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中항일전쟁, 세계 반파시즘전쟁에서의 지위와 역할

[CCTV 한국어방송] | 발행시간: 2015.08.06일 10:56

[CCTV.com한국어방송]전쟁시기 중국은 4대 세계 반파시즘 국가중 하나였다. 아시아의 주요 전장이었던 중국 전장은 세계 반파시즘 주전장 가운데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전의 영향 전후 70년간 세계 반파시즘 전쟁에서의 중국의 중요한 지위와 역할이 서방 나라에 무시당했을 뿐만 아니라 응당 받아야 할 존중조차 받지 못하며 ‘잊힞 친구’가 돼버렸다.

1.중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파시즘 침략에 저항한 나라로, 세계적으로 첫 반파시즘 전장을 개척했다.

1931년 일본이 ‘9.18’사변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중국 침략 전쟁이 시작됐고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열렸다.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항일전쟁을 펼치며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첫 총성을 울렸다. 이로써 중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반파시즘의 깃발을 든 국가가 됐다.

1937년 일본은 ‘7.7사변’을 일으켜 빠른 시간 내에 중국을 멸망시키려 했다. 하지만 중국이 일본에 맞서 선전을 펼치면서 일본이 속전속결로 끝내려던 전쟁은 장기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후 중국은 공산당과 국민당의 협력을 기초로 한 항일민족 통일전선을 결성했다. 국민당 정부가 지휘하는 정면전장과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적후전장이 서로 보완역할을 하면서 세계 첫 반파시즘 전장을 구축했다.

중국 군은 타이위안회전, 송회회전, 난징회전 등 중대한 전역에서 일본 군의 병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일본 군 작전 기록을 보면 상하이전역에서의 일본 군 사상자가 4만여 명, 타이얼좡전역에서의 사상자가 1만 1984명에 달했다고 적혀 있다.

1937년 9월,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팔로군은 산시 핑싱관 전역에서 일본 군 1000여명을 소멸해 항일전쟁이 시작된 후의 첫 쾌거를 거뒀다.

같은해 11월, 타이위안이 함락된 후 팔로군, 신사군 등은 화북, 화중, 화남의 적진 후방에 근거지를 세우고 유격전을 펼쳤다.

2. 일본의 육군 주력에 저항한 중국 전장은 아시아 반파시즘의 주요한 전장이다.

‘7.7사변’이 발발한 후 스기야마 하지메 일본 참모장은 “한 달이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하다”며 장담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중국이 완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일본은 꾸준히 중국으로 병력을 보내야만 했다.

우한회전 때 일본은 육군 34개 사단 중 32개 사단 즉 94%에 달하는 병력과 해군 일부 병력을 전부 중국 전장에 파병했다.

1939년 11월 7일 팔로군은 산시성 우타이산에서의 반‘소탕’작전에서 일본 군 독립 혼성 제2여단의 여단장을 사살했다.

1940년 8월 20일, 팔로군은 100여 단의 병력을 동원해 화북에서 일본 군 2만 5천명을 소멸함으로써 일본군 화북의 주요한 교통선을 전부 마비상태에 빠뜨렸다.이 전쟁을 역사적으로 백단대전이라 부른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 군은 병력을 집중해 화북, 화중, 화남지역에서 항일전쟁근거지에 대해 ‘소탕’, '청향(清乡)'을 주요한 형식으로 한 ‘치안전(治安战)'을 펼쳤다.

하지만 중공 항일전쟁 무장세력은 ‘소탕’과 ‘청향’을 반대하는 과정에 점차 방대해졌으며 적후전장을 중국 항일전쟁의 주요한 전장으로 발전시켰다.

1945년 중공 항일전쟁 무장 정규군은 이미 91만 명, 민병은 220만 명으로 발전해 중국에서 침략전쟁에 대항하는 주요한 역량이 됐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 육군의 병력은 총 51개 사단이었는데 그중 35개가 중국으로, 10개는 동남아로 파병됐다. 일본 육군의 약 70%가 중국 전장에 파병된 셈이다.

3.중국의 항일전쟁이 일본의 세계 침략 전략을 유력하게 제약했고 소련•미국•영국 등 동맹국의 작전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중국의 계속되는 항일전쟁은 일본의 북진, 남진, 서진 그리고 동맹전략을 유력하게 제약했다.

