였던것입니다.동함량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색상으로부터 무게 및 굵기를 잘 가늠하여 판단해야했으나 저는 초학자나 다름없는 햇내기로 그러한 방법을 알수없었지요.허나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고가 학비를 내고 좋은 경험을 쌓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단 한번의 실패로 몇 년간 힘들게 모은 자금을 뭉청 날려보내는 후과를 초래한건 물론 모진 허탈감으로 한동안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않았다.심한 오열을 느낀 그녀는 잠시 음식점에 돌아와 종전대로 써빙에 전념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의 온정을 찾았다. 중국에 있을때부터 음식가게,사진관 등 상업경영에 종사해오면서 비즈맨으로서의 풍부한경험을 쌓아온 그녀는 랭철한 사고로 한계단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거듭 동산재기의 기회를 노리였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포기하지말라 그러면 다시 일어설수있다


어느 누가 《네가 딛고 선 땅에서 넘어졌으니 그 땅을 밟고 일어서라.》 고 한 말이 있다.조인희사장이 바로 이 금언(金言)의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싶다.


한동안 선택의 갈림길에서 헤매기는 했지만 결국엔 또다시 페금속 무역에 집착하기로 마음 먹었다.그녀는 일시 좌절을 당하기는 했지만 페금속 시장은 여전히 넓으며 그 전망도 밝다고 판단했다.실패의 원인이 자신한테 있지 절대 외부적 인소에 있는것이 아니며 전문기술을 더 익혀야하고 바이오들과의 계약을 절대 소홀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훈을 섭취하였다.


《뒤로 물러설수없는 형편이였습니다.너무 많은 투자와 정력이 소모되였기때문이였지요.포기한다는건 다시 일어설수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것이였습니다.고마운건 몇몇 바이어들의 고무격려였지요.질이 좋으면 아무 때든 접수하겠다고하 면서 동함량 식별방법도 알려주고 시장정보도 제공해주었습니다. 》


그녀는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재차 페금속회수에 착수하였다.이번에는 아예 중국에서 기술원을 초빙하여 함께 식별작업을 진행했다.그래도 마음이 놓이지않아 때로는 쌘플을 채취하여 전문가 점검을 거치는 일도 잊지않았다. 첫 참패로부터 절대 욕심을 차리지말자는 교훈을 섭취한 그녀는 맹목성을 피면하고 수량이 어느 정도 된 후에는 회수작업을 정지했다.

한차례 폭풍우가 지난후에는 검은 구름이 걷히기 마련이다.두어 콘테나에 페금속을 포장한후 중국에 띄워 보내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며칠 기다렸다. 그녀는 물건을 보낸후 혹시 나쁜 소식이나 오지않을가 걱정되여 며칠밤 뜬눈으로 새웠다고 회억했다.그러던중 어느날 휴대폰으로 전해온 소식은 그녀를 미칠듯한 희열에 빠지게 했다.물건을 잘 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이번엔 동함량이 좋아 시름을 놓으라는 내용의 전화였던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참말로 믿음이 첫째였습니다.저는 이때라 하고 추가로 몇 개의 콘테나를 더 발송했는데 모두 대만족이였습니다.이때로부터 저희 순천무역회사는 비로서 밝은 새날을 맞은듯 했습니다.주문이 련속 들어오면서 일손이 딸려 일군을 더 받아들였고 회수처리장도 더 확장했습니다.》


현재 이 무역회사는 중국과의 페금속 무역에서 성과가 뚜렷해 동류 업체에서 으뜸으로 지정받고있다. 실속과 신뢰를 바탕으로 신임을 얻은 후부터는 중국 현지의 해당 업자들이 스스로 찾아와 계약을 맺고 주문을 요청한다.한국으로 놓고 말하면 낡은 페금속 처리는 환경보호에 유리하기 때문에 적극 선호하는 립장이고 중국은 현대선진기술로 자원 리용률을 향상하려는 립장이기에 이 한 무역은 의의가 있고 장래성이 있는 사업이라고 그녀는 기껍게 말했다.


《저는 10여년동안의 타향살이에서 고달픔속에 희망이 잠재해 있으며 어려움에 봉착했을대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수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문제는 어떻게 고생을 이겨내는가에 있지요.희망을 잃지않고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조인희사장은 고향이 길림성의 길림시,한국에 정착한지는 10여년에 달한다.그녀는 장차 중국에 들어와 로인복지센테를 일떠 세우는게 하나의 소원이라고 자기의 속마음을 펼쳐보였다. 그 소원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고 진지하게 토로했다.


/전춘봉특파기자

편집/기자: [ 전춘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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