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퇴임한 뒤 워싱턴 DC에서 약 2년 반가량 거주할 예정이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눈엣가시’ 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는 퇴임하면서 60%의 고공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인기 절정에 이르렀으나 트럼프는 취임 직전에 지지율이 40%에 그쳐 오바마에 크게 밀리고 있다. 그런 오바마가 백악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워싱턴 DC에 거주하면서 개인 사무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 돌아간다. 오바마는 1921년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백악관이 있는 도시에 그대로 남는다. 오바마는 둘째 딸 샤샤가 10학년(고1)이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019년 중순까지 워싱턴 DC를 떠나지 않을 계획이다.
오바마는 퇴임 이후에 정치적인 활동을 자제하는 ‘로우키 행보’를 보이겠다고 공언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그의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정치적인 발언을 극구 자제하면서 철저히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전례를 오바마가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러나 부시는 퇴임 이후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갔다. 오바마는 워싱턴 DC에 남아 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의 정치적 유산을 폐기하는데 팔을 걷어붙이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 않을 수 있다고 WSJ이 지적했다. 오바마가 트럼프를 비판하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본의 아니게 반 트럼프 전선의 선봉에 서게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백인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트럼프가 인종 문제를 건드리면 오바마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WSJ이 분석했다. 트럼프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 폐지에 나설 경우에도 오바마가 반대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가 가족 등과 함께 음식점에 가고, 쇼핑에 나서거나 심지어 산책하러 나가도 언론과 일반 시민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가 거주지에서 개인 사무실로 오갈 때에도 일반 시민에게 노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워싱턴 DC를 찾는 미국인이 인기 절정의 오바마 얼굴을 직접 보려고 오마바 행선지에 대거 몰려들 수 있다. 지난해 11월 8일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당의 재건을 위해 오바마에 지원의 손길을 요청할 수도 있다. 오바마는 망가진 민주당을 추스르는 데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그의 측근들이 말했다.
오바마는 퇴임을 하루 앞두고 국민에게 보낸 마지막 감사 편지에서 “여러분이 나를 더 나은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이 관용과 회복, 내가 얻은 희망의 원천이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출처: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