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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사 직원들의 방역 자원봉사 스토리 1,2,3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04.02일 15:31
  코로나19 전염병 상황이 계속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확진자가 많이 발생한 길림성의 방역 형세가 아주 준엄한 도전에 직면했다. 길림성은 방역에 관한 습근평 총서기의 중요 지시 정신을 관철하고 성당위, 성정부의 포치에 따라 이번 방역전의 승리를 따내기 위해 전민이 떨쳐나서 용감하게 분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길림신문사(길림조선문보) 직원들도 적극 자원봉사자로 방역 제1선에 뛰여들어 역병을 물리치는 최후 결전에서 땀동이를 쏟고 있다. 이들이 현장에서 전해온 생생한 이야기와 체험은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간고한 방역 제1선에서 날마다 박투하고 있는 광범한 당원간부와 군중들의 모습 또한 실감할 수 있다.

  모녀가 함께 이웃들 채소꾸러미 배달에 나서

  글 | 김령

  3월 27일과 28일 이틀간 나는 퇴직을 일년 앞둔 어머니와 함께 장춘시 고신개발구 쌍덕가두 보리사회구역의 자원봉사자로 자원봉사에 나섰다. 자원봉사그룹은 사회구역 일군들이 지도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것이였다.

  27일에는 주로 핵산검사의 질서 유지를 담당했고 28일에는 주민들에게 채소꾸러미 발급이 주된 업무였다. 우리 팀은 15근짜리 채소꾸러미 60개를 트럭에서 부리고 다시 밀차에 실은후 일일이 이웃들의 거주 아빠트 단원문까지 송달해야 했다.

  며칠째 불어치는 8급의 큰 바람때문에 몸을 가누기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웃들이 여러날 동안 기다리던 채소꾸러미를 받아안고 기뻐할 모습들을 상상하니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단결심이 좋은 우리 팀은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부지런히 채소꾸러미를 날랐다.

  대부분 봉사자가 자원봉사는 처음이여서 때론 조직이 어설프고 배달이 서툴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익혀가면서 질서있게 해나갔다. 매번 그날의 자원봉사 활동을 끝내고는 총화까지 하며 경험을 쌓아간데서 점차 일에 익숙해지고 효률도 높아졌다.

  집에서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지치긴 했지만 코로나 19 방역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뿌듯했다.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전면 승리할 것이다

  글 | 정현관

  3월 초 연길로 취재를 가게 되였는데 공교롭게도 연길에 도착한 이틀후 이번 전염병이 연변과 길림, 장춘 등지에서 확산되였다. 한동안 장춘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여 연길에 있는 비여있는 부모집에서 지내면서 온라인 근무를 하던 중 입당 적극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가 찾아보다가 거주하는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의 자원봉사에 지원하게 되였다.

  처음에 맡은 일은 주민들을 조직해 핵산검사를 받게 하는 일이였다. 건강 코드를 등록할 줄 모르는 로인들의 등록을 도왔고 주민들의 문의에 세심하게 해답을 해주면서 현장 질서를 유지했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주민 누구나 자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관련 요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원활한 핵산검사가 이루어지도록 서로 돕고 배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전염병 예방통제 일선에서 묵묵히 기여하고 있는 일군, 그리고 국가의 요구에 적극 호응하는 주민들, 평범한 일터에서 극히 평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나 되여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둘거라는 확신을 해본다.

  역정 속에서 더 빛난 세상 인심

  글 | 류향휘

  나는 거주하고 있는 장춘시 록원구 춘성가두 신오람성사회구역의 자원봉사자로서 핵산검사 현장 질서 유지를 주로 맡았다.

  나흘 동안 자원봉사를 하면서 년세 많은 로인들과도 접촉할 기회가 적지 않았는데 그들과 얘기하던 중 동감아빠트단지의 한 70대의 할아버지로부터 감동적인 사연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4일전부터 인터넷에서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줄곧 주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한 가게에 련락하여 음식 한꾸러미를 보내오게 되였다. 꾸러미 안에는 채소만 해도 10여가지나 들어있었는데 매우 신선해 보였으며 돼지고기도 한덩어리 있었다. 할아버지가 배달한 젊은이에게 가격이 얼마인가고 물으니 그 젊은이는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배달하고 남은 것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드세요. 며칠은 버틸 수 있을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할아버지가 뒤쫓아나갔지만 차는 이미 떠났고 할아버지는 손을 저으며 떠난 봉고차를 눈배웅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격동된 표정이 넘쳤다. 어려운 전염병 상황에서도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고 봄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글 | 김민

  나는 당원으로서 며칠 동안 아빠트단지의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주로 사회구역 디지털화 관리자(网格长)를 도와 14동 건물의 700여명 주민들의 핵산검사를 하는 일이였다.

