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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혈육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2.13일 09:31

탕탕탕!

새벽녘에 누군가 갑자기 문이 부서지듯 요란하게 두드려대는 바람에 나는 단잠에서 깨여났다. 안해가 한국에 간후부터 구질구질한 홀아비생활을 하면서 늘 폭음하는 버릇이 생긴 나는 어제도 곤죽이 되여 집에 돌아오자마자 허깨비처럼 쓰러졌다.

겨우 눈을 비비며 엉기적엉기적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니 성순령감의 아들 춘식이가 꺼벙한 얼굴로 서있었다.

《아니, 네가 신새벽에 어떻게?》

《아… 아부지가 주… 죽습꾸마.》

춘식이는 어눌하게 말하고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려 덜썩덜썩 걸어갔다.

《반편이 같은 자식이 신새벽부터 무슨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무슨 감투끈인지 몰라 한참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밖에 나섰다. 그래도 촌장이라고 찾아왔는데 가보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성순령감은 이미 마직막 숨을 톺고있었다. 어제만 해도 마을에 경사가 났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성순령감이였다. 사실 고속철도개발로 마을이 대합실부지로 선정됐다는 희소식에 마을사람들은 개를 잡고 큰 잔치를 벌였다. 특히 성순령감은 집과 밭이 모두 개발범위에 들어 하루아침사이에 토지보상비 80여만원을 손에 쥐게 되였다. 원래 혈압이 높고 심장이 좋지 않아 몇년전에 한번 뇌출혈을 한적 있는 성순령감은 갑자기 흥분되여 술을 과하게 마신탓에 병이 재발했던것이다.

《우리 경… 경옥이가 보… 보고싶구만…!》

성순령감이 간헐적으로 숨을 톺으며 힘겹게 내뱉은 마지막 한마디였다.

성순령감은 요즘 들어 무척 한국에 간 딸 경옥이를 입에 올렸다. 어제도 그는 일찍 어미를 여의고 가엾게 자란 딸한테 늘 미안하다면서 이제 토지보상비를 받으면 한몫 떼여주겠노라면서 눈굽을 적셨다. 하긴 경옥이는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집살림을 도맡아했다. 설상가상으로 성순령감이 새 로친을 얻는 바람에 더욱 마음고생이 심했다. 계모가 너무 모질게 굴어 시집마저 자기 손으로 아글타글 벌어서 갔기에 성순령감에게 불만이 많았다. 얼마나 아버지가 미웠으면 시집간후 친정집에 발길도 돌리지 않았겠는가. 나중에 계모가 죽어서야 마지못해 몇년 간격으로 음력설때마다 친정집에 드나들었다.

어찌 보면 성순령감은 박복한 사람이였다. 마누라를 일찍 잃고 딸마저 거의 발길을 끊다싶이 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 춘식이마저 어릴 때 까닭없이 열병을 앓고난후 정신이 오락가락하더니 지체장애자가 되였다. 춘식이는 인젠 서른살이 넘었지만 정신년령이 일여덟살밖에 안되였다. 성순령감은 그 못난 아들때문에 늘 속앓이를 했었다. 헌데 이제 성순령감마저 하늘나라로 갔으니 불쌍한 춘식이만 덜렁 홀로 남게 되였다.

나는 성순령감의 속옷을 가지고 지붕우에 올라갔다. 망인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혼을 부른 다음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 렴습했다. 이불솜을 뜯어내여 칠성구멍을 틀어막고 입에 입쌀을 물린 다음 수의를 입혔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그제야 나는 마을의 몇몇 로인들과 음식상을 차릴 영자를 불렀다. 영자는 성순령감의 딸 경옥이와 죽마고우였는데 소아마비로 다리를 심하게 절었기에 남들이 다 가는 한국에도 못 가고 집에 남아 상점을 경영하고있었다. 영자는 내가 부탁하자 인츰 따라나섰다.

