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명의 시 3수를 만지작거리며
심숙
굴레벗은 분방한 사유로 유명한 조광명은 맛갈스런 시어를 조합하는 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냥 세상사 넉두리인가 하면 삶에 대한 통찰로 특징지어지는 진지함이 묻어있고 작심하고 시를 읊으려 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사유의 자유스러움에 질려버리기도 하며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그의 화려한 시어들로 랑자한 시향연은 그대로 독자들을 심취시키고 있다.
시 '오늘은, 시도, 까짓거, 다'를 만나면 웃음부터 나온다. 제목부터 작심하고 독자들의 흐뭇한 미소를 유발하면서 어느 친구와의 대화를 그대로 질퍽하게 늘어놓는다. 시인이여서 특별할것 없다는 그의 단언은 단언컨대 독자들한테 고추장을 찍은 상큼한 오이향으로 다가설것이다. 줄레줄레 늘여놓은 시어들은 그대로 우리 민속도여서 여름 한나절 뜨거운 해가 정수리를 비껴간 다음 흐르는 내물에 밭에서 갓 따온 오이를 술렁술렁 행구어서는 달콤매콤짭쪼롬한 고추장을 툭 찍어서 썩 베물고 아삭아삭 씹어먹는 진풍경에 대한 속사이다. 짧은 글에서 그 많은 맛스런 시어들을 반복하지는 말자.
시 '불을 던지다'는 프로메테우스이래 불에 대한 절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불을 쓰면서 먼저 등장된 숲은 새둥지이면서 바람의 둥지이며 결국은 뜨거운 불의 둥지로서 불길을 피워올리는 소재로 더없이 훌륭하다. '불길이기를, 활활 타오르는/불길이기를 소망해'라는 시인의 뜨거운 호소는 새로운 숲의 탄생을 위해 기존의 숲을 소멸하는 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가라 가라 찬란했던 생명들이여/오라 오라 소멸로 갈 생명들이여'라고 되뇌인다. 죽음과 부활속에서 발전하는 생명현상에 대한 고도로 되는 개괄이요 경전이다. 마지막 행 '불씨 하나 주어 활, 물속에 던지다'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하나의 극은 다른 하나의 극으로 통하는 문이라 했던가. 수화상극이라지만 어쩌면 물에서 불이 탄생할지도 모르고 불에서 물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해주는 섬뜩함이 서려있다.
시 '새벽비 내리기 전'에서는 길고양이를 읊조리고 있다. 천둥을 피하는 길고양이의 다급한 사정을 외면한채 잠겨져있는 려관방은 저으기 야속하다. '이 추운 털을 또/적셔야 하는가/이 더러운 털을 또/씻어야 하는가'에 이르면 길고양이의 사정은 한층 더 다급해진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어 길고양이는 창문앞에서 아이처럼 운다. 울면서 창문유리를 허비지 못하고 커튼 그림자만 허빈다. 유리도 아니고 커튼도 아니고 그 그림자를 허빈다.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쯤이면 길고양이의 아픈 속사정이 파도처럼 너흘너흘 독자들의 흉벽을 철썩인다.
상기 3수의 시들은 해학적이면서도 진지한 메시지를 담고있으며 시적 다급함(삶, 불, 고양이)을 다루고있지만 시적 여유로움이 넘친다. 또한 강물처럼 술술 흘러가는듯한 시어들은 색색의 향과 각각의 맛으로 독자들에게 진한 향연을 선사해주고 있다. 언어의 마술사만이 가능한 작업이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