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깨끗해서 탈났다… 전염병 백일해의 역설
40년 만에 전남서 집단 감염
최근 전남 영암의 한 고교에서 발생한 백일해는 기억 속에서 잊혀진 전염병이다. 증세가 나타난 266명(교직원 5명) 중 36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중학생 96명과 읍내 중학생 5명도 증세를 보였다. 백일해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의보가 발령됐다. 당시 한 해에 1000명 이상 발생했으나 90년대 들어 줄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 해에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다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집단 감염 사례는 약 40년 만이다. 73년 5월 강원도 홍천의 한 초등학교(186명)에서 발생한 이래 처음이다.
이처럼 잊혀졌던 전염병들이 돌아오고 있다. 결핵·A형간염·말라리아 등이 대표적이다. 간흡충(디스토마)·머릿니 같은 기생충 질환도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이종구(서울대 의대 교수)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28일 “전염병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못살 때는 적당히 세균에 노출돼 전염병에 살짝 걸린 뒤 면역이 생겨 넘어갔다”며 “요즘은 환경이 좋아져 그렇게 될 기회가 줄었고 이 때문에 적은 균이 생겨도 쉽게 감염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청소년들의 면역력·저항력이 떨어져 있는 데다 예방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운동하는 고교생 비율이 남자는 32%, 여자는 11%에 지나지 않는다. 운동부족으로 인한 체력 저하가 전염병에 쉽게 걸리는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말라리아는 국내에서 70년대 말 거의 사라졌다. 90년 초반까지 한 해에 10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92년에는 0명이었다. 그러다 94년 군인과 휴전선 주변 주민이 걸리기 시작하더니 95년 107명, 99년 3621명으로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 1000~2000명 정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결핵도 80, 90년대에는 거의 잊혀졌다가 2000년대 들어 신규 환자가 생겼다. 흙에서 뒹굴던 시절 자신도 모르게 걸렸다가 지나가던 A형간염은 2009년 한 해에만 1만5000명이 걸렸다.
먹을 게 없어서 민물고기를 날로 먹던 시절 간흡충은 단골 질환이었다. 감염자가 줄긴 했지만 요즘에도 민물회를 즐겨먹는 낙동강·섬진강·영산강·금강 주변 주민들에게서 꾸준히 발견된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표본조사한 결과 2018명의 감염자를 확인했다. 전체 기생충 감염자의 74%가 간흡충이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은 “‘옛날 전염병’이라고 판단돼 관리체계가 다소 느슨해졌고 국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요즘 들어 증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2세까지는 부모가 거의 빠짐 없이 예방접종을 맞히지만 그 이후에는 접종률이 50~60%로 떨어지는 점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질병본부는 내년부터 백일해 6차접종(11~12세) 확인서가 있어야 중학교에 입학하도록 강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