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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 아시아인 ‘노예 마을’?

[기타] | 발행시간: 2016.12.20일 15:32

지난 수백 년간 아프리카에서는 원주민 수천만 명이 전세계에 노예로 팔려갔다. 가깝게는 아라비아 반도부터, 멀게는 미국과 브라질 등 대서양 반대편까지 '수출품'으로 취급돼 팔려가야 했다.

경제 분석 전문기관 〈Verisk Maplecroft〉에 따르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 5곳 가운데 4곳에서는 여전히 '현대판 노예 노동'이 벌어지고 있다. 노예 무역으로 인한 상흔이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예 수출'로 악명높은 아프리카 대륙에, 거꾸로 '노예 유입'으로 형성된 마을이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중심가에 있는 보캅(Bo-Kaap) 마을이다. 동남아시아 출신 노예들이 주로 정착했다고 해서 '말레이 지구(Malay Quarter)'라고도 불린다.

보캅 마을에 동남아시아인이 끌려온 사연은?

보캅 마을 벽화. 이슬람 복장을 한 선생님이 동남아시아·인도·아프리카계 다인종으로 구성된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 대륙은 서구 열강들의 전쟁터였다. 영국은 동아프리카를 평정했고,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연안을 점령했다. 17세기 아프리카 남부는 네덜란드 출신의 보어(Boer)인 차지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남아프리카 외에도 동남아시아 섬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인도양을 지나, 케이프타운을 거쳐 유럽에 공급하던 동남아시아의 향료는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식민지 건설을 위해 자행된 폭력과 종교적 박해는 원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이슬람교도가 많은 인도네시아·인도 지역에서의 저항이 거셌다. 보어인들은 종교적·정치적 저항세력들을 색출했다. 그중 일부가 노예로 케이프타운에 끌려왔다.

노예들은 당시 농장 노동자·금속세공사·구두 수선공 등 허드렛일을 담당해야 했다. 하층민들은 산비탈 아래 촘촘히 집을 지어 촌락을 이뤘다. 이것이 현재 보캅 마을의 시초다.

독자적 이슬람 문화 형성…"우리에게 자유를!"


케이프타운 주민들이 노예 해방을 기념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그림제공 : Museum Africa)

종교적 박해 끝에 노예로 끌려온 '반골'들이 신념을 꺾을 리는 만무했다. 동남아시아인들은 보캅 마을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조직하기 시작한다. 특히 인도 고아(Goa) 출신 이슬람 지도자 셰이크 유수프(Sheikh Yusuf)의 역할이 컸다.

1694년 유수프는 전쟁 포로가 돼 케이프타운까지 끌려오게 된다. 보어인들은 이슬람 교리에 해박한 데다, 주변의 신임까지 두터운 유수프를 보캅 마을에서 떨어진 농장으로 이주시킨다.

하지만 유수프는 곧 동료 노예들과 함께 농장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탄압 속에서도 보캅 마을까지 영향력을 확대한다. 그리고 1795년, 영국인들이 보어인들을 케이프타운에서 몰아내면서 유수프의 후예들은 노예 해방과 함께 종교적 자유를 얻게 된다.

이후 인종 간 결혼을 통해 동남아시아 출신 이슬람교도들은 흑인까지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는 등 보캅 마을은 독자적인 이슬람 문화를 형성했다. 남아공 인구 가운데 이슬람교도는 1.5%에 불과하다. 보캅 마을은 남아공 내에서도 독특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가진 곳이다.

오랜 박해 끝에 얻은 '화합'과 '공존'


집집마다 알록달록 색을 칠한 보캅 마을은 케이프타운의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다. (사진제공 : Bo-Kaap Museum)

보캅 마을은 20세기 초반까지도 하층민 거주 구역으로 남아있었다. 동남아시아인·인도인·흑인 이슬람교도들과 산업화 이후 생계를 찾아 케이프타운으로 이주한 도시 빈민들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20세기 초반 케이프타운 인구가 급증하면서 도심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다. 케이프타운 중심가에 맞닿은 보캅 마을도 개발 대상에 포함됐다. 이때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지지하던 백인 정권은 보캅 마을 해체를 시도한다.

1934년 정권은 빈민거주구역 법(Slum Act)을 제정해 부동산을 강제로 수용한다. 이어 1966년 보캅 마을을 포함한 6구역(District Six)이 백인 전용 거주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가 가속화됐다. 주민들은 부당한 강제 이주 조치에 저항해야 했다. 이 혹독한 싸움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됐다.


보캅 마을 주민인 압둘 콰윰(오른쪽) 얼굴에는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이목구비가 남아있다.

당시 6구역에서만 주민 15만 명이 강제 이주한 까닭에 현재 보캅 마을에서 동남아시아 혈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취재 도중 다행히 아시아인의 이목구비를 가진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초등학생인 압둘 콰윰(Abdul Quayyoom·남·12)은 "아주 옛날에 조상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왔다고 부모님께 들었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무슬림인 콰윰은 동네 흑인 친구 집에 가기로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로 어울려 사는 이곳에서 인종을 구분하는 건 사실 무의미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진 뒤 이슬람교도 주민들 일부가 보캅 마을로 돌아왔다. 다시 찾은 자유와 평화를 기념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슬람 전통 주거 양식인 하얀 벽면에 빨강·파랑·노랑 등 색을 칠했다. 공동체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웃한 집끼리는 서로 다른 색을 쓰기로 한 것이다. 20여 년만에 알록달록한 주택 벽면은 보캅의 상징이 됐다. 이 곳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원동력은 오랜 박해를 견디며 터득한 화합과 공존의 가치였다.

김덕훈기자 (standb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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