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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미한복' 프랑스 파리 패션쇼서 연변브랜드로 부상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2.04.06일 06:49

컴퓨터자수생산라인을 돌아보고 있는 류송옥(우) 동사장.

  '예미한복' 류송옥 동사장 프로필

  1956년 11년29일 출생

  1975년 – 1979년 용정시 명동대대 간호사

  1980년 용정시 주조공장 직원

  1981년 용정시 피혁공장 기술원

  1982년 용정시 상업시장 직원

  1983년 – 1985년 용정시 수놓이양성학교 교장

  1986년 – 1988년 용정시 혼례이불공장 총경리

  1989년 – 현재 연변예미한복 동사장

  사업경력:

  2006년 연길시선진생산자

  2005년 연길시 정협위원으로 당선

  2006년 연길시 제15차민족단결진보표창대회에서 모범으로 당선

  2007년 연변조선족자치주민족단결진보 모범으로 당선

  2007년 연길시공상부문으로부터 신용동사장 칭호수여

  2008연 연변해외연의회 제5차 1기이사회 상무이사로 당선

  2008년-2009년 연변애심어머니협회 명예회장

  2010년 중국국제상회 연변상회 부회장으로 당선

  2011년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상무이사로 당선

 프랑스 파리의 패션쇼로 그의 조선족한복 디자이너 성공 예감

2003년 10월 파리 패션쇼서 국제복장대사 피얼카단과 교류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2003년 10월에 있은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서 예미한복이 브렌드 제품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조선족한복 디자이너 성공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라고 연변예미한복 류송옥 동사장은 서두를 떼고 있다.

  2003년 10월에 류송옥 동사장은 중국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유일하게 조선족대표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중국문화의 해'패션쇼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

  전 세계 유명한 패션은 프랑스 루부르궁 패션쇼에서 생긴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류송옥 씨는 이 패션쇼에 참가하기 위해 우선 한복의 발원지인 한국으로 같다.그는 한국의 박물관을 찾아 다니며, 또 한복에 조예가 깊은 전수인들을 찾아 다니며 한복의 변천사를 일일히 체크했던 것이다.그 기초상에서 전통과 현대가 살아 숨쉬는 한복 설계에 들어갔고 패션쇼에 내놓을 한복을 한뜸한뜸 짓기 시작했다. 한복제작이 완료되자 북경에 가서 모델들에게 조선족의 복장과 정서에 대해 일일히 알려주었다.즉 짧은 저고리와 긴치마의 쭉 뻗은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의 조화를 일일히 설명해주면서 패션쇼에서 그들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하겠끔 사전준비를 깔끔하게 했다.

파리패션쇼 무대에 예미한복 등장

  10월14일, 파리 루부르궁의 레이노대청은 2000여명의 관객들로 꽉 찾단다.

  패션쇼에 선보일 14벌의 한복을 모델들에게 입혀 무대에 등장시켰다. "활짝핀 진달래꽃"(주:진달래는 연변의 주화로 결정)이라는 자막을 배경으로 전통장고춤과 상모춤에 이어 류송옥 씨가 손수 만들어낸 14벌의 한복이 화려한 쇼를 펼쳤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관중들은 류송옥의 한복은 복장이 아니라 한수의 아주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단다. 류송옥 씨는 당시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애수에 잠겼단다. 희열과 수많은 좌절, 도전들이 교차되는 한순간이었다.

  중국으로 놓고보면 연변은 '시골'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골에서 우리민족 한복에 애착을 갖고 성공의 길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전통이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다 주는 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계기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복장생산라인공장

  자수로부터 한복디자이너로

  류송옥 씨가 한복 디자이너로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는 순탄치 않은 경력이 있었다.

  그는 일찍 어려서부터 익혀온 자수로 생활의 진로를 개척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1983년도에 그는 용정에 규모가 작은 자수양성소를 꾸리고 영업을 시작했다. 뛰어난 자수솜씨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특이한 무늬로 고객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일감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첫해에 6000위안의 수입을 올렸는데 당시로서는 거금의 수입이었다.

  한편 그는 당지에서 소문이 있는 복장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복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89년도에 그는 정식으로 복장점을 오픈하였다. 2000위안의 대부금을 맡아 한번에 5000메터의 천을 사들여 18살부터45살까지 나이 제한이 없이 입을 수 이는 남녀 여름옷 4800벌을 지어 시장에 내놓았다. 깔끔만 바느질, 참신한 디자인으로 하여 옷이 잘 팔려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 시작했다.

  큰 신심이 생긴 그는 여러가지 복장과 자수, 혼례이불도 겸하여 생산해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던 중 그는 연변의 시장을 돌아보면서 한복전문점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눈길이 바로 오늘에 와서 '예미한복'이라는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은 전주곡이기도 하다.

  자수를 시작하면서 바느질에는 환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꾀하면서 한복짓기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한복짓기로 한생을 살아온 이모한테서 디자인, 재단, 재봉 등 한복짓기에 관련한 모든 기술과 기법들을 일일이 배우고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한복짓기는 아주 섬세하며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바로 류송옥 씨가 특유한 여성의 섬세함으로 완성한 것이다. 드디어 '예미한복'이라는 한복이 연변이란 이 '시골'에서 태어나면서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 까지 진출해 오늘 연변의 브랜드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0년도에 세기적인 축제로 일컷는 상해엑스포가 열렸다. 연변은 전국 30개 소수민족자치주에서 유일하게 '연변의 날'이라는 슬로건으로 행사를 가졌다. 당시 10명의 연변형상아가씨들이 차려입은 복장은 바로 예미한복에서 내놓은 복장이었고 색동수건, 복주머니 등 액세사리도 이 기업에서 기증한 제품들인데 이런 액세사리도 바로 류송옥 씨가 다자인해 생산한 것으로 이미 특허를 받았다.

  가정형 기업으로부터 당당한 중형기업으로

  1983년 1월에 한 가정형 기업 즉 3명의 일꾼, 몇대밖에 안되는 재봉틀로부터 오늘 1000여제곱메터에 달하는 3개생산기지, 80여명의 일꾼을 확보하고 있는 이 예미한복업체는 현재 설계, 생산, 제작, 소도매에 이르기까지 일체화된 라인으로, 오늘도 한복 등 전통제품 생산에 몰입하고 있다. 이 업체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전국각지는 물론 한국, 일본, 러시아 등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우선 국내 주문을 받아서 납품하던데로부터 국외수출의 길에 들어섰다"고 자부감을 갖고 설명하는 류송옥 씨는 조상대대로 물려 내려온 우리민족의 전통한복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그것을 수출에까지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예미한복'은 그 동안 다양한 행사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오늘에 와서는 조선족은 물론 한족들도 경탄해 하는 한복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특히 연변가무단,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그리고 사회 각계층 인사들에게 아름다운 예미한복을 선물하면서 우리민족의 문화정서를 널리 알리고 있다.

예미정품 전문점

  28년의 노력끝에 최초 10여가지 상품을 생산하던데로부터 지금은 100여가지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중 300여가지 전통한복, 200여가지 개량한복, 300여가지 각종민속공예 품 즉 꽃방석, 지갑, 베개, 가위집, 실내화, 전통민속이 잘 들어나고 있는 각종 액세사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하여 이 기업은 2004년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전국민족특수용품지정생산기업으로 명명되었고 2005년도에는 국제 인증인 'ISO9001상품질량체계 인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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