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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빛살 무늬’는 천마의 갈기였다

[기타] | 발행시간: 2014.04.11일 14:45

금동판 천마도의 세부. 말등에 기 꽂이로 짐작되는 말갖춤 장식 흔적이 보인다. 말 몸체에는 국보 천마도처럼 마름모꼴 누빔 무늬가 있다. 도판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한겨레] [문화‘랑’] ‘보존 과학’이 밝혀낸 천마도의 비밀

“나와서는 안 될 게 나왔어!” 주저앉을 뻔한 발굴단장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국보 천마도. 그동안 화폭에 그린 유일한 신라 그림으로 꼽혀왔다.

국민문화재인 신라 ‘천마도’(국보 207호)의 주인공은 기린인가, 천마인가. 신라미술사를 휘감았던 논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발굴 40년 만에 과학의 힘으로 깨어난 천마들의 비상을 지금 경주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와서는 안 될 게 나왔어!”



평남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마지상’. 신라 천마도 원형으로 추정된다. 도판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신라를 대표하는 그림 ‘천마도’(국보 207호)가 출토될 당시 문화재관리국 발굴단장은 김정기(84·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박사였다. 금관이 나와도 눈 하나 꿈쩍 않을 만큼 냉철한 학자였지만, 영기에 휩싸여 비상하는 말을 그린 최초의 신라 회화를 무덤 바닥에서 목격하는 순간 발에서 힘이 쑥 빠져 주저앉을 뻔했다고 한다. 발굴팀원이었던 최병현(66) 숭실대 명예교수는 “과묵한 김 박사가 평소와 달리 고함과 탄성을 지르며 천마도를 수습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신라회화사의 등장을 알리는 대발굴이었건만, 정작 천마도는 당시 온전한 실체를 내보일 수 없었다. 문화재보존과학이 걸음마 수준이던 시대적 한계 탓이었다.

무늬 희미한 천마총 그림 2종

증기와 약품으로 얼룩 녹이고



천마도 말다래판을 말에 걸친 모형. 천마총 특별전에 나왔다. 도판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현미경 관찰하며 표면 긁어내

지난해말 마침내 실체 밝혀냈다

재질·무늬·기법, 고구려와 흡사



천마총에서 나온 쇠솥. 귀족들이 썼던 것.(왼쪽) 천마도가 그려진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의 모습.(오른쪽)

완성품 가져왔나, 재료만 들여왔나

그림 제작지 둘러싼 논쟁 벌어질듯

40년 만에 암흑 뚫고 드러난 천마



천마총에서 나온 쇠뿔(왼쪽). 첨단광학기기를 이용한 금동판 천마도 분석장면.(오른쪽)

천마도는 말 탄 이의 옷에 흙이 튀지 않게 안장 양쪽에 늘어뜨린 말다래(장니)판에 그려졌다. 신라 고분의 특징인 무덤 속 돌무지에 짓눌린 채 부장품 나무상자(수장궤) 위쪽에서 출토된 말다래판은 추정품을 포함해 모두 세 벌. 맨 위에 대나무로 짠 삿자리에 올린 금동판 말다래 한 벌이, 그 아래에 자작나무 껍질인 백화수피 말다래판 한 벌이 포개어져 있었다. 궤 다른 쪽에는 다 썩어 없어진 칠기제 말다래 추정 조각들이 흩어진 상태였다. 천신만고 끝에 발굴팀은 백화수피 말다래판 한쪽에서 국보가 된 천마도를 확인했다.

그러나 다른 말다래에는 무엇이 그려졌는지 밝혀낼 길이 막연했다. 푸석푸석한 대나무 말다래판에 무심코 유물을 굳히는 경화용제를 손 분무기로 뿌리고 이발소 드라이기로 급히 말린 게 탈이었다. 약물이 유기물과 엉키면서 시커먼 얼룩이 생겨 아래층 다른 말다래판 문양들까지 덮어버렸다. 대나무 말다래판에 삐죽한 돌기 같은 무늬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발굴팀은 이를 태양 빛살을 묘사한 ‘일광문’으로 추정된다고 보고서에 썼다.

