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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봉사, 헌신… “뢰봉아바이”의 삶

[조글로미디어] | 발행시간: 2012.11.19일 16:37
인물이름 : 한무길

아리랑주간이 만난 사람 (24)

현 주당위 당사연구실 로간부 당지부서기 한무길로인의 인터뷰

퇴직은 전근, 죽음은 이사일뿐이다. 그만큼 인민을 위한 일에 게을리하지 않을것이다!

분투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것이다…




“남을 도와주며 산다는것은 늘 웃으면서 살수 있는 활력소를 부여하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살아있는 뢰봉아바이” 한무길로인의 말이다. 얼굴 가득 인자한 웃음이 끊이질 않는 한무길, 연길시 사회구역로인대학의 창시자이며 주당위 당사연구실 로간부 당지부서기 등 크고작은 직무 16가지를 걺어지고 80고령에도 지칠줄 모르고 삶의 현장을 누비고다니는 한무길로인을 찾아 그의 삶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뢰봉”으로 산 49년


1963년 3월 5일, “뢰봉을 따라배우자!”라는 모택동동지의 제사와 함께 전국적으로 뢰봉따라배우기 열조가 뜨겁게 일기 시작했다. 뢰봉사적을 학습하면서 한무길은 웬지 모를 동질감에 전률을 느꼈다. 전쟁시기군인이였던 자신과 평화시기군인이였던 뢰봉, 소학교졸업밖에 안되는 저학력에 작달막한 키마저도 자신과 너무 흡사한 뢰봉이 어느새 거부할수 없는 존재로 그의 마음속 가까이 다가서고있었다.

“유한한 목숨을 무한한 인민사업에 바칠것이다”라는 뢰봉의 좌우명을 자신의 생활신조로 간주하고 장장 50년동안 한무길로인은 살아있는 “뢰봉”의 삶에 충실했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주변이웃들의 편리를 도모해준 일, 두팔걷고나서서 구슬땀을 흘리며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일은 이루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고 자연피해를 입은 재해구에 의연한 금액만 해도 8만원에 가깝다. 그런 한무길은 언녕 주변 사람들로부터 “뢰봉아바이”라고 불리운지 오래다.

우연한 기회에 독거로인 김봉숙을 알게 된 한무길은 김봉숙의 가슴저린 사연앞에 가슴이 젖어들었다. 앞못보는 소경으로 남의 집 헌 창고에서 생활하는 김봉숙, 손더듬으로 마을의 공중화장실을 다니는 김봉숙의 일상은 아슬아슬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부터 도와줘야 할지 망설이던 한무길, 결국 안해와 상의끝에 아글타글 모아두었던 몇만원의 저금을 탈탈 털어 김봉숙에게 아담한 집한채를 사주었다. 한무길로인의 진심어린 도움에 김봉숙은 말을 잇지 못한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2008년에 사천성을 강타한 문천대지진, 한무길로인은 선뜻 3000여원의 의연금을 납부했고 김봉숙로인은 유일한 금붙이였던 결혼반지를 팔아 천원을 마련해 재해구에 의연했다고…장기간 한무길로인의 도움과 교육끝에 2010년 6월, 김봉숙로인은 영광스럽게 입당까지 했다.


“뢰봉반”의 창시인


언제부터인가 한무길로인은 주변에 자신과 한마음인 로인들이 많음을 직감했다. 흩어진 힘을 한데 모으면 더 큰 힘이 되고 더 강한 사랑을 이뤄낼수 있는 법, 한무길로인은 끓어오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유관부문을 뛰여다니며 노력한 결과 2004년 14명의 멤버들로 연길시에 민간뢰봉반을 건립, 뢰봉반활동의 발전을 위해 다시 북산가두 당위에 청시하여 민간뢰봉반을 가두당위에 귀속시키고 가두뢰봉반으로 명명한 뒤 회장직을 맡았다. 그렇게 북산가두당사업위원회의 적극적인 지도아래 뢰봉반은 주변 불우이웃돕기에서부터 착수해 살아있는 뢰봉의 진가를 발휘해나가기 시작, 몇년만에 뢰봉반은 뿌리에 뿌리를 뻗치듯 48개로 증설되였고 회원수만도 만명을 훨씬 초과했다. 이렇듯 수많은 “뢰봉”들의 사랑은 주변인들의 웃음과 감동으로 바뀌여갔고 이들의 손을 거쳐 헌금된 금액만도 180만원을 웃돌 정도이다. 현재 북산가두의 김옥선을 비롯한 수많은 불우아동들은 “뢰봉”들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긴 후원금으로 근심걱정없이 학교를 다니고있다. 그 모든 활동의 선두에는 항상 한무길로인이 있었다.

나이는 수자에 불과한것임을 보기좋게 증명하듯 80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식지 않는 로익장을 과시하고있는 한무길로인의 사적은 《가을단풍(金秋  )》을 비롯한 여러 잡지에 실렸고 그는 중공중앙조직부로부터 “우수당무공작자표병”, “전국우수공작자”, “전국리퇴직간부선진개인” 등 영예를 수여받았다.


사후 유체기증


“생각해보니 죽은후에도 여전히 사회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 있더라구요.”

무슨 뜻일가 잠간 머리를 갸우뚱하는 사이, 한무길로인은 어느새 기자앞에 한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연변대학유체기증판공실과 맺은 합의서였다.

“죽으면 썩을 몸뚱이, 후대들의 의료사업연구를 위해 기꺼이 내드리기로 했습니다.”

호탕하게 웃어보이는 한무길로인의 웃음뒤로 진정한 대인배의 풍미가 다분히 풍겼다.

민족의 령혼이 깃든 우리말, 우리글이 후대들에 의해 더 널리 선양되고 보급되길 희망한다는 한무길로인, 베풀면서 살아온 인생덕분에 늘 웃으며 살수 있었다는 한무길로인이 오래도록 찬란한 웃음을 지을수 있기를 내심 기원한다.


글 은설 사진 박군걸

한무길 략력


1946년 14살나이에 참군

1960년 연변대학중문계에 추천

졸업후 연변교육출판사, 연변주당위당사연구실서 근무

2008년 주직속기관우수당원 등 8가지 영예 획득

2004년 민간뢰봉반 설립, 회장

2006년 가두뢰봉반 설립, 회장

2009년 신흥가두 민성사회구역 “새봄로인대학” 설립, 교장 겸 강사

2011년 신흥가두 민창사회구역 “봄빛로인대학” 설립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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