이제 한국에 있는 경옥이한테 부친이 돌아갔다는 소식만 전하면 되는데 전화번호를 알수 없었다. 혹시 영자가 경옥의 전화번호를 알고있을것 같아 나는 불편한 몸으로 가마목에서 바삐 돌아치는 영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혹시 경옥의 전화번호를 알고있냐? 아무래도 경옥이한테 부친의 사망소식을 알려야 할것 같아서.》

《예, 알고있어요.》

나는 영자가 알려준 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다. 경쾌한 멜로디가 울리더니 “여보세요?”하는 녀자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옥이냐? 난 복흥촌의 장철이다.》

《오빠예요. 아니지, 촌장이 됐다니 장촌장이라고 불러야지. 호호호.》

《지금 롱담할 새 없어. 어제새벽에 너의 아버지가 돌아갔다.》

《네? 아버지가요?!》

《응.》

《어쩌다가… 갑자기?》

《글쎄, 한치 앞도 모르는게 로인들의 일이 아니겠냐?》

《네. 하긴 그래요.》

부친이 돌아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당장 대성통곡할줄 알았는데 경옥이는 너무 담담했다. 마치 동네집 로인이 돌아간듯 아무 반응도 없었다. 옛날에 맺힌 응어리때문인가?

《너의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길인데 혹시 올수 없겠는가 해서…》

《…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전화기에서 쌕쌕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알다싶이 춘식이야 그렇잖니? 딸이라도 있어야 장례식을 올릴게 아니냐?》

《오빠, 아무래도 저는 갈것 같지 못해요. 제가 응당 가야 하는데 불법체류자이기에 돌아가면 다시는 한국으로 나오지 못해요…》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 길인데. 사실 넌 한국에서 돈을 벌어 연길에 아빠트도 사놓았다더구나. 이제 살만 한데 아버지를 섭섭하게 보낼수는 없지 않겠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쩌면 딸의 입에서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의 장례식에 못 가겠다는 말이 그리 쉽게 튕겨나올수 있을가? 불효라도 이런 불효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오빠두 참, 아직두 아들을 대학공부 시켜야지, 장가 보내야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든다구 그래요. 제가 돈을 보낼테니 오빠가 저를 대신해서 후사를 처리해주세요. 후에 섭섭치 않게 사례할게요.》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툭 끊었다. 나는 화가 욱― 치밀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어찌 혈육의 정마저 헌신짝 팽개치듯한단 말인가?

내가 씩씩거리며 몸을 돌리는데 영자가 구정물통을 들고 돼지우리옆에 서있었다. 나와 경옥의 통화를 엿들은게 분명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안으로 쑥― 들어갔다.

나는 조촐한 음식상을 마련하여 문상을 온 동네로인들을 대접했다. 로인들은 망인의 생전을 회억하며 섭섭함을 금치 못했다. 하긴 법 없이도 살만큼 정직한 성순령감이였으니 모두들 애석해했다.

나는 갑자기 소변이 급하여 뒤간으로 향했다. 금방 뒤간옆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영자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야, 이 머저리 같은 가시내야. 토지보상비 80여만원이야. 네가 한국에서 밑구멍이 빠지도록 10년을 아글타글해도 그만한 돈을 못 벌어… 잘못하면 바보같은 네 동생이 다 차지한단 말이야.》

영자가 경옥이한테 고속철도부설과 토지개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것 같았다.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돌렸다.

아니나다를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옥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좀전과 달리 비감에 푹 젖어있었다.

《오빠, 아무래도 딸인 제가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드리는것이 도리인것 같아요. 아까는 그냥 철없이 흑흑…》

경옥이는 울먹이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손바닥 뒤집듯 얄밉게 노는 경옥이를 비꼬아 말했다.

《그러다가 영영 한국으로 다시 못 나가면 어떡하겠니?》

《못 나오면 말지요. 그깟 돈보다 혈육의 정이 더 중요하지요. 제가 아버지를 그렇게 쓸쓸하게 보내고 어찌 발편잠을 잘수 있겠어요?》

《허허허, 효성이 지극한데.》

《딸이 효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오빠도 알잖아요. 제 동생 춘식이가 사람구실 못하는것을… 이제 제가 아니면 누가 춘식이를 돌보겠어요? 하나밖에 없는 피줄인데…》

경옥의 얄팍한 속마음이 빤히 들여다보였지만 나는 쓰거워 더 말하지 않았다.