40년 뒤인 2013년 연말. 천마총 특별전을 준비하던 국립경주박물관 보존과학 전문가들은 첨단 감식기법을 동원해 말다래판들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에 몰두하던 중이었다. 증기와 약품으로 얼룩을 녹이고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메스로 표면을 긁어냈다. 칠흑 같은 대나무 말다래판 위에 그림이 나타났다. 옛 보고서에 일광문으로 썼던 문양은 천마의 갈기였고, 빛나는 말 머리가 뒤이어 드러났다. 대나무판 위에 마직물, 금동뚫음무늬판을 겹쳐 올린 뒤 점열·마름모·비늘 무늬의 천마상 금동판을 못박은 정교한 걸작이었다. 국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와 한짝을 이룬 다른 쪽 백화수피 말다래판에서도 비슷한 천마도가 드러났다. 지난달 개막한 국립경주박물관의 특별전 ‘천마, 다시 날다’에는 이렇게 복원한 천마도 3종 세트가 나왔다. 신라회화의 전례없는 잔치다. 어둠의 세월을 딛고 과학의 힘으로 깨어난 천마도 덕분에 신라미술사는 새 약동을 시작했다.



발굴팀의 스케치.

천마냐 기린이냐 입씨름은 끝났다

새 천마도 발견은 유령처럼 학계를 떠돌던 그림 주인공 논란, 곧 천마냐 기린이냐를 둘러싼 입씨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달 천마총 말다래 연구보고서를 낼 예정인 경주박물관 쪽은 금동판 천마도와 국보 천마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천마라고 결론지었다. 금동판을 오리고 두들겨 만든 동물상은 분명한 말 형상이고, 말등에 기 꽂이인 듯한 말갖춤 장식 흔적이 보이는 게 근거다. 금동판 천마도는 붓질과 달리 조형적 표현에 제약이 있어 이미지를 단순명확하게 뽑아낼 수밖에 없다. 국보 천마도의 동물종도 발굽이 하나인 기제류로 말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동판 천마도를 살펴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회화사)는 “국보 천마도와 모양은 물론, 마름모꼴 누빔 흔적까지 본떠 만든 게 보인다. 천마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기린설은 90년대 학계 일부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과 벽화 등을 천마도와 비교해 상상의 동물 기린이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2000년 연구자 이재중씨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천마도의 머리 위 솟은 부위를 기린의 뿔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뜨거워졌다. 2009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천마도를 적외선 촬영한 결과 머리 쪽에서 뿔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과 안휘준 교수 등 상당수 학자들도 동조했고, 기린설은 통설로 굳어져왔다. 이번 새 천마도 발견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천마도 말다래판 파편 맞추는 작업 모습.

특별전을 준비한 장용준 학예연구관은 “학계는 다른 유적의 기린, 천마상과 비교해왔으나, 같은 천마총 유적 안에서 말이 분명한 천마도상이 다시 나온 만큼 논란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기린의 특징이라는 머리 위 뿔이나 영기로 비친 부분은 갈기를 묶은 매듭으로, 북방 민족의 말 그림에서도 보인다는 설명이다. 신라미술사를 연구해온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입속 영기 등 기린상으로 추정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상서로운 동물의 특징을 반영한 천마 그림의 한 요소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고구려 그림인가, 신라 그림인가

경주박물관은 국보 천마도의 화폭인 말다래판 재질도 처음 분석해 자작나무 껍질임을 확인했다. 원래 자작나무는 한반도 북부에서만 서식한다. 그림 재료를 북방의 고구려 등에서 들여왔다는 말이 된다. 더욱이 국보 천마도의 말 모양과 배경 무늬 등은 고구려 미술의 역동적 특징이 역력하다. 말의 앞뒷발이 전면 후면으로 뻗어 날아가는 듯 묘사되고, 배경인 덩굴·연봉 무늬들과 그 안에서 Y자형으로 틀어지는 곡선 등이 고구려 벽화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천마총보다 앞선 5세기 초 고구려 덕흥리 벽화에 ‘천마지상’(天馬之像) 명문 붙은 말이 그려져, 이 상을 신라 천마도 원형으로 짐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시에 함께 공개된 동그란 채화판에 칸칸이 그려진 말 탄 무사상이나 새 모양 서수 등이 고구려 무사상, 사신도 등과 비슷한 것도 고구려 영향을 보여준다.



발굴 하는 모습.

학계 견해는 천마도의 고구려 직수입설, 재료만 수입해 신라 장인이나 고구려 장인이 그렸다는 설 등으로 엇갈린다. 정병모 교수는 “천마총 출토 금관에서 보이듯 신라 공예 수준도 탁월했다. 신라인들이 고구려 기법을 수용해 천마도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물관 쪽은 전시를 계기로 천마총 출토 그림들의 실측도 등 고신라 회화 자료들을 대거 확보했다. 고구려 미술을 받아들여 통일신라 황금기를 닦은 고신라 미술의 ‘블랙박스’가 열렸다. 앞으로 그 안에서 어떤 보화들이 쏟아져 나올까.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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