  하루 종일 서있으니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도 아픈데다가 물조차 마시지 못하면서 사회구역 일군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자원봉사에 자진했을 때 아빠트단지에서 이미 류동검사를 시작했기에 우리는 검사기구들을 안고 한동, 한동씩 옮겨다녀야 했다. 1층까지 내려오기 불편한 로인들과 핵산검사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기에 우리는 층마다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설명해야 했다.

  나는 일회용 핵산검사 면봉을 뜯어서 옆에 있는 핵산검사 일군에게 넘기는 일을 했다. 하루에 700여개 포장을 뜯고 집에 돌아오니 손이 계속 떨렸는데 의료진은 날마다 얼마나 힘들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안쓰러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척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엔 두렵게 생각됐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니 두려움도 잊은채 주민들에게 핵산검사 봉사를 최대한 빨리 제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였다. 일을 마치니 사회구역 디지털화 관리자는 지쳐서 말도 하지 못했다. 제대군인과 정부에서 근무하는 년세 지긋한 분도 한명 있었는데 모두가 한마디 원망도 없이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자원봉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찐한 감동이 전해졌다.

  대다수의 방역일군들은 교대 근무가 아니라 매일 봉사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을 리해하지 못하고 욕을 퍼붓는 주민들도 간혹 있었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인정세태를 또 한번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봄도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믿기에!

  ‘헌신’이 무엇인지를 가슴깊이 느껴

  글 | 최화

  3월 18일 저녁 5시, 아빠트단지에서는 핵산검사를 해야 하는데 매집마다 통지할 지원자가 필요했다. 우리 아빠트에는 총 20여개 단원이 있는데 일부는 18층까지이고 일부는 32층까지이다. 엘리베이터 점유로 주민들의 출행에 영향주지 않기 위해 우리 지원자들은 층계를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통지하면서 밤 11시까지 바삐 돌아쳤다.

  남편도 방역일선에 나갔기에 집에 홀로 있던 딸을 불러 맨 마지막으로 핵산검사하러 가게 되였다. 하지만 나는 방호복을 입고 있었기에 딸과 멀리 떨어져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방역일선의 의무일군, 사업일군들이 가족들과 모일 수 없는 그 아픈 마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부모이고 자식일텐데….

  일선에서 뛰게 되면서 ‘헌신’이란 무엇인지를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고 역병과 싸우는 이 전투에 저그마한 힘이나마 기여하게 됨은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물 안마시는 리유

  글 | 최승호

  며칠전에부터 아빠트 단지에 자원봉사자로 이름을 걸어놓았던 나는 3월 22일 오후 5시 반 좌우에야 아빠트단지 자원봉사에 나오라는 련락을 받았다. 집합장소에 도착해보니 요즘 심심찮게 보아왔던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원봉사단체 관계자의 도움으로 방호복을 입고 일회용 장갑과 모자에 안면 보호막까지 착용하니 순식간에 ‘따바이(大白)’로 변했다.

  임무가 배정됐다. 우리 아빠트단지내 5개 동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핵산검사를 나오라고 알려주는게 임무였다. 우리 8명의 자원봉사자가 한 팀을 이루어 서로 단원과 층을 엇바꾸며 주민들을 부르기로 했다.

  첫 아빠트가 바로 내가 사는 18층짜리 아빠트였다. 제일 우층부터 문 두드려 핵산검사를 나오라고 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재미 있기도 하고 조금 설레이기도 했다. 잠간 틈을 내서 우리 집 문을 두드려 안해한테 ‘따바이’로 변한 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나게 두번째 18층짜리 아빠트까지 돌며 소리치고 나니 목이 타들어갔다. 동행한 자원봉사자에게 우리한텐 음료수를 안주냐고 물었더니 물을 마시면 소변이 마려울 수 있기에 주지 않는단다. 그제서야 이전에 취재할 때 방호복은 한번 벗으면 새걸로 갈아입어야 하기때문에 1선 의무일군들은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하고 근무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말로만 들어오던 이야기를 실제로 체험하는 순간이였다.

