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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Y] ③ 박태하의 도전, 완료형 아닌 진행형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5.11.10일 07:20

두만강 북쪽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은 오해가 대부분이다. 한국말 혹은 조선말을 쓰는 미묘한 관계의 도시에서 박태하 감독은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 지난 시즌 중국갑급리그(2부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연변 조선족 사회는 박태하가 만든 기적으로 들썩이고 있다. 박 감독은 축구로 조선족의 자존심을 세웠고, 동시에 연변과 한국 사이에 걸쳐 있던 오해를 일부분 지워버렸다. ‘풋볼리스트’는 그 현장을 보기 위해 연변으로 떠났다. <편집자주>

[풋볼리스트=연길(중국)] “단장님 다음 시즌이 정말 걱정입니다”

박태하 감독이 박성웅 단장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감독이 단장에게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의 분위기가 조금 묘했다. 박 감독이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이 24일 후난시앙타오를 이기며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단 2시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축하연장에서 방금 챔피언이 된 감독과 단장은 잠시지만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박 감독은 승격이 결정되고,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에도 기쁨을 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담담했다. 기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 감독은 다음 시즌도 연변과 함께하겠다는 결정을 한 뒤부터 바로 다음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감독 첫 해에 꼴찌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을 뿌듯해하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걱정하지 말아라.” 박 단장은 박 감독에게 약속했다. 다음 시즌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을 개편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연변은 길림성에서 운영하는 팀인데, 광저우헝다나 허베이종지처럼 돈이 많지는 않지만 K리그 상위구단 이상의 재정을 운용할 수 있다. 우승 확정 전날인 23일에는 훈련장에 연변자치주 부주장이 방문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도전은 끝 아닌 시작, 슈퍼리그는 다른 세계

성정부와 주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방침에도 박 감독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강등만 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와 같은 빗발치는 칭찬 속에서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 박 감독은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는 슈퍼리그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면서도 “슈퍼리그에서의 경쟁은 아예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K리그에서 가장 투자를 많이 하는 전북현대보다 더 많은 돈을 쓰더라도, 슈퍼리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박 감독은 “돈을 적게 쓴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슈퍼리그에서는 우리가 쓸 수 있는 금액이 중하위권 정도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변은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족 출신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려야 한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다. 하나의 정서를 공유하는 선수들로 팀을 꾸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선수 자원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단점도 있다. 이장수 전 광저우헝다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선수보강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경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감독은 우승이 결정된 순간부터 머리 속으로 다음 시즌 스쿼드를 짜느라 골몰했다. 그는 식사 초대를 받아 차를 타고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용정(龍井)으로 가면서도 순간순간 먼 곳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박 감독은 “다음 시즌을 벌써 고민하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좋은 선수 있으면 소개시켜달라”는 농담을 건넸다.

우승 이후는 현실, 구단 목표 ‘10위’

앞선 두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박 감독에 대한 구단과 조선족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박 감독이 잔류를 발표한 다음 날(25일) 2군 경기가 열린 용정에서 만난 홍련아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님이 팀을 오래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사실 남아달라고 외치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힘들었다. 여기 남아주시니 정말 감동이다.”

박 감독은 이런 축제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했다. “연변 사람들은 순수하고 순박하다.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면서도 “결국 성적이다. 지금은 성적이 좋으니까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축구팀은 성적이 나빠지면 어려워진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 선수들이 기질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잘 준비해야 한다”라고 했다.

구단이 바라는 다음 시즌 순위는 10위다. 박 감독의 지도력에 조선족 선수들의 기질이 더해지면 중위권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팬들이 바라는 순위보다도 조금 높다. 서포터 김파 씨는 “그저 잔류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했다. 기대는 기대를 부른다. 그리고 높아진 기대는 성과를 작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실제로 박 감독 전에 한국지도자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고 최은택 감독은 두 번째 시즌에 경질됐다. 1997시즌 연변(당시에는 연변오동)을 1부 리그 4위에 올려 놓으며 ‘최 교수님’이라고 칭송을 받았지만, 1998시즌에 8경기만을 치른 뒤 성적부진으로 해임됐다. 박 감독이 우승을 거두자 연변 내에서도 ‘최 감독 때와 같은 일을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김룡 길림신문 기자는 “박 감독은 최 교수님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선수들 모두 박 감독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박 감독은 진정성을 인정 받고 있다. 구단도 박 감독에게 전권을 줬으면 믿어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에서는 지역 출신의 지도자를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연변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변이 박 감독을 믿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상존하는 이야기다.

박 감독은 그래서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말한다. 물론 슈퍼리그라고해서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가능성을 봤다. 수비를 보강하고 외국인 선수를 잘 영입하면 충분히 해볼만할 것이다”라며 믿음을 보였다.

박태하가 한국과 연변 사이에 놓는 ‘다리’

박 감독의 도전은 다른 측면에서도 이어진다. 박 감독은 오해투성이인 한국과 연변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이미 지난 1년간 이어진 박 감독의 진정성 있는 도전은 연변에서 어느 정도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연변이 우승을 차지하고 박 감독의 리더십이 조명 받자 한 연변 시민은 “박 감독의 고향인 포항에 가고 싶다”를 했다. 한국을 더 알고 싶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박태하는 외교관이다. 이런 외교관은 없을 것이다.” 연길시 치안을 책임지는 책임자인 공안국장은 축배를 들며 크게 외쳤다. 박 감독은 축구를 통해 한국과 연변 사이에 있는 그림자를 일정부분 드러냈다. ‘현장르포Y’가 송고된 뒤 포털사이트에 달린 조선족 관련 악성댓글에도 연변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다 저런 건 아니다’라며 차분하게 대응하는 이유다.

박 감독은 연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여기오면 가봐야 할 곳이 많다”라고 했다.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도 용정시에 있다. 유명한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과 푸른 솔도 용정에 있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뒀던 봉오동전투의 무대는 북한과 마주한 도문시다.

박 감독과 연변의 활약으로 연변에 대한 편견이 조금 녹았고, 연변 지역에 대한 관심은 올라가고 있다. 스포츠는 이해(혹은 외교)의 가장 좋은 도구라는 것을 박 감독은 증명하고 있다. 박 감독과 일송정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시야를 막는 게 하나도 없어 시원했다. 박 감독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게 노래에 나오는 해란강이다. 여기 오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

연변에서 보낸 박 감독의 2015년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그라운드에서 성적을 내는 일도,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는 일도.

글= 류청 기자

사진/영상=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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