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삼성전자가 묘한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겉으론 서로 적(敵)을 대하듯 으르렁대면서 안으로는 긴밀하게 협조해서 나온 말입니다.
KT와 삼성전자는 최근 서울 서초동에 4세대 이동통신(4G LTE) 기술을 구현한 '이노베이션 센터'를 함께 열었습니다.
이곳에선 4G LTE 통신망(網)을 실물 장비로 재현해 세계 최고 수준의 LTE 통신 속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KT의 이석채 회장과 삼성전자의 김영기 부사장(네트워크부문 총괄) 등 주요 임원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KT로선 이런 최고 기술을 활용, SK텔레콤 등 경쟁사보다 6개월 늦게 LTE를 시작했지만, 통화품질에선 한발 앞섰다고 주장합니다. 삼성전자도 KT와 함께 개발한 LTE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 통신사 공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노베이션 센터는 두 회사 간 전략적인 유대 관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떠들썩하게 외부에 자랑할 법도 하지만, 외부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왜일까요?
'친한 사이'라고 자랑하기엔 두 회사 간 골이 깊습니다. 지난 19일 KT의 이 회장은 "제조사들이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비싸게 단말기(스마트폰 등)를 판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비난한 셈입니다.
예컨대 KT는 통신요금을 많이 낮췄지만, 삼성전자 등 제조사의 비싼 스마트폰 할부금 탓에 소비자들이 통신비가 비싸다고 착각한다는 주장입니다.
두 회사 간 껄끄러운 관계는 3년 전 KT가 애플의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이폰 열풍이 일었고 삼성전자는 안방에서 이류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두 회사의 애증(愛憎)은 전 세계에서 특허 소송전을 벌이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애플에 삼성전자는 '최고 품질의 부품 공급처'이며, 삼성전자에 애플은 최대 고객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수준을 넘어, '동지이면서 적'과 함께 하는 시대인 셈입니다.
[성호철 기자 sunghoch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