  세번째와 네번째 아파트는 26층이였고 마지막 아빠트는 33층짜리였다. 임무를 다 마치고 1층에 내려오고 나니 다리가 잠간 떨리기도 했다.

  대략 계산해보아도 8명이서 1,000호 되는 주민집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또한 일부 주민들이 지휘에 따르지 않고 2메터 거리 유지를 하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을 더 바쁘게 한다. 자원봉사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그래도 많은 주민들이 우리를 보고 “수고 많으십니다!” 하며 환하게 웃어주어 피로가 좀 가셔지기도 했다. 이런 인사 한마디와 환한 미소가 자원봉사의 매력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는 당원이자 기자입니다”

  글 | 신정자

  코로나 19가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장춘 전염병 예방통제가 시급한 때, 나는 당원으로서 장춘시 자동차기술개발구 동풍가두 영춘사회구역 방역일선의 지원봉사자로 선뜻 나섰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찼지만 새하얀 방호복을 입고 ‘전역’에 나설 때마다 격동과 감동이 동반되였다.

  특히 봉쇄구 주민들의 핵산검사때면 해당 사업일군들과 함께 아빠트단지의 계단을 6층까지 오르내리며 소독을 하고 쓰레기를 버려주고 생활필수품을 한집, 한집 날라다 주는 등 봉사로 힘들기도 했지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수고많으십니다!” 라는 고마움의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난다.

  방역일선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나는 ‘기자’로서의 직책을 잊지 않고 현장의 동태를 살피며 하나하나 렌즈에 담아 감동 사연으로 동영상을 제작해 해당 부문에 전달했다.

  어린 아들 둘을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방역일선에 나선지 20여일이나 되는 왕곤(王坤)네 두 부부는 작은 아들애의 ‘세돐 생일’을 영상을 통해 축하해줬다. “아들애가 ‘엄마아빠와 하루 밤만 같이 잘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라고 말하더라는 왕곤의 말에 나는 저도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알아보니 우리 구역 방역 봉사자 가운데는 왕곤네처럼 사랑하는 어린 애를 두고 나온 엄마, 아빠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호복을 입은 ‘전역’에선 주민들의 안전을 첫자리에 놓았다. 실외 현장에서 주민들의 핵산검사가 끝날 때까지 대여섯시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질서 유지, 코드 스캔, 핵산검사에 전념했다. 어떤 때에는 핵산검사가 뒤늦게야 끝난 후에도 봉쇄구역 청소, 남새꾸러미 부리우기 등 봉사로 자정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군 했다. 허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그 누구도 방역일선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강인한 대오와 방역일선에서 함께한 봉사시간이 어느덧 열흘이 되여간다. 그동안 전염병 예방통제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어 보람을 느끼며 전염병을 전승할 때까지 방역일선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련다.

항역승리의 숨은 조력자들 모습에 눈시울 젖어든다

  글 | 유창진

  나는 내가 거주하는 중횡사회구역에서 역정 예방통제 자원봉사자로 봉사하면서 항역에 자신의 작은 힘이라도 선뜻 바치려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핵산검사를 지정지역에서 할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방문검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배로 힘들어졌다. 내가 사는 아빠트단지에는 90여개 동의 아빠트가 있는데 8개 조로 나뉘여 방문검사가 진행됐다. 방문검사를 진행하는 날 우리 조에는 나를 포함해 5명이 편입되였다. 그중 내 나이가 제일 많았다. 나를 제외하고 전부 80년대 생들이였다.

  그중 검체 채집을 책임진 상명명은 통원병원의 녀의사였는데 이미 십여일이나 호텔에서 숙식하면서 항역 일선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그외에 ‘당원지원자’라고 쓴 빨간 완장을 두른 제정은 이미 여러차례 지원자봉사에 참여한 베테랑으로 방호복을 입을 때부터 조원들의 착용 상태를 살펴주고 바로잡아 주고 힘든 일에는 항상 앞장에 나섰다. 퇴역군인인 산대붕은 소독약을 들고 채취현장을 제때에 소독하고 현장 질서를 유지했고 진양은 의사가 검체를 채취한 면봉을 시험관에 담는 일을 책임졌다.

