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일본 도쿄백화점의 잘 나가던 이벤트 매니저였던 아키히로 타카노는 10여 년 전 한 창 나이인 45살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병석에 드러누운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를 수발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이 보장된 좋은 직장을 때려치울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그만 둔 지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9년 뒤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몇 푼 남은 저축을 털어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니 빈털터리가 돼 있었다. 아파트 월세를 낼 돈조차 없어 30년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의 수중엔 어머니의 유골함과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시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이 ‘개호이직(介護離職, 간병이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일본 직장인들이 나이든 부모님들을 수발하기 위해 사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간병이직으로 인해 일본의 중산층이 붕괴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으며, 직장을 떠난 이들의 상당수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일본의 75세 이상 노년층은 1640만 명에 달한다. 75세 이상 노년층은 2025년까지 218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65세 이상 인구가 2040년에는 전체 일본인구의 40%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는 늘어나고 있는 노년 문제에 메가톤급의 충격을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는 700만여 명에 달한다. 1946년 태어난 이들을 기준으로 할 때 5~6년 후부터 75세 노년층에 합류를 하게 된다.
문제는 일본에는 노인 요양시설과 간병인, 부모 간병을 위한 휴직제도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층에 합류하면서 75살 이상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며 “이들 노인들이 자식들을 직장에서 끌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2014년 3월 현재 공공요양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노인들의 수는 26만 명에 달했다. 해외 노동자들의 입국을 까다롭게 통제하는 일본의 정책 때문에 간병인들의 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단 한번 직장을 떠난 이들은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는 길마저 막혀 있다. 다행히 타카노는 복지단체의 상담사 자리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보수는 적지만 근근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 벌이는 할 수 있었다.
타카노는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직장 상사가 한번 넥타이를 풀면 다시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 잘 생각하라고 조언하더라”며 “그의 말대로 (직장을 그만 둔 이후) 멈출 수 없는 미끄럼틀에 올라탄 것처럼 추락을 거듭했다”고 회상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정부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국민총생산(GDP)을 현행 500조엔에서 600조엔으로 늘리는 목표를 발표했다. 현재 1억2700만 명인 인구를 1억 명 대로 유지하는 목표도 제시했다. 일본의 출산율은 2014년 1.42%에 불과했다.
지난 11월 일본정부는 노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오는 2020년까지 입주 간병인을 12만 명 추가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계획은 2020년까지 38만 명의 간병인을 추가로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12만 명을 더해 5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경제 분석 기관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마크 윌리엄과 마르셀 틸리언트가 공동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정부의 노년층 대책은 한해 0.2%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이런 정책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년 빈곤층(Elderly Underclass)’의 저자인 타카노리 후지타는 “요양원 몇채를 더 짓는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필요한 것은 좀 더 많은 안정적인 일자리다. 복지혜택도 많고 초과근무도 적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좀 더 많은 육아시설 마련 등 직장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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