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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그 형상 우리의 맘속에 살아있으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6.07.18일 13:38
연변수리국 전임국장 전춘원(田春元)의 청렴정사 일화

연변의 산과 들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며 연변수리사업에 크나큰 공헌을 한 로공산당원이며 수리전문가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리국 전임 국장 전춘원은 아쉽게도 얼마전에 우리곁을 떠났다. 생명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산과 물과 저수지를 뒤로하고 로작가이며 다병한 안해, 유능한 아들딸들을 남겨놓고 떠나시면서 그는 얼마나 애틋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전춘원은 동북지질학원 대학시절인 1956년도에 입당한 로공산당원이다. 대학을 졸업한후 강소성 성시규획검측설계원에 배치받아 업무에 능하고 열심히 사업하여 6년동안 해마다 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던 그는 1962년에 안해 김영금을 따라 연변에 조동해왔다. 연변에 와서 수십년동안 화룡아동저수지설계로부터 연길 9.3공장 수원찾기, 연길오도저수지(수원지), 돈화소석하저수지, 안도량강수력발전소, 왕청만천성 수력발전소, 돈화 홍석수력발전소, 훈춘경신평원관개구 검측설계 등 수많은 항목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끄느라 연변에 줄기줄기 뻗어간 산과 강에 이루 헤아릴수 없는 발자국을 남기였다. 당의 사업, 오직 당의 사업에만 충직해온 그는 얼마나 사업이 바쁘고 급했으면 금쪽같은 첫 아이를 잃었을 때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가. 그뿐이 아니라 세자식의 첫돐생일에도 오지 못했다. 나는 그의 안해의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송월저수지는 관개와 화룡인민들의 음료수를 해결하는 종합적인 공정으로서 수요가 박절했다. 1994년 주동적으로 상급지도부를 찾아 앞당겨 퇴임을 한 전춘원국장은 여러 현, 시에서 초청하는것을 마다하고 경제가 가장 어렵고 기술력량이 박약한 화룡의 물공급수원공정을 택하였다. 7년을 하루와 같이 공지에서 먹고 자고하면서 저수지 사업일군들과 고락을 같이 하였다. 화룡시 지도자들을 이끌고 중앙수리부, 성 수리청 등 단위로 찾아다니며 자금을 해결했고 지어 새벽마다 시공 공지에 나가 질보장을 지켜보군 하였다.

공정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던 2000년 2월에 전춘원은 불행하게도 위암진단을 받고 병원신세를 지게 되였는데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전화로 공정을 지휘하였고 출원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공정을 계속하였으며 험수까지 마치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한 로공산당원의 억센 의지와 드높은 책임심은 화룡시 간부들과 군중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2004년 여름, 로작가들로 무어진 연변단풍수필회회원들은 화룡시 송월저수지 참관을 갔었다. 그날 우리는 송월저수지에서 시공으로부터 여러 기술적인 처리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전춘원국장의 설명을 들으며 천재적인 기억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그 많은 수치를 소수점아래 두세자리 수자까지 원고도 없이 술술 이야기할수 있을가! 듣는 말에 의하며 그는 재직기간 상급에 사업을 회보할때도 재료를 보지 않고 “1, 2, 3”하면서 수자적으로 간단명료하게 회보하여 칭찬을 받고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전춘원국장은 사업에서 많은 공적을 쌓았을뿐만아니라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이 없이 검박하게 살고 다른 사람부터 생각하고 렴결봉공한 충직한 로공산당원이였다.

그는 늘 사람은 100년도 못 사는데 그저 먹을것, 입을것, 가족이 살수있는 집 한채와 책을 볼수 있는 책상과 잘수 있는 침대, 병치료에 수요되는 돈만 좀 있으면 자족해야 한다고 했다. 집이 많으면 걱정거리가 많아지고 남의 돈을 먹으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발편잠을 잘수 없다고 하였다. 자녀들에게도 당에 충직하고 사업에 충성하며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교양하였다. 그래서 세자식 모두를 령도간부로, 고급지식인(박사)으로 키웠다.

그가 얼마나 꼿꼿했으면 아들집곁에 이사하느라고 집을 팔 때 종이장에 여라문가지 고쳐야 할 문제점들을 1, 2, 3, 4 …..하여 적어서 집을 사는 대방에게 주어 놀라게 했고 “웃음거리”를 남겼다고 했다. 좋게 말해서 돈을 한푼이라도 더 받자는것이 사람들의 심정인데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놀랐다.

그는 평생 청렴하게 살고 깨끗하게 돌아가셨다. 그는 병으로 다시 몸져누웠을 때 더는 완쾌하여 털고 일어나지 못할것을 예감하면서도 그 어느 단위나 사람들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지시”하였다. 또 친척들이 가져온 부조돈을 돌려주라고 했단다. “모두 생활이 어려운데…”하면서. 평소에 자기는 결혼할 때 산 구두를 20여년 기워신으면서도 병나고 어려운 친척들은 적극 도와주었다고 한다.

고별식에 갔다가 나는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다. 장례식은 아주 간단하게 치러졌다. 오랜 지도간부이고 아들도 지도간부를 하고 있으니 문객이 적어도 몇백명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영결식에는 30여명 되는 친척에 그 수자를 넘을것같지 않은 문객이 유체고별장 유체옆에 서있는 가운데 가족들의 단위나 각 현, 시 해당부문에 알리지 않은채 주 수리국에서 대표로 온 국장이 고인의 사적을 소개하는 간단한 추도문을 읽고는 유체고별을 하고 반시간도 안되여 장례식 전반과정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장의관을 떠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전춘원국장은 살았어도 떠나갔어도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진정한 공산당원이였다.

글 장진숙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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