일본의 북진전략은 바로 중국을 거점으로 소련 극동지역을 점령하려는 것이었다. 소련 진공을 위해 중국을 먼저 침략했던 일본은 중국의 완광한 저항으로 자국의 육군 주력을 꾸준히 중국 전장으로 파견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결국 북진전략을 펼치지 못했다.

일본의 남진전략에서의 상대는 미국과 영국 등 나라였고 목표는 동남아와 서남 태평양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 전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일본은 결국 유럽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일본은 서진전략을 통해 인도, 인도양으로 진군한 후 중동지역에서 독일, 이탈리아의 부대와 협력으로 영국을 굴복시키고 미국에 대항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 육군 주력이 중국 전장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일본의 이같은 계획 역시 물거품으로 됐다.

중국은 소련•미국•영국 등 동맹국의 반파시즘전쟁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1943년 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전략적 방어단계로 들어서면서 육군 병력이 대량 필요했다. 하지만 이때 일본 군 육군 주력이 전부 중국 전장에 파병됐기 때문에 미군이 태평양에서 반격하는데 좋은 조건을 마련해 주게 됐다.

중국이 일본 육군에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반격작전을 순조롭게 펼칠 수 있었고 태평양전쟁이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중국은 세계 반파시즘동맹의 결성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전후 국제질서의 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7.7사변’이 발발한 후 중국은 동맹외교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소련을 제외한 미국과 영국 등 나라는 일본에 대해 유화정책을 실시하면서 중국은 마땅히 받아야 할 국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던 날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나라의 군사동맹 결성을 제안했고 미국, 영국, 소련의 호응을 얻었다.

1942년 1월 1일,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을 위주로 한 반침략국가들에서 ‘연합국가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세계 반파시즘연맹이 공식적으로 결성됐음을 의미한다. 2차세계대전의 승리에 믿을만한 보장을 제공했고 중국의 동맹외교도 마침내 보답을 얻게 됐다. 이때 중국은 4대 세계 반파시즘 국가중의 하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선 후 서방 열강들이 무력으로 청정부를 누르고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강렬한 요구하에 미국과 영국 정부는 1943년 1월 대중국 불평등조약을 폐지할 것을 선포하고 중국과 평등한 새로운 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중국은 법률적으로 기타 나라와 평등한 지위를 얻게 됐다.

중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전후 국제질서 재건에 함께 참여했다.

1943년 위 4개 국은 ‘보통 안전에 대한 선언’을 발표했고 같은해 중국, 미국, 영국은 카이로선언을 발표했다.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 3개 국의 정상은 얄타 회의에서 유엔 결성을 준비하는 원칙을 확인했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을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으로 결정했다.

7월 26일, 중국, 미국, 영국은 ‘포츠담선언’을 발표했다.

동맹국 정상회의에서의 일련의 결정과 체결한 협의 그리고 발표한 공고의 다수는 모두 중국과 상의하거나 중국이 사인한 후 세계에 공개했다. 이는 중국이 전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음을 말해준다.

번역:김미란, 감수:이인선

[중문 참고]

http://japan.xinhuanet.com/2015-08/05/c_134482760.htm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현지시간으로 5월 6일 오후 습근평 국가주석이 빠리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습근평 주석은 중국과 프랑스 수교 60주년에 즈음하여 프랑스에 대한 제3차 국빈방문을 진행하게 되여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두 나라 관계의 소중한 60년 로정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풍경(4월 29일 찍은 드론사진) /신화넷 1일에 찍은 중국전력건설그룹이 건설을 맡은 세르비아 국가축구경기장 프로젝트 공사 현장. /신화넷 리명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중국-세르비아의 두터운 우정은 굳건히 유지

습근평,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

습근평,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

현지시간으로 5월 6일 오후 습근평 국가주석이 빠리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습근평 주석은 중국과 프랑스 수교 60주년에 즈음하여 프랑스에 대한 제3차 국빈방문을 진행하게 되여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두 나라 관계의 소중한 60년 로정

룡정시법원, 휴대전화 불법개조사건 판결

룡정시법원, 휴대전화 불법개조사건 판결

사건 회고 최근, 룡정시인민법원은 피고인 원모1, 원모2, 원모3이 도청 및 사진용 특수 장비를 불법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한 범죄를 공개적으로 심문 처리하였다. 피고인 원모1은 원모2, 원모3과 함께 2023년 10월 말부터 2023년 12월까지 광동성 혜주시에서 영리를 목적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