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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재발견(5)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립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4.02.18일 12:20

▲ [자료사진] 6~70년대의 초등학교 교과서

“밥상 위의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책상 위의 신발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짐수레에 바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학교 길에 동무들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 보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동무 동무 씨동무, 이야기길로 가자, 동무 동무 씨동무 이야기길로 가자, 옛날 옛날 옛적에 갓날 갓날 갓적에 아기자기 재미나는 이야기길로 가자”,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겯고 시내 건너 재를 넘어 들과 산으로, 산들산들 가을바람 시원하구나, 랄라랄라 씩씩하게 들과 산으로”, 그리고 ‘동무 생각’이란 제목의 “귀뚜라미가 또르르 우는 달밤에,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리워져요, 정답게 손잡고 뛰놀던 옛 동무, 그곳에도 지금 귀뚜린 울고 있을까”.

이 모두는 60년대 중후반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동요 가사들이다. 내 나이 또래가 한참을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는다거나 정부 교육부처의 전문자료실을 찾는다면 모를까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그런 동요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상당히 오래 전이기 때문이라거나 차츰 시대상황에 맞는 분위기의 고품질 동요로 대체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 동요들은 그런 문제로가 아니라 70년대 초반 사상과 이념에 따른 규제의 잣대에 걸려 적합한 단어와 가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사라져버렸다. 기억을 더듬건대 강원도 평창군 속사면 계방분교에 다니던 이승복 어린이의 절규가 기점이 되었던 듯하다. 물론 그 이후 등장한 동요 가사에서 더 이상 ‘동무’라는 단어를 찾을 수는 없었고,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의 대화 속에서도 그 단어는 ‘친구’로 대체된 채 소멸해 버렸다. 거의 사어(死語)가 되었던 이 단어는 최근에서야 고증을 통해 시대 상황을 잘 재현했다는 어느 TV 사극에서 천연기념물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추억 삼아 잠시 인위적인 언어정책에 의해 우리 곁에서 사라진 단어 하나를 조명해 보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자연상태 그대로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의 선택과 사용빈도에 의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소멸해가고 또 한편으론 생성되어 간다.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인 사람 사는 세상 자체가 쉬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 빠르게 바뀔수록 쓰이는 단어도 빠르게 바뀐다. 우리처럼 세계사에 유례없이 불과 50~60년의 단기간에 농경사회, 산업화사회, 지식정보화사회를 거침없이 관통해 버린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3세대가 함께 사는 집, 저녁 식탁에 모두들 둘러 앉았는데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린 IT세대의 손자 녀석이 말한다. “할머니, 나 빨리 먹고 ‘쥬라기 공원’에 갈래요.” 농경사회생활이 몸에 밴 할머니의 답변은 “아니 인석아, 밖이 벌써 이렇게 어두운데 공원은 무슨?” 어느 신문광고의 한 장면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속담을 쓸 젊은이들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한다. ‘봉창’이란 인식의 대상 자체가 매우 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학습 기회가 없으니 학습 효과도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 ‘사립문을 밀치고 버캐(뭉쳐진 찌꺼기)가 켜켜이 낀 똥장군을 지나……’ 하는 식의 문장 뜻을 실감있게 새기기를 바란다는 건 상당히 어렵다. 이들에게 조정래의 ‘태백산맥’까지는 몰라도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김주영의 ‘객주(客主)’는 매우 벅찰 것이다. ‘봉놋방’, ‘헐숙청’, ‘반빗아치’, ‘중노미’, ‘대궁밥’, ‘물어미‘, ’열립꾼‘, ’감창‘, ’요분질‘ 등은 따로 공부해야만 파악될 수 있는 단어이고 대상이다.

‘애오라지(겨우 또는 오로지)’, ‘고달(점잔을 빼고 거만스레 노는 짓)’, ‘달비(여자의 머리 타래)’, ‘손사래(어떤 말을 부인할 때 또는 조용하기를 요구할 적에 손을 펴서 휘젓는 짓), ’자드락길(나지막한 산기슭에 있는 좁은 길)‘, ’너나들이(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터놓고 지내는 사이)‘, ’드잡이(서로 머리 또는 멱살을 끌어 잡고 싸우는 짓)‘, ’보쌈(뜻밖에 누구에게 붙잡혀 가는 일을 비유해서 일컫는 말)‘, ’초다듬이(정신을 채 가다듬을 사이도 없는 당초에)‘ 등등 세찬 변화의 물결 속에서 밀려나 요즘은 일상생활 속에서 거의 잘 사용되지 않는 고유 단어가 부지기수로 많다. ‘타짜(노름판 같은 데서 속임수를 잘 쓰는 사람)’나 ‘워낭(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나 방울)’도 그런 상태였다가 근자에 출시된 어떤 영화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이제는 그저 향토색 짙은 예술 작품, 또 필요한 경우 사전에서나 접하게 될 뿐이다. 그런가 하면 그런대로 잘 쓰이고 있지만 뜻 자체가 변질되어 버린 것도 더러 있다. ‘까칠하다‘의 경우는 ’자고 난 후 혹은 어려움을 겪은 후 부석부석한 얼굴 모양‘에서 ’까다로운 성격‘, 즉 ’까탈스럽다‘로 변해 버렸다.

