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작가, 학자, 교직원, 매체인원들이 룡정 동산마루에 모였다. 동산마루에 고히 잠든 윤동주와 거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의 묘소에 경건히 헌화를 하고 제주를 부어올렸다.(사진 차청국)
5월 15일,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반일지사, 문사이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를 펼쳤다.
최초로 반일지사, 청년문사인 송몽규를 기리는 행사에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들과 윤동주의 친지 윤인주선생, 룡정3.13반일기념사업위원회, 룡정한락연연구중심, 룡정시 작가협회 그리고 조선족 작가, 교원, 매체 기자 4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송몽규, 윤동주의 묘소를 참배하고 다음 송몽규의 모교인 룡정중학 력사기념관을 돌아보았으며 이어지는 행사로 룡정시도서관에서 소형 쎄미나를 열었다.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들이 송몽규의 시 “밤”, “하늘과 더불어”, 꽁트 “숟가락”등을 랑독하면서 시인을 떠올렸다.
“윤동주의 소울메이트 송몽규”라는 제명의 특강을 하고있는 김혁회장.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장 김혁소설가는 “윤동주의 소울메이트 송몽규”라는 제명의 특강을 하였다. 그는 특강에서 송몽규의 일대기에 대해 본인의 수년간의 답사와 연구물과 더불어 방대하게 조명했다. “송몽규는 걸출한 문사이자 반일지사이다. 한국의 김동리, 정비석, 서정주보다도 일찍 등단한 문학가이자 일제의 횡포에 저항하다가 윤동주와 나란히 일제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철저한 반일지사로서 윤동주와 더불어 또 한분의 룡정이 낳은 인걸에 대해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동주의 고종사촌인 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에 북간도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에서 태여났다.1935년 그의 소설“숟가락”이“동아일보”신춘문예에 꽁트 당선작으로 선정되여 룡정과 전 연변을 놀래웠다.
송몽규의 모교 룡정중학교 탐방에 나선 참가자들.
1935년 3월말 중국 락양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입학하여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군사지식을 습득하였고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였다가 석방되여 1937년 4월 룡정의 대성중학교(현 룡정중학)에 4학년으로 편입하였다.
그는 1938년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하여 학생회 문예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잡지 《문우》의 편집을 맡았고 1942년 4월 윤동주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교또제국대학 사학과 서양사 전공에 입학하였다.
1943년 7월 “반일독립운동”의 죄목으로 교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감옥에 수감되여 1945년 3월 7일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일제의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윤동주와 한달 간격으로 옥사했다. 유골은 1990년 윤동주 묘소의 곁으로 이장되였다.
송몽규를 기리며 룡정의 문화와 력사알리기에 앞장설것을 결의하는 참가자 일동.
김혁회장은 특강에서 “이렇듯 유구한 력사와 걸출한 고향의 인걸에 대해 여직껏 조명하지 못한것이 죄송스럽다.금후 더욱더 주목의 눈길을 돌려 송몽규의 일대기를 소설화하련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조선족문단에서 최초로 윤동주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장편 “시인 윤동주”를 집필하였고 관련 연구서인 “윤동주 코드”를 펴냈으며 현재 “장백산”잡지에 윤동주 평전 “별헤는 밤”을 련재하고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또 룡정의 문화와 력사를 널리 알리기에 힘쓰고있는 룡정.윤동주연구회에 성원을 아끼지 않은 룡정시도서관 신경순관장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