  처음에는 내가 오르내리며 출입문을 노크하는 일을 책임졌다. 내가 있는 아빠트단지는 복층 아빠트로 5—6층 집이 다수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보니 두발로 뛰면서 통지하고 검체를 채취해야 했다. 방호복을 입고 2—3개 현관을 오르내리고나니 두터운 마스크를 낀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방호 가림막에 입김이 서려 앞을 볼 수가 없었다. 거기에 체력까지 바닥나니 자칫하면 계단을 헛디딜 위험이 있었다. 우리는 오전에 4시간을 쉴새없이 핵산검사를 진행했다. 노크를 책임진 나와 산대붕의 장갑은 출입문의 색갈과 주련의 색이 물들어져 빨갛게 돼버렸다.

  점심은 사회구역 사무실 앞 화단에서 대충 요기했다.

  오후에는 다른 조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층 아빠트의 핵산검사 임무를 배정받았다. 이렇게 11층 아빠트 3개 현관의 검측을 끝내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상명명의사는 거의 탈진 직전이였고 기타 조원들도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끌며 사회구역 사무실까지 되돌아왔다.

  멀리서 보니 사회구역 디지털화 관리자의 허리는 어제보다 더 굽어들었고 질서를 유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도 더 쉬여 있었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든다. 항역 일선에서 뛰고 있는 무수한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역정과 싸워 이기는 숨은 조력자임이 틀림없다.

  전염병 장춘저격전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글 | 유경봉

  3월 18일 오후, 살고있는 아빠트 단원이 이틀 만에 페쇄통제 상태에서 해제됐다는 통지를 받았다. 거주지인 관성구 군영가두 서도구사회구역에 전화하여 자원봉사 의향을 밝혔고 그들이 알려주는 대로 자원봉사자 위챗그룹에 가입해보니 “핵산검사 자체측정 시제를 발급할 봉사자가 30명 필요하니 오후 4시 반까지 지정장소에 집합하라”고 해서 달려갔다.

  32층짜리 아빠트의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한층씩 층계로 걸어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길상코드를 스캔하고 인수에 따라 시제를 발급했다. 한통에 시제가 두세트씩 들어있었는데 한 가구에 한사람, 세사람, 다섯사람씩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포장을 뜯어서 시험봉, 검사용 면봉, 시험액 등을 한세트 꺼내서 줘야 했다. 게다가 길상코드가 없는 로인이나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이름, 전화번호, 신분증 번호와 유효기간까지 일일이 ‘마상행동(码上行动)’ 앱에 입력해야 했기에 이 두 작업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안면 보호막에 안개가 끼면서 시야를 막다보니 애를 많이 먹었다.

  네시간 남짓 걸려 124가구에 시제를 발급하고 실외로 나오니 목에서 겨불내가 났고 쉰 소리도 났으며 다리가 휘청거렸다. “32층짜리 오피스텔이 한동 남았는데 식사 시간도 많이 지났고 체력적으로도 힘들텐데 끝까지 견지할 만한 사람만 남으라”고 책임자가 말했다. 힘들다며 방호복을 벗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결국은 여덟사람이 남아서 오피스텔로 향했고 나는 4개 층 발급을 책임졌다. 한층에 13가구씩 있어서 한걸음에 여러 가구의 문을 두드리면서 발급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쉬웠다.

  밤 10시 20분까지 근 여섯시간을 버텼더니 체력이 핸드폰 배터리와 함께 방진된 상태였다. 일이 끝나고 나서 의료용 장갑을 벗어보니 오른쪽 중지 피부가 까져 있었다. 총 176가구중 문을 두드려도 응답하지 않는 집이 적지 않아 혹시나 해서 몇번씩 더 두드리면서 500여명에게 시제를 발급하는 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N95 마스크가 축축하여 손으로 짜보니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핵산 자체측정 결과 음성임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집에 돌아왔다.

  실제로 체험해보니 매일 이렇게 고된 일상으로 고생하고 있을 사회구역 일군들의 로고가 눈앞에 선했다. 사회구역의 숨은 영웅들을 더 많이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서 이틀 정도 쉬고 다시 자원봉사에 나가려고 생각했는데 21일부터 “누구든 아빠트 단지를 나가지 못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길림일보신문그룹 자원봉사자로도 신청을 했는데 봉사활동 장소가 너무나 멀어서 외출이 거부당해 유감스러워하던 중 3월말에 사회구역 자원봉사에 두번 더 참가할 수 있었다. 경험도 생기고 무접촉 발급을 하다보니 첫번보다 덜 힘들었다.

  전염병 상황과의 장춘저격전은 아직 진행중이다. 자원봉사자로서 초연 없는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방역일군들과 어깨 겯고 싸워 이길 것이다!

  출처:길림신문

  편집: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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