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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오미자술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1.12일 10:37



  2019년 11월의 어느날, 나한테서 공부를 배우는 학생의 할머니 한분이 지팽이를 짚은 다리로 힘들게 층계를 톺아 나를 찾아왔다. 손에는 작은 광천수병에 꼴똑 담긴 무엇인가를 들고서 말이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만면에 웃음을 듬뿍 지으시며 나의 손을 꼭 잡아쥐고 손에 든 병을 넘겨주시는 것이였다.

  “할머니, 이건 뭐죠?”

  “오미자술입니다.”

  “할머니, 참, 왜 이러세요?”

  “선생님의 수고에 보답하고 싶은데 무엇으로 해야 하나 궁리하다가 이렇게 오미자술을 담그어왔어요. 말이 오미자술이지 술 한방울도 안들어갔어요. 그러니 시름놓고 마이시고요. 내손으로 깨끗이 담그고 백일 땅속에 파묻어 발효시킨거라서 몸에 좋아요. 랭장고에 저장해두고 조금씩 고뿌에 따라서 온수를 더 타서 아침저녁으로 드세요.”

  “할머님두, 참, 웬 수고를 이렇게까지 해요. 응당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 손녀 맨날 선생님 좋다고 입에 올리더니만 성적도 쭉쭉 올라가고. 이 할매도 넘 기쁜데 어떻게 표시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오미자술 담그어 왔어요. 선생님의 건강이라도 좀 돕고 싶어서요.”

  “참, 할머님도, 할머님의 성의를 봐서라도 이왕 가져온건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전 그저 교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곱씹어 다짐을 따고 곱도록이인사를 하고 할머니를 바랜후 집에 들어와 오미자술을 보니 냉큼 입안이 시쿨어나며 신물이 돌았다.

  워낙“오미자”하면 목안에 침마저 시쿨어나는 그 시쿨디시쿤 맛부터 떠올라 몸이 오싹 떨려났던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랭장고에 모셔다놓고 손댈념을 않고 그대로 두었다.

  “우리 손녀 이번에도 시험 100점 맞았대요. 선생님 정말 수고십니다. 배추김치 금방 담그었어요.맛 보시라고 한포기 애한테 보냈어요.”

  “할머님두 참, 힘든 다리로 수고치 마세요. 이번엔 배추김치 담그었다고, 저번엔 영채김치 담그었다고,깨잎 뜯으면 깨잎 뜯었다고. 번마다 제게 이러시면 저 너무 송구스러워요. 다신 이러지 마세요. 이미 보내온 김치는 맛있게 먹을게요. 제가 응당 해야 할 일 하는데 자꾸이렇게. 참, 감사합니다.”

  번번히 인사를 곱도록이 하는걸 잊지 않았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할머니의 마음표달을 이어나갔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애가 공부를 싫어했댔는데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고 잘 가르치시니 애가 신나서 공부하잖아요. 오늘 보니 기말성적이 이렇게 우수하네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오미자술 드시고 있죠? 우리 손녀 그러는데 선생님 강의할때 쩍하면 기침하고 목이 아파한다구 했어요. 오미자술 기관, 페에 좋아요. 잊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드세요. 우리 손녀 다음학기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할머님두, 애가 노력하니까 성적이 좋아지는거죠. 전 응당 해야 할일을 한 것 뿐이예요. 오미자술 꼬박꼬박 챙겨들고 있어요. 목이 덜아프다 생각했는데 그 때문이였군요. 너무 고마워요.”

  나는 맛도 안본 오미자술에 대해 이렇게 멋진 인사까지 올렸다. 새학기가 되였지만 코로나때문에 부득불 집에서 온라인강의를 하지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출석명단을 살피던중 그애가 교학마당에 나타나지않은걸 발견했다. 개인 톡으로 들어가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수업을 끝내고 반주임과 웬일인가 물었더니 그애 할머니께서 지난밤에 갑자기 세상떴다고 했다.

  어쩜 이런 일이? 참 훌륭한 할머니셨는데, 참으로 인사성 밝은 분이셨는데, 이제 한창 나이의 할머니셨는데, 어쩜… 애는 어쩌지? 혼자 남은 애는?

  코로나때문에 드나들수도 없는 상황이라 위챗전화로 따뜻이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께서 옆에 계신다기에 그나마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인자하신 할머님, 불쌍한 애 생각에 잠이오질 않았다.

  그때 문득 지팽이를 짚고 오미자술 한병을 손에 들고 나를 찾으시던 할머니모습이 또렷이 눈앞에 나타났다. 따라서 랭장고에 모셔둔 오미자술도 생각났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랭장고에서 오미자술을 꺼내 고뿌에 적당히 따르고 온수를 더 부어넣어 저가락으로 저어 한모금 마셨다. 달큰하고 끈끈하고 진한 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할머니께서 담근 오미자술은 이런 진한 사랑의 맛이였는데 난 여직껏 그 맛도 모르고 있었다니 자책부터 앞섰다.

  할머님도 나도 이 맛을 살리고 이 맛을 느끼기까지 퍽도 많은 책임과 보답과 나눔의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에 마음이 짜릿해났다.

  앞으로의 교사생애에서도 오미자술처럼 달큰하고 끈끈하고 진한 사랑의 맛을 엮어갈것을 다지며 또 한모금 오미자술을 넘겼다. 그 맛은 페부까지 따뜻이 스며들었다.

  /계동현조선족학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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