경옥이는 이튿날저녁무렵에 도착했다. 그녀는 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성순령감의 시체를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이고, 아버지, 왜 이렇게 갑자기 떠나세요? 이 딸이 한국에서 돌아와서 효도할 새도 없이. 뭐가 그리 급하세요? 우리 아버지가 불쌍해서 어쩌지… 아이고아이고…》

애처롭게 우는 경옥이를 지켜보면서 마을사람들은 그래도 딸이 있어야 죽어도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있다면서 혀를 끌끌 찼다. 하긴 두억시니 같은 춘식이는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히죽히죽 웃으며 커다란 비게덩이를 입안에 집어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좋아했으니 더 말해 뭘 하겠는가.

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옥의 행동이 아니꼬왔지만 꾹 참았다.

그날 밤, 장례를 어떻게 치르겠는가를 토의했다. 지금 나라에서 토장을 금지하기에 의례히 화장해야 했다. 그러자면 장례식장에 련락하여 미리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안돼요, 화장이라니요? 우리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한가닥 연기로 사라지게 하겠어요? 저는 하늘이 무너져도 토장하겠어요.》

《허지만 토장은 위법이야.》

내가 한마디 뚱겨주었다.

《그건 저도 알고있어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 태를 묻고 자란 아버지마저 고향땅에 묻힐 자격이 없나요? 법도 인정을 고려한 토대우에 세워져야지요.》

《그 후과를 누가 책임지겠니?》

《제가 책임지겠어요. 돈을 내고 묘자리를 사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아무리 비싸도 괜찮아요. 해마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부토하고 벌초하며 제사도 지내야 아버지가 저세상에서 외롭지 않을거얘요?》

옆에서 듣고있던 동네사람들은 심청도 울고 갈 효녀라면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씁쓸했다.

결국 경옥의 집요한 요구에 못이겨 토장하기로 했다.

이튿날아침, 성순령감의 령구를 집밖으로 내갈 때 경옥이는 또다시 관우에 엎드려 애고대고 대성통곡했다. 실로 구곡간장을 녹일만큼 애절하여 사람마다 눈굽을 찍었다. 나중에 동네사람들이 뜯어말려서야 겨우 경옥이를 관에서 떼놓을수 있었다.

성순령감의 령구를 실은 소수레가 울퉁불퉁한 자드락길을 따라 마을뒤에 있는 낮다란 산등성이를 삐걱삐걱 톺아올랐다. 그뒤로 실신한듯한 경옥이와 실실 웃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춘식이를 옹위하여 마을사람들이 따라섰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 저승길이 가기 싫다

어― 어― 어어어 어― 어― 얼라리 영차 어― 어―

우리 부모 날 낳고서 애간장을 녹였는데

어― 어― 어어어 어― 어― 얼라리 영차 어― 어―

천지신명 몰라보고 부모은공 내 몰랐네

어― 어― 어어어 어― 어― 얼라리 영차 어― 어―

재산 모아 남겨놓고 빈손 가기 아깝구나

어― 어― 어어어 어― 어― 얼라리 영차 어― 어―

누가 많이 차지할가 티격태격하지 마라

어― 어― 어어어 어― 어― 얼라리 영차 어― 어―

누군가 부르는 상여소리에 앞에서 헉헉 단김을 뽑으며 걷고있던 둥글소마저 갑자기 하늘을 향해 머리를 높이 쳐들고《음메―》 하고 길게 영각을 뽑아댔다. 마치 성순령감의 죽음을 슬퍼하는 처량한 울음소리 같았다…

이듬해가을 경옥이는 토지보상비 80여만원을 챙긴후 남동생 춘식이를 어느 한 시골의 양로원에 보내고 또다시 한국으로 갔다. 유일한 혈육인 춘식이는 결국 《고아》로 되고말았다.

/채운산

편집/기자: [ 리영애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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