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필자는 한국서 부쳐온 우편물을 받았다.
김용복옹(83)이 친필 싸인한 자서전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인《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자매편이 였다.
정말 감상했다.
김용복회장은 필자의 참된 인생의 모델이다.
1994년 4월 6일, 필자는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조직한 당시 62세인 김용복의 중국에서의 첫 특강 《사막에서 피는 꿈》을 수강하고 인터뷰를 한 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인연을 이어가고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 기록은 참으로 하잘것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이 나에게는 지나온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는 흔적입니다. 후손들에게 기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주고 또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것을 교훈으로 남겨주고자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런 유언을 남기셨구나를 이야기 하면서 좋은것은 닮고 나쁜것은 반면 교사로 삼아 후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이 책에 수록하였습니다.》
이는 책의 서두다.
《자매》편은 그가 즐겨쓰고 가슴에 새긴 말, 성격, 버릇 또는 습관, 다짐, 그리운 사람 고마운 사람…등을 기쁨, 슬픔, 은혜, 감사, 사랑, 미디어 김용복 순으로 기록하였는데 이 책은 그의 처녀작 《그때 처철했던 실패가 오늘 이 성공을 주었다》를 시작으로 《끝까지 도전하고 아낌없이 나눠라》 등 8번째 자서전이다.
1934년 한국 전남 강진의 째지게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난 그는 월사금을 내지 못해 중퇴를 당하고 15살에 고향을 떠나 온갖 역경을 헤치며 살다가 46세 나이에 단돈 7딸라를 가지고 사막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남들이 불가능하다며 비웃던 사막에서 배추, 무우 등 채소농사에 성공하였다. 하여 사우디정부에서 《록색혁명의 기수》로 특칭, 1982년에는 한국개인 외화벌이1위로 대통령으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수여받고 미국 조지 부시대통령 내외분의 단독접견까지 받았다.
사막에서 부자로 금의환향한 김용복은 고향 강진의 버려진 간척지 100만평을 매입하여 초현대식 농경지로 조성해 한국서 제일 큰 초현대식 개인농장을 꾸려 년 1만 2000여석의 량질미를 나라에 바치고있다.
그의 일생은 《사람농사》,《흙농사》, 《사랑농사》로 이어졌다.
1982년에는 10억원(한화)을 출자해 재단법인 《룡복장학회》를 설립하여 《사람농사》를, 70세에 130억원(한화)을 출자해 재단법인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흙농사》를, 77세에 은퇴후 고통을 겪는 제3세계어린이와 이웃에 사랑을 나눠주는《사랑농사》를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3》과 하는 인생이였다.
즉 3가지 굶주림(어린 시절 먹지 못한 굶주림, 부모형제 잃은 가족사랑 굶주림, 공부 하지 못한 배움의 굶주림), 3마디 사훈(社訓)(꿈을 갖자, 목표를 정하자, 최선을 다하자), 3가지 덜(덜 먹고 덜 쓰고 덜 즐긴다), 3가지 농사(흙농사, 사람농사, 사랑농사), 3세개 재단 (장학재단, 한사랑농촌문화재단, 복지문화재단), 인생 3단계(30세까지 준비단계, 65세까 지 성취단계, 65세후 환원단계)이다.
그는 사회에서 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는 《빈손으로 오고 빈손으로 가다》를 인생철학으로 매년 정초마다 《내 몫의 재산의 전부와 장기(腸器) 까지 사회에 바친다》는 유서를 쓴다.
그의 동포정은 매우 후덥다.
그는 한국KBS사회교육방송과 함께 《해외동포체험수기공모》를 조직, 연변인민방 송국, 연변과학기술대학, 연변농학원 등 중국 동북 3성의 대학, 출판사, 방송사와 함께 여러 가지 특강을 하는 외 장학생 후원, 농기계기증 등 동포협력사업을 여러모로 추진했다.
그는 또한 매우 겸손하다.
그가 고향의 경제문화건설투자 유공자로 고향사람들이 그가 모르게 《김용복공적비 》를 세운것을 보고 너무나 면구하여 《공적비란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세우는것으로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고 이후에 어떤 실수를 할지 모르니 당장 철거하라》고 애원해 끝내 철거시켰다.
그의 사적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등 세계명인 6명과 함께 《부모와 함께하는 인생론술》에 추천되여 한국인성교육교재 《동요와 인성론술》에 편찬되여 전해지고있다.
《자매》편에는 그가 부인과 아들에게 무리하게 화를 낸것을 자책하여 그들앞에 엎드려서 반성한 일, 불의를 참지 못해 담배꽁초를 마구 버린 젊은 청년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이 꽁초를 주어라》고 호통하던 일 …등이 기록되여 머리가 숙여지며 또
부인,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등 모든 가족에게 일일이 남기는 감동적인 유언과 한, 중, 영문으로 감사한 분들에게 드리는 후덕한 말씀들이 기록되여 퍽 다감스럽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는 《록색혁명의 기수》의 참된 인생기록으로 필자에게 평생필독서라 하겠다.
이 글을 빌어 김용복옹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올리며 《록색혁명 기수》의 건강장수를 기원한다. / 오기활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