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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나갔던 입맛과 체력, 닭 한마리에 숨었네

[기타] | 발행시간: 2012.09.07일 11:14

9월이다. 새벽녘이면 나도 모르게 이불을 당기게 된다. 연일 밤잠을 설치게 했던 무더위가 언제였던가 싶다. 가끔 서늘한 바람에 뜨끈한 국물도 생각난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여름을 견뎌낸 몸을 추스를 음식을 찾아보았다. 더위에 지쳤던 심신을 달래고 새 계절을 맞이할 힘을 얻기에는 ‘닭 한마리’ 만한 음식도 없을 듯 하다.

지구상에는 소나 돼지를 종교적인 이유로 먹지 않는 곳이 있다. 그러나 닭고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대체로 즐겨 먹는다.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닭을 잡아주는 우리네 정서가 있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나올 만큼 서양인들에게도 닭고기는 친숙한 음식이다. 국물음식에 쓰는 육수로도 다른 육류에 비해 닭은 인기가 높다. 국제적인 음식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닭고기에 주목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농림중흥의 기수 이옥희양’ 상경기

‘닭 한마리’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닭의 맛과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한 요리다. 구이나 튀김이 닭 요리의 큰 흐름을 잇고 있지만 기름이나 양념이 아닌, 닭 본래의 진한 풍미는 역시 국물과 함께 우려내는 닭 한마리를 당하지 못한다. 서울 화양동의 ‘무등산 닭 한마리’는 닭요리 전문점이다. 15년 넘게 닭으로 여러 음식을 만들었지만 닭 한마리에 대한 고객의 인기는 여전하다. 15년 동안 이 집의 간판메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집은 닭고기 맛도 좋지만, 서글서글한 주인장 이옥희씨의 입담이 닭 한마리만큼 구수하다. 60년대와 70년대를 농촌에서 지낸 사람에게 4H클럽과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비록 관주도의 농촌개발운동이었지만 농촌 젊은이들에겐 뭔가 기회와 변화의 계기였다. 전남 화순의 꿈 많던 여고생 이옥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고를 졸업하자 병환 끝에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녀는 손발을 걷어 붙이고 삽과 호미자루를 들었다. 지게질을 하고 밭도 멨다. 처녀농군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향토의 4H클럽과 새마을운동을 이끌어나갔다. 한마디로 그녀는 농촌 똑순이였다.

당시 이옥희양의 활약상을 어느 신문사에서 포착했다. ‘농림중흥의 기수 이옥희양(23)’이라는 제하의 르포 기사로 그녀를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양은 렉스 토끼와 멧돼지를 키우면서 부농의 꿈을 키우는 억척스런 처녀였다. 기사와 함께 실린 흑백사진 속 그녀는 연예인 뺨치는 미인이다. 이 처녀가 바로 주인장 이옥희씨다.

그녀는 ‘58년 개띠’니까 올해 55세인 셈. 그럼에도 곱고 앳된 외모는 여전하다. 그러나 삶의 굴곡은 누구보다 험난했다. 20대 시절을 힘든 농사와 농촌운동으로 보내고 혼인을 했다. 그러나 혼인 이후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새로운 삶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1993년에 단돈 2만원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절박했다. 우선 급한 대로 분식집을 하는 친구에게 김밥 만드는 법을 배워 초미니 김밥 집을 차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한 개에 800원짜리 김밥을 하루에 200만 원어치 이상 팔았다. 하루 종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두 달 만에 7~8천만 원의 빛을 청산했다. 이씨의 음식솜씨는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때 번 돈과 ‘친정어머니의 솜씨’로 1997년에 지금의 가게를 열게 된 것이다.

닭고기의 풍미와 황기·엄나무로 낸 육수의 개운함 짜릿

김밥을 만들 때도 그랬지만 닭 한마리를 만들 때도 친정어머니의 마음과 솜씨로 정성을 다했다.

