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식생활 등 생활 습관도 서구화되고 있다. 자연히 우리나라 사람이 앓게 되는 질환 유형도 서구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눈은 그 중에서도 서구화 변화를 가장 크게 겪는 부위다. 다른 기관보다도 예민하고 외부 환경에 민감한 탓이다.
실제 최근 대한안과학회가 발표한 ‘아시아 국가의 실명 원인’ 조사 자료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명 원인만 놓고 봤을 때 국가별로 경제 수준에 따라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경제 선진국, 일본인의 실명 원인은 녹내장(24.3%)이 가장 많고, 이어 망막변성과 당뇨망막병증 순서다. 이들 3대 안질환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0%에 이른다. 싱가포르 역시 당뇨망막병증(20.1%), 망막변성, 녹내장 순으로 세 질환이 실명 원인의 6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중국은 실명 원인 중 당뇨망막병증, 황반변성 등 망막질환의 점유율이 15%,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이 38%를 차지했다. 경제 사정이 더 어려운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은 실명 인구 10명 중 7명이 백내장으로 인해 실명했고, 비위생적 환경으로 발생하는 세균성각막염의 일종인 트라코마(trachoma) 감염에 의한 실명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비슷한 양상이다. 후진국형이랄 수 있는 백내장에 의한 실명 인구가 줄고 당뇨망막병증과 황반변성, 녹내장 등 선진국형 실명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뇨망막병증이다. 최근 10년간 환자 수가 약 3배 증가했다. 식생활이 서구화돼 달고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당뇨병 환자가 많아지고, 당뇨병의 주요 합병증 중 하나인 당뇨망막병증도 덩달아 증가하게 된 것이다.
망막에서 중심 시력을 담당하는 황반의 세포 모양과 성질이 변해 기능이 떨어지면서 시력을 잃게 되는 황반변성 환자 수도 최근 10년간 약 7.4배 증가했다. 특히 경제 및 위생 수준 향상과 함께 평균 수명이 증가해 노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노화로 인한 연령 관련 황반변성이 늘어 주목된다.
녹내장 역시 최근 6년 사이 70%나 증가했다. 이유는 노인 인구가 늘고 속칭 ‘선진국병’으로 불리는 당뇨병, 고혈압 등 전신 질환자가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100세 장수 시대에 시력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잘못된 서구식 식생활 및 생활습관을 바꾸고 실명 유발 질환을 조기에 발견, 바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안과 검진만 제대로 해도 실명을 유발하는 안질환은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
최기용 한길안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