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
고추장은 이팝에보다
기장밥에 비벼져야 제맛이라는
친구의 SNS 말 한 마디에
혀끝이 찡하니 저려오는 날
이쁜 계집 하나 꼬셔 끼고
녀편네 모르고 자식새끼 없는
어느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딱 한 달만이라도 세상사 다 잊고
풍월만 읊고 사랑방아 찧으며 살아봤음 좋겠다는
친구의 SNS 말 한 마디에
괜히 아래배 묵직하니 저려오는 날
그려, 세상사 다 그렇게
기장밥에 고추장이고
깊은 산속 계집질과 풍월이기를
그런 세월 옛날에사 더러 있었겠지만
녀편네 눈치 보고 자식새끼 걱정하며 사는 우리네
언제 그렇게 한번 흐드러진 시인일수 있겠노
시들어가는 오이 하나 대충 씻어
고추장에 푹 찍어 으적으적 씹고
친구야, 오이에 찍어먹을 고추장이라도 있으니
고마워하자, 고추장에 찍어먹을 오이라도 있으니
고마워하자, 까짓거 시라는것
아무리 써도 고추장 바른 오이처럼 시원하기야 하겠노
까짓거 시라는것
오이에 발라진 고추장처럼 입안에 얼얼하기야 하겠노...
불을 던지다
숲은 새둥지이기도 하지만
숲은 바람의 둥지이기도 하지만
숲은 뜨거운 불의 둥지이기도 하다.
하나의 나무는 스스로 불이 되지 못한다
나무끼리 모여 숲을 이루고
이제 더는 숲이기를 거부할 때 불은 온다
불길이기를,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기를 소망해
나무는 서로 부비부비
사랑의 몸부림처럼 부비부비
뜨거운 몸끼리 서로 비벼
피어오르는 작은 연기의 춤을 만들고
그리고 반짝이는 작은 불씨를 만들고
드디어 활 타오르는 불길로 된다
숲이 타오르면 얼마나 거세찬 불길인가
숲을 물들였던 모든 푸른 열물들이
뻘건 혀바닥이 되여 룡트림치는
불은 자생의 씨앗이다
때가 되면 스스로 태여나
숲을 불태우는
숲을 불태워 소멸로 가는,
불은 소멸이다
그 큰 숲을 다 태워버리고
이제 불은 검은 재더미속에
마지막 꺼져가는 작은 불씨로만 남아
불타서 사라진 모든것들을 웃으며 바라본다
가라 가라 찬란했던 생명들이어
오라 오라 소멸로 갈 생명들이여...
불씨 하나 주어 활, 물속에 던지다.
새벽비 내리기 전
자정을 기준으로
길고양이 울음소리
다급해졌다
천둥은 멀리서
점점 가까이
길고양이 려관방은 지금
문이 잠궈져있다.
이 추운 털을 또
적셔야 하는가
이 더러운 털을 또
씻어야 하는가
숨어 잠들 공간을 찾아
아직 따스한 온기 남아있는
어느 창문앞에 아이처럼 운다
악악 발악하는 아이처럼
창문유리 허비지 못하고
커튼 그림자만 허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