이 집 닭 한마리 맛의 핵심은 육수다. 닭 발에 황기와 엄나무를 넣고 하루 종일 끓여 육수를 낸다. 원래 뽕나무 뿌리를 넣었으나 요즘에는 구하기 어려워 자주 넣지는 못한다. 뽕나무 뿌리는 고기를 쫄깃하게 해주고 고기 맛을 담백하게 해주며 육수의 잡내를 가셔준다고 한다. 엄나무는 스트레스 해소와 간 기능 개선에 좋고, 황기는 땀 조절을 해주며 닭발은 콜라겐이 풍부하다. 여름내 지친 몸에 그만이다.

이씨는 황기와 엄나무를 강원도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뽕나무 뿌리는 경동시장 등에서 가끔 눈에 띄는 대로 구입해 쓰고 있다. 물론, 화학 조미료는 일체 넣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육수는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황기는 향이 강해, 잘못하면 육수 맛을 망친다. 그런데 이 집 육수의 황기는 아주 순둥이다.

이 육수에 닭, 마늘, 소금, 양파, 대파, 인삼, 표고버섯 등의 재료와 가래떡, 만두를 함께 넣어 끓인다. 서서히 끓으면 우선 채소를 건져 먹고, 이어서 만두와 가래떡을 건져서 먹는다. 마지막으로 감자와 함께 닭고기를 먹는다. 보통 닭고기는 채 썬 부추를 넣은 겨자-간장 소스나 양파와 고춧가루로 만든 다진 양념에 찍어서 먹는다. 그러나 주인장 이씨는 될 수 있으면 아무 것도 찍지 말라고 권한다. 다른 찬이나 소스와 먹지 말고 그냥 육수를 떠먹으면서 닭을 먹는 게 제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뜨거운 국물 한 번 마시고 닭고기 한 점 먹다 보면 어느새 땀이 난다. 땀을 닦고 다시 한 번 국물을 마시면 여름에 저만치 물러나 있던 입맛들이 다시금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어느 정도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끓이거나 비빔밥을 볶아먹는다. 충분히 우러난 진국 닭 국물에 삶아먹는 칼국수 맛도 고기 못지 않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부추, 김 가루, 콩나물 넣고 비빈다. 살짝 누를 때까지 볶아서 먹는다.

닭 한마리는 크기에 따라 2만원(소, 2인분), 3만원(중, 3인분), 4만원(대, 4인분)의 세 가지가 있다. 찬으로는 동치미, 김치, 깍두기가 나온다. 모두 이씨가 직접 국내산 재료로 담근 것들이다. 그녀는 한 번도 중국산 김치 사다 쓴 적 없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손님에게 공장 김치나 중국산 김치는 먹이고 싶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동치미에서 사이다 맛이 나지 않아 좋다.

착한 닭 한마리, 세계인의 보양식으로 변신

주인장 이옥희씨는 무릎관절이 조금 불편하다. 손가락도 6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일을 남에게 맡기는 성격이 못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간 것이다. 지금도 닭 한마리의 밑간은 이씨가 직접 한다. 이 집 닭 한마리의 근본적인 맛은 그녀의 성치 않은 손에서 나온 것이다. 치료가 너무 늦어 완치는 어렵다고 한다.

음식에 대한 이런 정성은 국경 너머에서도 알아보았다. 이 집은 국내보다 이웃나라에 더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일본을 비롯, 홍콩, 대만, 중국 등 중화권 고객이 많이 찾아온다. 일본의 여러 관광 잡지와 인터넷 매체에서 ‘한방약재가 들어가 스태미나에 좋은 한국의 음식이라며 소개하고 있다.

이씨는 상경 이후 지금까지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지금은 8개의 점포를 운영할 만큼 성공한 사업가다. 그러나 스스로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고생해 돈 벌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워낙 어렵게 살아오다 보니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어요. 뒤늦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2급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지역에서 어르신과 청소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10년 째 해온 것도 다 그런 맥락이었지요. 부끄럽습니다.” 수줍게 웃는 그녀는 어느새 스물셋, 시골 처녀 이옥희로 돌아와있었다. 02-498-3027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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