이들이 떠나간 빈 자리를 메운 것 중 상당부분이 영어 외래어이다. 영어 외래어는 IT분야를 비롯 각종 분야에서 갈수록 많이 생성되고 있다. ‘스피드’, ‘오너’, ‘그린’, ‘마인드’, ‘메리트’ 등 생성된 지 일정 시간이 흘러 고유 단어 못지 않은 수준의 위상을 꿰찬 단어도 무수히 많을 뿐 아니라 분야를 불문하고 빠르게 심화되고 있다. “아이폰은 앱스토어라는 방식을 통해 ‘참여 IT시대’를 본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세계의 프로그래머들이 아이폰의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관심이 쏠리고……“, ”이번에 출시된 스포츠 유틸리티 신차는 좌우 롤링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할 뿐 아니라 계기판 위의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에……“, ”탑 노트를 아로마향으로 델리케이트하게 처리한……“, ”차익 거래 유인 확대가 외국인 채권투자 확대의 한 요인인 바 이 또한 알파라이징의 하나로서……”, “챔피언십 대회에서 많은 갤러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라운드 두 개의 보기를 범했지만……“, ”천연 베리로 끌어올린 화이트 톤업 스킨은 트러블이 전혀 없는……“ 등의 문장에서는 현기증이 난다.

이미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 속에 뿌리 내린 IT분야는 그렇다치더라도 다른 해당 분야에 일정한 기초지식과 조예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대충 통빡을 굴릴 뿐 당혹하기 일쑤이다. 예전에는 그저 의료 분야에서 환자 진료상 필요한 상황에 따라 의사들끼리 그들만의 전문용어를 구사하곤 했지만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전방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마케팅, 광고, 홍보성 문구에서 특히 자주 눈에 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새로운 문물이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발전의 과정이라 여기고 꾹 참아줄 수도 있다. 한데 그저 재미를 위해 멀쩡한 걸 일부러 뒤틀고 꼬아서 표현하는 것도 적지 않고, 또 특정 분야 종사자들이 마땅한 고유 단어를 찾아 내지 못하거나 짐짓 참신한 듯 보이기 위해, 또는 은근히 유식함을 뽐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유포시켜 통용되는 것들도 참 많다. 또 고유 단어나 표현 중에서도 ‘기분이 완전 좋다’, ‘대략 난감하다’처럼 앞뒤 단어 간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제법 뿌리 내린 표현들이 적지 않다. ‘급실망’, ‘급관심’ 등의 신종 표현도 이제는 별로 어색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영어 외래어와 연관된 것 중 ‘필(feel)이 꽂히다’, ‘엣지(edge) 있게’ 등등 문법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특정 유행어는 한국사람끼리 이야기하면서도 사전 습득과 인지 유무에 따라 의사소통에 곤란을 느낄 정도이다. ’갈라 쇼(Gala Show)‘니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니 하는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 본 후에야 간신히 그 뜻을 새길 수 있었다. ’갈라‘는 ’갤럭시(galaxy)‘의 이탈리아어로 ’격식을 파탈한 화려한 쇼‘였고, ’팜므 파탈‘은 19세기 특정 유럽 문학 사조와 관련된 프랑스어로 일종의 전문용어였다. 남들이 모르도록 끼리끼리 소통하며 동류의식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가히 속어의 생성과 다를 바 없다.

말은 인격이다. 한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든 표현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대체로 5분 정도 대화하면 그 사람의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언어는 한 나라 또는 한 민족의 품격이다. 역사도, 문화도, 정치제도도, 경제수준도, 평균교양도, 기질도, 사고방식도 다 그 언어 안에 녹아들어 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아직 영어에서 ‘아껴 쓰다’는 표현을, 그리고 중국어에서 ‘배려하다’는 표현을 접하지 못했다. 비스무리한 표현은 있지만 우리말의 의미와는 결코 같지 않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에는 ‘대화(이야기)를 나누다’, ‘상담을 나누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다’, ‘마음을 나누다’ 등에서 보듯 대인 커뮤니케이션 관련 표현에 유난히 ‘나누다’가 많다. 생활이 언어에, 그리고 언어가 생활에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예사로이 보고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말을 너무들 자기 편한 대로만 쓰는 것 같아서, 또 자기 분야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언어적인 ‘배려’와 ‘나눔의식’이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아서 난 좀 걱정스럽다. 특별히 누구보다 우리말을 사랑하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어쩐지 계층별로 분야별로 언어가 이렇듯 분화되는 것이 우리 사회를 계층과 분야별로 분열시키는데 일조하는 것 같아서이다. 즉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평생을 살아 오신 칠순의 노인장과 손자 손녀뻘인 서울의 한 초등학생이 최소한 기본적인 의사소통에 있어서만큼은 별다른 장애를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게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국 학생 하나가 오늘도 결코 표준적이지 아니한 뭔가 이상하게 뒤틀린 한국어 표현을 또 어디서 주워 듣고 와서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 온다면 난 정말이지 ‘대략 난감하다’. 오늘따라 지금은 작품을 통해서밖에 만날 수 없는 멀리 떠난 많은 그 ‘단어 동무’들이 그립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귀뚜라미가 울고 있을까? (pjt00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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